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너무 길었던 별리 여행
걱정하지 마라 아들아.. 내가 너를 인도하리니..!!
본론에 앞서 잠시 안내 말씀.. 포스트 제목에서는 '스위스'라 적었지만 별일 없는 한 나의 브런치에서는 이탈리아식 발음을 사용하고 있음을 참고 바란다.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어 발음 스위스를 스뷧쩨라(Svizzera라고 부른다. 자료를 살펴보니 스뷧쩨라에서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4개의 국어가 있으며, 로망슈어 빼고 다 연방 공용어란다.
그중 독일어가 가장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스뷧쩨라 사람들은 2개 국어 이상을 할 줄 알며 많은 사람들이 영어도 잘해서 영어로 의사소통하기에도 큰 문제는 없다. 이탈리아어는 티치노 주(Ticino) 칸톤 및 일부 지방에서 쓰이고 있다. 여행 중에 사용되는 언어는 소통에 매우 중요하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을 알 수 있으므로 먼 나라를 여행할 때 잘 챙겨두는 게 여러모로 유익하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하니를 한국으로 떠나보내는 별리 여행에서는 외국어를 사용할 이유가 거의 없었다. 주로 고속도로 위에 있었기 때문이며, 단 한 차례 이탈리아 스뷧쩨라 국경에서 고속도로 비용을 지불할 때 한 여경과 나눈 대화가 전부나 다름없었다.
만추(晩秋)의 스위스 고속도로 풍경
그녀는 국경에서(자료사진 참조) 승용차를 한쪽으로 세운 다음 도로비 40유로를 지불해야 한다며 영수증 격인 스티커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스티커는 승용차 앞에 붙이고 다닌다. 이탈리아에서 스뷧쩨라 국경으로 넘어올 때 거리를 참조하니 가격이 너무 비싸 유효기간이 어떤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4개월짜리란다. 그러니까 국경을 자주 넘나 드는 사업자들에게는 비용이 싼 편이랄까.
하지만 나의 경우 일정이 왕복에 불과하므로 편도 20유로였다. 그렇다고 고속도로비 때문에 다시 스뷧쩨라를 여행할 수도 없고..ㅜ 아무튼 스뷧쩨라 사람들은 돈에 관한 한 유대인들의 상술을 쏙 빼닮았다는 소문이 그저 된 게 아니었다. 대략 인구 850만 명의 스뷧쩨라의 경제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화폐는 스뷧쩨라 프랑(CHF)을 사용한다.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하반기부터 1프랑당 1.2유로의 최저 환율제를 도입하였으나, 2015년 03월 18일 기준으로 포기했다. 유로화 사태 시작 전인 2008년만 해도 외환 보유고는 800억 달러로 대한민국의 1/4 수준이었으나, 유로화와의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무제한 매입에 들어가 2014년 현재는 5,300억 달러를 기록해 세계 3위로 7위인 대한민국보다 높은 나라다.
또 평균 연봉은 9만 스뷧쩨라 프랑(한화 약 1억 원), 실업률은 3% 미만으로 주변 유럽 국가와 경제력 수준 차이가 크다 보니, 전쟁의 위험이 사라진 현재에도 상대적으로 배타적인 정책들을 취하고 있다는 것.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스뷧쩨라의 물가 때문에 생긴 일화를 소개한다. 그리고 만추의 스뷧쩨라 고속도로 풍경을 연속으로 감상해 보고 있는 것.
스뷧쩨라 사람들이 산중에서 마땅히 먹고살 게 없어서 하느님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스뷧쩨라 사람들에게 소와 양을 줘서 목축으로 먹고살게 했다. 이후 목축으로 성공한 스뷧쩨라 사람들이 고기, 우유, 치즈 등을 하느님에게 바쳤다. 하느님은 매우 고마워하며 맛있게 먹고 떠나려 했다. 그러자 하느님을 붙잡으며 스뷧쩨라 사람들이 "아무리 하느님이라고 해도 음식을 드셨으면 돈을 내셔야죠!"라고 했단다. 하느님에게도 대가를 뜯어낼 사람들이란 것. 이들에 비하면 목숨을 담보한 거나 다름없는 여행사진들은 얼마나 지불받아야 할까..ㅋ 각설하고.. ^^
본문에 등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촬영된 여행사진들은 이탈리아 스뷧쩨라 국경에서부터 루체른 호수까지 이어지는 여정에서 남긴 기록들이다. 사진은 최소한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의 고속 주행 중에 촬영된 것으로 전문가가 아니면 함부로 따라 하면 곤란하다. 만약 주행 중에 핸들을 놓치는 일이 생긴다면 목숨을 보장할 수가 없는 매우 위험한 작업이므로 초보자는 절대 따라 하지 마시길 당부드린다! 운전석에 앉아 한 손은 핸들을 잡고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지향 촬영을 한 사진들이다.
이탈리아와 머리를 맞댄 국경을 넘어 스뷔째라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고속도로 곁의 풍경은 만추를 쏙 빼닮아있었다. 만약 코로나가 수그러들었다면 당장 램프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머나먼 코로나 탈출 여행의 피로와 슬픔을 간간이 씻겨주는 풍경이 프랑크 프루트 공항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후 루체른 호수 곁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호숫가에 머문 만추의 풍경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잠시 쉬었다 가란다.
너무 길었던 별리 여행 코로나 탈출 3000킬로미터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초행길의 스위스 고속도로 풍경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하니와 함께 당장 램프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한다면 만추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것. 그러나 여기까지 여정과 여행 목적을 생각하면 그냥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우리가 독일행을 작심할 때만 해도 걱정이 앞섰다.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까.. 혹은 무사히 잘 돌아올 수 있을까 싶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한 순간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은 만추의 풍경들이 잠시 걱정을 덜어주고 있는 것. 우리 곁에는 울긋불긋한 옷차림을 한 요정들이 손을 흔들며 별리 여행을 배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아들아.. 내가 너를 인도하리니..!!
네, 아버지..!!
하니와 나는 만추의 스빗쩨라의 화려한 배웅을 받으며 잠시 망중한을 즐길 루체른 호수에 다다랐다. 우리는 예정보다 하루 빠른 시각에 도착한 나머지 루체른 호수 곁에서 하루를 묵을까 싶었지만, 만약 그러했다면 별리 여행은 보다 더 길어질 뻔했다. 하늘의 보살핌이 함께한 행운이 뒤따랐다. 호숫가에 해가 뉘엿거리고 있었다.
영상, 만추(晩秋)의 스위스 고속도로 풍경
Un viaggio di addio troppo lungo_verso alla Germania
il 30 Otto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U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