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16. 2020

여행과 지우개

#3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찾아가는 길

당신에게 주어진 도화지 한 장..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



   참 특별해 보이는 여행사진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도구 몇 가지를 준비해 봤다. 도화지, 연필, 지우개가 전부이다. 보통 사람들은 미술시간에 혹은 사생대회 때 풍경화를 그려본 이후로 그림을 그릴 시간적 여유는 물론 취미생활로 이어가기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IT산업의 발달로 커뮤니티에서는 도화지 그림을 보기 힘들어졌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만 해도 마우스를 사용하고 있지만 손가락 터치만으로도 그림은 물론 글까지 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참 편리한 세상을 너머 마법의 시대가 됐다고나 할까. 



이제 귀신도 부처님도 그 어떤 성자의 기사나 이적조차 눈여겨보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 시대에 미술도구 운운하면 눈여겨 봐 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구닥다리의 산물처럼 여겨지는 도화지, 연필, 지우개라니..


하지만 우리가 이탈리아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정확히 말하면 이탈리아 남부 바를레타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림 그리기 도구는 매우 익숙하다. 하니의 그림 수업이 일상이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관련 브런치에서 언급한 바 하니는 일주일에 두 번 이곳 출신 아티스트 루이지로부터 그림을 지도받는다. 이번 주부터는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세 번으로 늘렸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림 수업이 시작되는 동안 나는 동시통역으로 하니의 수업을 돕고 있는데 이때 루이지의 수업을 동시에 듣고 있는 것이다. 실기는 하지 않지만 소묘를 해 나가는 과정 등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다행인지 동시 퉁역에는 어린 시절 나의 경험도 도움이 됐다. 


어린 시절.. 마당을 나서면 H대학을 나온 형의 친구(형벌) 화실이 있었다. 장독대를 돌아 그곳으로 가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허름하고 나지막한 집 전부는 화실이자 조소(彫塑) 작업실이었다. 겉보기와 달리 그곳에 들어가면 매우 세련된 풍경이 시선을 압도했다. 우선 회칠한 벽면에는 추상화가 벽면 전체에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작업을 하다만 석고들이 디딤대 위에 올라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풍경. 그리고 이젤에 그리다 만 그림이 그대로 걸려있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맨 먼저 누렁이를 쓰다듬고 난 다음 곧잘 화실로 향했다. 그리고 턱을 괴고 쪼그리고 앉아 형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신기했다. 


그 형의 손놀림은 가히 달인이었다. 형틀에 쏟아부은 석고를 이리저리 몇 번 돌리고 응달에서 잠시 말리는가 싶으면 다음날 건조대 위에 서양인들의 형상을 한 석고들이 줄지어있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석고 댓생에 필요한 두상으로 줄리앙, 비너스, 칸트, 시저 투구상 등이었다. 



이렇게 형의 화실을 훔쳐보는 습관은 초등학교(국민학교)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화실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석고 작업은 물론 소묘에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또래의 아이들은 흉내 조차 내지 못하는 석고 작업을 척척해 해내게 된 것이다. 이를 본 미술 선생님은 미술시간에 나를 조수(?)로 쓸 정도였다. 


왜냐하면 학생들에게 실기를 일일이 지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배운 방법 그대로 학생들에게 알려주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묘는 물론 포스터 그림과 디자인과 사생대회까지 단연 으뜸이었다. 그래서 다른 거는 몰라도 미술 점수는 무조건 100점..!! ㅋ 나의 작품(?)은 늘 교실 뒤편 게시판에서 발견되었다. 사생대회는 단골로 참여해 상을 받았던 것이다. 


미술 선생님은 나를 미술반에 데려다 놓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당시 내게는 미술반 보다 입시가 더 우선이었다. 아쉬움을 남긴 사건과 다름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아예 미술과 관련된 일은 눈팅 조차 하지 않았다. 미련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략 5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낯익은 풍경 속에서 하니의 동시통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신통방통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요즘 하니의 그림 수업은 기초과정이다. 정밀 소묘 과정을 통과한 다음 본격적인 붓질이 시작될 것이며, 붓질은 당신이 좋아한 루이지의 화풍을 따라갈 것이다. 루이지가 존경해 마지않는 램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 렘브란트_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는 알려진 대로 빛과 어둠을 조화롭게 그려내는 빛의 화가로,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화풍을 전하는 자료에 따르면 작품 속 대상에 대해 사실적 수법을 쓴 다른 네덜란드 파의 화가와 다름이 없으나, 빛의 효과에 있어서는 색채 및 명암의 대조를 강조함으로써 의도하는 회화적 효과를 거두었고, 그는 '근대적 명암의 시조'란 이름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하얀 도화지 위에 연필로 그린 그림의 수는 얼마나 될 것이며, 그렸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한 지우개는 또 얼마나 되었을까.. 



불세출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무릇 천재 예술가란 타고난 재능도 필요했지만, 흘린 땀과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예술세계가 아니던가.. 여행기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찾아가는 길에 웬 도화지며 연필이고 지우개인가 싶지만, 여행자의 마음 또한 닮은 듯해서 오래된 추억과 그림 수업을 소환해 본 것이다. 

