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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09. 2020

파타고니아의 색(色) 다른 아침

#6 남미 여행, 또레스 델 파이네 처음부터 끝까지

동네 뒷산이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 코로나 19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는 입버릇처럼 "동네 뒷산이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 전문 산악인은 아니지만 산을 좋아하는 하니가 맨 처음 파타고니아의 엘 찰텐에 발을 디딘 후 한동안 피츠로이(Fitz Roy)를 잊지 못했다. 그곳은 오염원이 없는 청정지역이자 산하는 태곳적 모습을 하고 있었다. 파타고니아가 당신의 마음을 훔친 것이랄까.. 우리가 최근 다녀온 돌로미티에 둥지를 틀고 싶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파타고니아와 돌로미티.. 공간은 달라도 티 없이 맑은 공기와 옥수가 쉼 없이 흐르는 곳이었다. 산천초목들이 모두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어느 날 여행자들이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먼동이 트기도 전에 야영장을 떠나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저 멀리 평원 너머에서 막 해돋이가 시작되면서 세상은 점점 더 붉은 기운 아래 놓이게 됐다. 파타고니아의 색다른 아침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色) 다른 아침




발아래를 굽어 보니 우리가 지나온 흔적 뒤로, 리오 빠이네(Rio Paine)가 느리게 느리게 빠이네 평원을 적시며 흐르는 풍경이 보인다. 꿈같은 풍경이다. 아침햇살에 비친 산천초목들이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고 있는 모습. 달님이 떠난 자리에 하루를 시작한 대자연의 경이로운 아침..



그곳에 시간이 박제된 흔적들이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들도 한 때는 푸른빛을 띤 고목이었건만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자연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허무한 현상을 두고 위로의 말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말했던가. 





이 말은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이라는 아리송한 말로 번역된다. 본래의 뜻 범어(梵語) 원문은 "이 세상의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지는 않다. 또, 물질적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부터 떠나서 물질적 현상인 것이 아니다. 이리하여 물질적 현상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대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물질적 현상인 것이다."로 풀이된다. 



여전히 아리송하다. 선지자들의 깨달음의 세계는 범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마는.. 내 눈에 비친 세상의 실체는 그저 아름다운 것만으로 만족한다.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그림자가 공허할지라도, 공허한 가운데 아름다움이 실존한다 할지라도 우리네 삶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랄까.. 



본문에 삽입된 여행사진들은 순서에 따라 배열해 둔 것으로 야영장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며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뷰파인더에 포착된 것들이다. 남미 여행을 통해 나를 만족하게 만든 건 남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예술가의 십계명>이라고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십계명 중 첫째 계명은 여행 중에 늘 나를 따라다니는 화두(간화선(看話禪)이라고도 한다) 중의 하나였다. 이랬지..



첫째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당신의 존재가 무색하거나 무의미해질 때 사람들은 곧장 종교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하여 당신의 신앙심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었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선지자들이 깨달은 세상 저 너머를 탐하고 있었다. 



누구를 믿으면 극락(極樂)을 가게 된단다. 누구를 믿으면 천국(天國)으로 가게 된단다. 그곳에서 영원 복락을 누리게 된단다. 나는 가십의 '카더라'를 별로 반기지 않는다. 내가 본 사실대로 내가 느낀 느낌만 말할 뿐이다. 그때 허전했던 마음 한 구석을 채워주었던 게 가브리엘의 미스뜨랄의 가르침이자 노래였다. 당신의 눈에 비친 아름다움이 신의 그림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파타고니아에 발을 들여놓으면 신께서 당신을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발현되는 것이다. 하니는 그 즐거움을 일찌감치 맛본 것일까.. 차광용 마스크를 착용한 하니가 저만치서 산을 오르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 19 따위는 존재 자체를 몰랐을 뿐 아니라 파타고니아 땅에는 범접을 할 수 없었다. 청정지역이자 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곳을 침범했다면 가차 없이 사그라들게 될 것. 



우리가 머리를 뉘고 싶었던 땅이 주로 그러했으며 파타고니아와 돌로미티가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고도를 높이는 동안 장엄하고 신비로운 현상이 뷰파인더에 포착됐다. 머리에 하얀 눈을 인 거대한 바위산이 붉게 물들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가치도 달라지겠지.. 우리 앞에 드리운 신의 그림자가 우리와 함께 동행하며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신의 그림자는 내 곁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또레스 델 빠이네의 속살이 드러난 곳에 수목한계선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 매일 날씨가 좋을 때 한 차례만 보여주는 우주의 쇼를 카메라에 담아온 것이다. 하니는 이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며, 자리를 옮겨 엘 찰텐으로 갔을 때도 그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에 갔을 때는 아예 그곳에 '둥지를 틀자'고 말했다. 



우리 인간의 신체 메커니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깨끗한 공기와 물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동안 혹은 돌로미티를 여행하는 동안 피곤한 줄 모르고 싸돌아 다닌 힘은 두 가지.. 우리를 지치지 않게 만든 물과 공기 그리고 신의 그림자가 늘 동행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여행기를 끼적거리고 있는 지금 칠레의 파타고니아와 이탈리아의 돌로미티 일부를 제외한 거의 전 지역이 코로나 19의 잔칫상으로 변했다. 주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도 인적이 뚝 끊어진 상태이다. 우리가 색다른 아침을 그리워하고 있는 게 그저 된 게 아니다. <계속>


il Nostro viaggio Sudamerica_Patagonia Torres del Paine CILE
Scritto_il 08 Nov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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