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떻게 만드나요?

다정함의 힘

by 한끗


20대 중반까지 내 인생 최대의 성취는 역시 학벌이었다. 대놓고 자랑하는 친구들과 달리 겉으로는 별 내색 없었지만 내 자신감의 뿌리는 늘 거기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끔 멍청한 짓을 해도 괜찮았다. 왜냐면, 든든한 뒷배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들과는 전혀 다른 길, 새로운 트랙으로 빠져도 잘 해낼 수 있다는 확고한, 근거 있는 믿음이 있었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는 자신감에 근거가 있으면 부서지기 쉽다고 했다. 그러니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꽤 단단하다 여겼던 나의 자신감 역시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내 나름의 삶의 역경을 맞이하면서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 있는 연약하고도 유약하기 짝이 없는 내면과 마주하게 되자 도망치고, 피하고, 숨고 싶었다. 나는 나를 꽤나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돌이켜보면 그건 내 자신 자체를 오롯이 사랑한다기보다는 무엇인가를 잘하는 나의 모습, 고난과 역경을 끝내 극복하는 나의 모습 등 특정 일부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점이라는 최고점이 존재하는 시험의 세상에서 벗어나, 아무리 노력해도 만점이라는 것에, 완벽이라는 것에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영역 안에서 어떻게 생긴 지도, 존재하는지도 불투명한 그 완벽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존재하지도 않는 끝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감정적으로도 많이 괴로웠고, 무력감 역시 심하게 느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통번역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물론 꼭 통역을 선택하지 않았어도 rite of passage처럼 어디에서든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업에 들어온 걸 결단코 후회하지는 않지만 많은 걸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다치고 헤매고 상처받는 그 순간에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자책한 적도 많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통번역 대학원 입시준비는 영어 지문 2분 정도를 듣고 내용을 기억했다 한국어로 말하고, 반대로 한국어 지문 2분 정도 듣고 영어로 요약해서 말하는 발표 수업으로 진행된다. 20-30명 학생들이 있는 교실에 한국어나 영어 음원이 울려 퍼지면 그 소리 외에는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그리고 음원이 끝나고 나면 선생님께서 발표자를 호명한다. 웃긴 건 이번 지문은 좀 잡았다 싶으면 절대 내 이름은 안 불리고, 꼭 하나도 못 알아들었을 때, 주제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 이름이 불린다. 그럼 마이크가 손에 쥐어지고 나는 덜덜 떨면서 방금 들은 내용을 다른 언어로 뱉어내야 한다. 그런 걸 두어 달 반복하다 보면 자신감도, 자존감도 많이 깎이고 학벌이 주는 든든한 뒷배 같던 느낌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그 안에 남은 건 원하는 업계에 들어와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레벨 1짜리 캐릭터다.




그럼 그 시절 찌질한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무엇이었나? 밝고 따듯하고 다정한 주변사람들이었다. 같이 입시를 준비하는 동기, 오래전부터 내 꿈을 응원해 주는 친구, 나보다도 나를 더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내 안에 있는 자기 확신, 믿음은 이렇게 깨지기 쉽고 연약한데 저들은 뭘 믿고 저렇게까지 내가 잘될 거라고 얘기해 주는지 아직도 사실 이해가 잘 안 되지만, 또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이 생긴다. 근거 없는 자신감처럼 이들이 나에게 보내주는 믿음도 사실 근거가 없다.

그렇지만 그 힘은 그 어떤 근거보다도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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