하니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는 매의 눈을 가진 귀신이었다. 하니의 평이었다. 


당신이 그려둔 소묘의 과정을 철저히 분석해 내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것이다. 대상의 형체에 깃든 질감과 명암 등을 연필(Carboncino) 세 개로(B, HB, H)로 세밀하게 그려나가는 것이다. 루이지는 당신이 피렌체 예술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하니에게 전수하는 것이며, 하니가 좋아한 화풍으로 가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따라 한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적어도 한 달 많으면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수업 중 루이지의 회상에 따르면 예술학교에서 소묘를 배우는 학생들이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엄격한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미켈란젤로도 이 같이 혹독한 수업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한 작품이 완성되면 무생물에 불과하던 소묘 작품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이다. 


여기까지 도달할 때 하니 혹은 학생들이 사용한 것은 거울이었다. 대상을 앞에 두고 도화지 위에 그린 그림이 사실과 얼마나 다른지 매 순간 비교해 가며 수정해 나가는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대상은 반대의 모습이지만, 형체는 오롯이 살아있는 것이다. 마치 미술시간을 소환한 듯 여행기를 길게 끼적거린 이유는 다름 아니다. 



우리는 여행이 실생활인 듯 보이는 보헤미안들이 아니다. 흔히들 여행자와 방랑자의 차이를 비교할 때 '돌아갈 곳이 있느냐 없느냐'가 전부라 말한다. 돌아갈 곳이 있으면 여행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방랑자라고 말하는 것. 그러나 전자의 경우라 할지라도 무턱대고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을 수 없이 봐 왔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또 걷고 또 걸어서 목적지로 향하면 모두 여행자라고 불러야 할까. 물론 그렇게 부르겠지.. 


그러나 여행을 정밀 소묘처럼 보다 더 세밀하게 구분해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또 여행자의 나이와 장소 등을 감안하면 여행지의 감흥은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화지와 연필 등을 소환한 이유는 이러하다. 자주 떠날 수 없는 먼 나라 먼 길의 여행에서 지워야 할 대상이 있다. 정말 힘들게 다녀온 여행지를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힘들게 다녀온 트래킹 길에서 머리에 떠오른 게 무엇인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여행을 끝내 놓고 보니 그런 과정은 내 속에 찌든 때가 말갛게 씻겨진 경우의 수였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내 가슴에 품었던.. 남아있던.. 찌들어 있던.. 스트레스가 하나둘씩 지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나쁜 기억들이 하나씩 지워져 가고 있었던 것이랄까..

우리가 좋아하는 내설악의 봉정암에 얽힌 전설도 그러했다. 세간에 널린 전설 속에는 '봉정암에 세 번만 다녀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불자가 아니라도 한 번만 들어도 귀가 솔깃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너도 나도 우리도 봉정암으로 발길을 옮겨보는 것. 사람들은 봉정암으로 갈 때 소원 몇 가지를 가슴에 품고 간다. 사업 성공, 수능 대박, 불로장생 등등.. 



그런데 이런 소원들은 봉정암을 다녀오는 즉시 전혀 쓸모없는 허튼 바람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채며 어리석음을 탓하게 된다. 그들은 봉정암에 도착한 이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당신의 몸뚱이 하나 지키기도 버거운데 무슨 허튼 망상인가 싶은 것.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오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하니와 함께 파타고니아 여행을 하며 코크랑으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은 생전 듣보잡이었다. 오래전 오~래전.. 이곳에는 천지개벽의 현장이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환태평양 화산대가 꿈틀거리면서 용암이 철철 넘쳐났다. 


화산대(아메리카 판과 나스카 판)는 안데스 산맥을 만들고, 종국에는 남미대륙 끄트머리 파타고니아 지역에 거대한 바위산을 남겼다. 


우리 인간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거대한 산.. 엄청난 지진활동과 화산활동들.. 조물주는 이때까지만 해도 남자 사람을 만들 꿈도 꾸지 못했을 것. 자료 사진을 앞에 두고 보니 우리의 존재는 대륙지각에 붙어사는 생물들이며, 지구별 깊숙이 들여다보니 존재의 의미가 점점 더 희미해진다. 



그러나 조금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여행자이며 눈만 뜨면 세상을 거머쥐었다고 떠들어 대는 조물주의 화신이다.(이거 재밌군 ^^) 어느 날 여행자 눈에 띈 풍경은 조물주의 작품이라고 한다. 조물주가 공들여 만든 작품이자 도화지에 연필로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설계한 작품들. 그 작품들을 세심하게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상에 살면서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준 시행착오의 순간들이 하나둘씩.. 종국에는 하얗게 말갛게 흔적도 남김없이 지워지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이 준 매력이자 놀라운 마력이다. 여행과 지우개.. 불가분의 관계를 놓고 우리는 오늘도 정든 도시 정든 나라를 잠시 떠나 대자연의 품에 안기는 게 아닐까.. <계속>


la strada per andare a Cochrane, la destinazione nascosta della Patagonia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con mia moglie_Patagonia CILE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