현생 사느라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사실 현생은 핑계고, 또!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니 시작합니다!
우리의 연애도 초반엔 다른 이들의 연애와 다를 게 없었다. 다만, 근 1년을 무표정으로 꾸역꾸역 버티면서 대학원을 다니던 내가 연애를 시작하고 나니 여기저기서 예뻐졌다.. 차갑던 인상이 묘하게 바뀌었다. 나아가 사람이 왜 저렇게 흐물텅해졌냐.. 등등 그냥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 너무 나와버려서 주변사람들이 놀랐다는 것만 빼면.
또 하나 내가 느낀 점은 관계가 깊어지면서 시작하게 되는 진지한 대화를 그는 교묘하게 잘 피해 간다는 것이었다. 우리 둘을 뽑아준 회계사 쌤을 만나 셋이서 밥을 먹을 때, 두 분은 청첩장 언제 돌릴 거예요~? 같은 장난스런 말에, 본인은 프랑스의 팍스(PACS) 제도가 좋아 보인다고 대답한다던가.. 현재 서로 좋아하는 게 더 중요한 거라든가 이런 식의 철학적 담론으로 숨어버리는 행동이 몇 번 목격되었다.
* 팍스(PACS): 프랑스의 등록 동거혼 제도
그때의 나는 애써 흐린 눈을 한 걸까? 집에 가서 아무렇지 않은 척, 그 팍스 제도가 어떤 건지 찾아보고 같이 그 담론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X신같이.
애써 피하고 부정했지만, 결국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온다.
오랜만의 데이트를 하던 중, 결혼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뭔가 나는 내 일도 중요하지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했고, 그래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했다.
여기서 그의 대답이 후에 나온 비혼 선언보다 더 가관이었다. “내 자식이 있으면 귀여울 것 같긴 해. 근데 난 혼자 있는 게 좋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집에 누가 있으면 막 때리고 싶을 것 같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아무리 장난이래도… 아니, 장난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대화를 했던 치킨집 안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왼쪽 테이블은 프랑스에서 여행 온 관광객 같았고 오른쪽 건너 건너 테이블엔 한국인들이 앉아있었다. 저 한국인들한테 이 얘기가 들렸을까? 들었다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여친 앞에서, 퇴근한 집에 누가 있으면 때리고 싶을 것 같다는 말을 듣는 내 모습이 참… 비참했다.
흐려지는 정신줄을 애써 붙잡고, “사람을 때리면 안 되지.” 나는 말했다.
“내가 때리고 싶으면 때리는 거지”
그 자기가 하고싶으면 하겠다는 취지의 저 말이 저 자리에서 할 소리인가? 더 듣다간 그 얘기를 앞에서 받아내는 내 모습까지 너무 추해질 것 같았다.
식당을 나오며 그가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 간 이야기를 했다. 다 같이 밥을 먹던 중, 직원 중 한 분이 그에게 “여자친구랑 꽤 만난 걸로 아는데 두 분은 결혼 안 해요?”라고 물었고, 자기는 비혼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직원이 여자친구는 그 사실을 아냐고, 정말 비혼이면 빨리 놓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답해서 본인이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만 믿고 있지 말라고-“
툭, 내뱉은 한마디에 심장 안의 무거운 추가 단전까지 훅-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울어버릴걸.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여기서 울지마 밖에서 울지마…’
배신감, 분노, 슬픔, 비참함. 그 모든 게 뒤엉킨 어마무시한 감정을 끌어안으면서 속으로 되뇐 말은 울지 마..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울지 마..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