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잘 아는 듯 잘 모르는 옥황상제(玉皇上帝) 혹은 조물주의 마지막 한 수..?!!
우리가 잠시 지나온 길을 돌아다보니 저만치 멀어져 있다. 조금 전 우리가 발길을 옮기던 그 장소에 또 다른 트래킹족들이 조금씩 조금씩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누군가 맨 처음 이 길을 다녀간 이후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달팽이처럼 매우 느린 걸음으로 그러나 쉬지않고 한 걸음씩 정상을 향해 내디디고 있었다.
돌로미티 노랑꽃양귀비가 하니를 뒤따라 다녔다. 참 묘한 조화였다. 거대한 바위산과 한 여인 그리고 노랑꽃양귀비.. 그중 하나만 빠져도 돌로미티의 삐쉬아두(Rifugio Pisciadu)는 생명력을 잃고 마는 것일까.. 저만치 앞서가는 하니를 바라보다가 은근히 측은지심(惻隱之心)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동고동락한 사람.. 그 사람이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것이다.
삐쉬아두 가는 길에 뒤돌아 보면 절경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스물여섯 번째 여행기는 빕비아(Bibbia)를 소환해 봤다. 사람들은 주로 바이블(The Bible)이라 읽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빕비아'로 고쳐 읽게 되었다.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면서부터 우리말로부터 멀어지는(?) 연습과 더불어 이탈리아 문화에 친숙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었다. 만약 우리나라에 살고 있었다면 이런 노력은 전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돌로미티 노랑꽃양귀비 무리가 동행하는 곳..
그리고 또 하나.. 우리나라의 일부 기독교인(사람들은 '개독교'라 부른다)들의 외눈박이 시선이 작용하기도 했다. 신앙이, 종교가.. 정치 조직으로 변질된 이상한 사조 때문이었다. 비근한 예로 광화문 앞을 떠도는 출처불명의 좀비들이 흔들고 있는 성조기가 한몫 거들었다. 그들의 조상이 한반도에 살지 않았으면 몰라도, 그들은 성조기를 맹신하고 있었으며 침탈자의 후예들을 신처럼 받들고 있었다. 덫붙이면 기득권이란 이름으로 최소한 70년 동안 민중의 삶에 옮아붙은 비루스 같은 존재들이랄까..
황량한 돌무더기에 생명력을 더해주는 돌로미티 노랑꽃양귀비..
아무튼 빕비아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내가 읽은 세상의 책 중에 빕비아만큼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책은 없었다. 밤새워 읽던 책들도 책 제목과 저자 정도는 겨우 남아있었으나, 빕비아 66권 속에 쓰인 말씀과 달랐다. 무신론자 혹은 타 종교를 섬기는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날 통독을 하며 나름 깨달은 바 있는 빕비아의 내용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연결 지어져 있었다.
하니가 작대기에 의지한 채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할 당시에도 내 이름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isi ) 이름을 딴 이탈리아 이름 프란체스코를 사용했으며, 또한 진심으로 갈리리의 예수(Luogo di origine di Gesù)를 사랑해 마지않았다. 당신의 기록을 읽는 동안 감동의 눈물바다가 빕비아를 적셨다. 들로 산으로 바위동굴 속으로 헤매고 다닌 세월이 만만치 않다. 어떤 때는 머리를 깎고(?) 산속으로 사라질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대략 16년간의 방황이 끝나던 시점에 교회를 떠나 기나긴 방학에 돌입한 것이다. 교회는 더 이상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옷처럼 여겨졌을까..
돌로미티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석벽과 풀꽃들..!
고사성어의 측은지심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됨을 이르는 말은 빕비아에 있는 것만 아니다. 동양철학에서는 흔했던 일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맹자(孟子)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無惻隱之心 非人也)"라고 말했다. 또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是非之心 非人也)"라고 말하는 등..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점점 더 멀어지고 가팔라진다.
그런데 저만치 앞서 걷는 하니로부터 발현된 측은지심은 빕비아에 기록된 예수의 발자취와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참조) 등에 기인한 게 아니다. 내가 좋아했던 제네시(Genesi_창세기)가 나를 소환한 것이며, 구체적으로 2장 18절부터 25절까지 나타난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의 화두는 '여자 사람 왜 만들었을까'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므로 여자 사람의 탄생과정을 담은 자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탈리아어로 쓰인 빕비아를 열어 관련 내용을 찾았다. 이랬다.
