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을 2D로 생각하지 말 것
어렸을 적 나의 꿈은 아나운서였다. TV속 보이는 그들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끌렸다. 나도 그렇게 세상 이야기를 전하는 전문적인 여성이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 꿈은 으레 흔히 바뀌곤 하는데 아나운서란 꿈은 오랜 시간 유지되었다. 꽤나 진심이었나 보다.
중학생 때였나. 모 국회의원이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라는 말을 해서 파장이 크게 일었던 적이 있다. 파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물밀 듯 밀려들어와 한 중학생이 소중히 여겨오던 꿈에마저 도달했다. 당연히 그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나 역시 분개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버지는 심드렁하게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생각 없이 뱉는 어른들 특유의 냉소였는데 그게 나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저 멍청한 국회의원은 나를 모른다. 내 꿈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는 다르다. 나를 알고, 내 꿈이 아나운서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생각 없이 뱉은 말이 딸의 꿈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자각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 그 정치인을 보면서 화를 내고 있었지만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꿈에 도달하려면 나도 더러워져야 하는 걸까 봐.
어쨌든 그 뒤로 아나운서의 꿈은 시들해졌고 고등학생이 된 나는 이과로 진학했다. 문과 과목들의 점수가 더 높았지만 좋은 점수보다 재미를 선택해 이과 반으로 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의 꿈은 법의학자였다. 이건 솔직히 매체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없는 게, 당시 싸인이라는 부검의의 삶의 다룬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고, 나는 역시 이번에도 그들의 전문적인 모습과 망자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어준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에 임하는 모습에 끌렸다. 그리고 죽은 이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몸속에서 발견함으로써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수능이 끝났고, 나는 의대 진학에 실패했다. 점수에 맞춰 갈 것인가, 재수라는 도전을 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리고 그 기로에서 나는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법의학자는 아무래도 성향에 안 맞아 보였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고, 결정적으로, 시체가 너무 무서웠다. 그러다 문득 영어로 말하며 일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자연스러웠다. 언어는 원래부터 좋아했고 스스로 생각해도 재능이 있었다. (후에 통번역대학원을 준비하면서 내 재능은 재능 축에도 못 낀다는 걸 알게 됐지만 말이다) 어쨌든 외국어를 쓰며 멋지게 일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니 그 자체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나는 재수를 결정했고, 문과로 전향했다. 당시 서울대는 한국사 시험점수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고, 이과생이었던 나는 해당 과목을 3년 내 공부한 적이 없었기에 그다음 학교의 경영학과 진학을 노렸다. 재수 1년은 정말 치열했고, 고통스러웠고, 독했다. 그 모든 것들이 원동력이 되었는지, 운이었는지,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합격했고 거의 다 도달했다고 느꼈다.
그땐 몰랐다. 대학은 정말 문 하나 연 거였다는 걸...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