18 E il Signore Dio disse: «Non è bene che l'uomo sia solo: voglio fargli un aiuto che gli corrisponda». 19 Allora il Signore Dio plasmò dal suolo ogni sorta di animali selvatici e tutti gli uccelli del cielo e li condusse all'uomo, per vedere come li avrebbe chiamati: in qualunque modo l'uomo avesse chiamato ognuno degli esseri viventi, quello doveva essere il suo nome. 20 Così l'uomo impose nomi a tutto il bestiame, a tutti gli uccelli del cielo e a tutti gli animali selvatici, ma per l'uomo non trovò un aiuto che gli corrispondesse. 1 Allora il Signore Dio fece scendere un torpore sull'uomo, che si addormentò; gli tolse una delle costole e richiuse la carne al suo posto. 22 Il Signore Dio formò con la costola, che aveva tolta all'uomo, una donna e la condusse all'uomo. 23 Allora l'uomo disse:
«Questa volta
è osso dalle mie ossa,
carne dalla mia carne.
La si chiamerà donna,
erché dall'uomo è stata tolta».
24 Per questo l'uomo lascerà suo padre e sua madre e si unirà a sua moglie, e i due saranno un'unica carne. 25 Ora tutti e due erano nudi, l'uomo e sua moglie, e non provavano vergogna.
위 내용을 한글로 된 다국어 성경의 번역본을 보니 이랬다.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하니의 도전이 힘겨워 보인다.
여자 사람 왜 만들었을까
위 빕비아에 기록된 여자 사람의 탄생 과정은 매우 소상하게 세심하게 감동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중 발췌한 내용은 이러하다.
21 Allora il Signore Dio fece scendere un torpore sull'uomo, che si addormentò; gli tolse una delle costole e richiuse la carne al suo posto. 22 Il Signore Dio formò con la costola, che aveva tolta all'uomo, una donna e la condusse all'uomo.
23 Allora l'uomo disse:
«Questa volta
è osso dalle mie ossa,
carne dalla mia carne.
La si chiamerà donna,
erché dall'uomo è stata tolta».
위 내용을 개역 성경의 해석으로 읽으면 이탈리아어 원문과 다소 차이가 난다. 개역 성경의 해석은 원시적인 형태의 식재료를 잘 다듬어 요리를 만든 듯 세련미가 넘치나, 원문을 직역해 보면 기자(記者)의 의도가 보다 더 분명해진다고나 할까.. 따라서 직역과 의역을 병행해 번역해 보니 이랬다.
21 조물주는 한 남자 사람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수술을 시작했다. 그는 수술 전에 강력한 빛으로 고통을 주며 마취를 했다. 그리고 수술칼을 이용해 재빨리 갈비뼈 하나를 잘라냈다. 그런 다음 다시 수술 자리를 봉했다.
22 수술이 끝나자 조물주는 갈비뼈를 이용해 여자 사람을 만들어 그 남자에게 데려다주었다.
23 그러자 그 남자는(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나의 뼈가 있다.
내 살로부터 나온 (나의) 살
그녀는 여자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 사람으로부터 떼어냈기 때문이다».
삐쉬아두 가는 트래킹 길 옆 음지에 지난해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않고 있다.
전지전능한 조물주의 시행착오가 여러 번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남자 사람 1인이 여자 사람을 만나는 순간 "이번에는_Questa volta"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번에라는 표현은 그동안 수 차례 시도가 있었음을 말하는 것. 그 내용은 18절로부터 20절까지 나타난다.
조물주는 한 남자 사람을 위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만들어 놓고, 남자 사람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 사람은 조물주가 지은 생명체를 향해 마음이 꼴리는 대로 이름을 지었다. 처음에는 재밌었다. 브런치라 부르면 브런치가 됐고 브런치 작가라고 부르면 그대로 되었다. 그는 신기해하고 재밌어했다.
그러나 이런 놀이도 수 천 수만 가지 혹은 지구별에 충만한 생물의 이름을 짓는데 점점 더 싫증이 나고 재미가 없었던 것. 그때 휴대폰이 쥐어졌으면 조금 더 나았을까.. 어떤 육축은 개나 소나 닭이라 부르니 그대로 되었지만, 어느 날 '소 닭 보듯' 하는 일이 생기자 재미는 점차 식어들며, 종국에는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 조물주는 처음으로 남자 사람을 수술대에 올리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갈빗뼈를 취해 여자 사람을 만든 것.
계곡 저 너머 오른쪽으로 우리의 쉼터(숲)가 보인다. 무사히 잘 돌아갈 수 있겠지..
그는 처음으로 여자 사람을 만나 행복해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남자 사람이 부모를 떠나 여자 사람과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 참 복잡한 과정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 1인이 등장했다. 이를 기록한 24절에는 "그러므로 남자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여자 사람과 함께 할 것이며, 두 사람은 하나의 살이다_Per questo l'uomo lascerà suo padre e sua madre e si unirà a sua moglie, e i due saranno un'unica carne."라고 말하는 것. 그렇다면 그녀의 정체성은 어떠하며 조물주는 왜 여자 사람을 만들었을까..
조물주가 왜 여자 사람을 만들었는지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러나 빕비아에 여자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어물쩍 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남자 사람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므로, 그저 '돕는 배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남자 사람이 심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 잘 놀도록 여자 사람을 만들었단 말인가. 말도 안 돼! 다시 조물주가 집도한 수술실로 확인 들어가 본다.
내가 좋아하는 하니의 뒷모습..
하늘나라의 폐쇄회로 티브이에 기록된 메모리칩의 압축파일을 열어보니 놀라운 사실(?)이 나타났다. 당신이 집도한 수술대 위를 살펴보니 갈빗대는 심장(心臟) 바로 위에서 떼어냈다. 심장은 인체의 여러 장기들 중에서 유일하게 암이 침범하지 못하는 곳이며, 사람들은 그곳을 염통(鹽桶)이라 불렀다. 소금통이란 말이다.
우리 혹은 동양에서는 심장을 염통이라 부르는데 이탈리아(서양)에서는 심장을 일 꾸오레(Il cuore)라 부른다. 우리말로 고쳐 부르면 '마음'이란 뜻이다. 우리는 가슴이 아플 때마다 "마음이 아파..ㅜ"라며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끌어안거나 가리킨다. 심장이 조여드는 통증을 아픔이라 말하는 것이며, 심장이 조여드는 아픔은 측은지심이 생길 때 혹은 괴롭거나 슬플 때 생기는 현상이 아닌가.. 조물주가 심장에 가까운 갈빗뼈를 취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것.
그렇다면 하니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왜 측은지심이 생길까.. 조물주 보시기에 남자 사람이 별로 영양가 없는 쓸데없는 짓을 일삼으며, 세상 사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자 여자 사람을 만들었다. 그때 남자 사람의 갈빗뼈를 취했으며, 남자 사람의 마음 절반을 몰래 훔쳐(?) 여자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때 묘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저만치 멀고 높은 곳으로 사라진 청춘들.. 그 뒤로 힘겹게 발을 옮기는 하니.. 힘내라 하니!
여자 사람은 생김새도, 생각도, 하는 짓도, 남자 사람과 너무 다른 것이다. 조물주가 노린 '신의 한 수'가 남자 사람으로 하여금 활력을 되찾게 된 것이다. 매사.. 사사건건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한다. 동쪽으로 하면 서쪽으로, 이렇게 하면 저렇게.. 남자 사람이 심심할 여가가 없다. 심심할 여지를 두 사람이 서로 나누어 가진 것이랄까..
셀 수 없이 수많은 생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할 때만 해도 생기지 않았던 일이, 어느 날 여자 사람으로부터 발현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원죄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까마득히 잘 깨닫지 못한다. 당신의 갈빗뼈만 취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지, 마음까지 나눈 것은 생각지도 못하는 듣보잡 꼴통이었던 것이다.
마무리 하자. 여자 사람을 향한 측은지심도 결국은 당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이 연합하는 즉시 두 사람 사이는 측은지심으로 꽁꽁 묶여 있는 것이다. 물론 나의 생각일 뿐이다. 돌로미티 노랑꽃양귀비가 우리를 따라나선 것도 측은지심으로부터 발현된 게 아닐까.. 그래서 빕비아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주문한다. 하니가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된 것이며, 우리 앞길에 난관에 부닥친 건 잠시 후부터였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il 10 Otto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K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