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찾아가는 길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 것일까..?!
리오 코크랑은 굽이굽이 돌아가며 비췻빛 옥수를 쉼 없이 어디론가 흘려보내고 있었다. 코크랑 찾아가는 길은 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고 굽이굽이 먼짓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피곤한 듯 여행자를 재미있게 하는 풍경도 굽이굽이 돌아가는 먼짓길 때문이랄까. 한 굽이를 돌아갈 때마다 닮은 듯 서로 다른 풍경이 차창밖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과 사뭇 다른 풍경들.. 황량해 보이는 듯 어디 하나 부족해 보이는 곳이 없을 정도로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풍경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나는 그들 중 낯익은 풍경 하나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늘 보고 자란 미루나무(Populus deltoides)가 이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미루나무가 서 있는 풍경
미루나무는 냇가에 살고 있던 어느 집 옆으로 나란히 줄을 지어 서 있었는데 우리는 포플러 혹은 뽀뿌라라고 불렀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내 고향 부산(서면)의 사상구 감전동에는 낙동강 하구로 길에 이어지는 길을 족바리 놈들의 말을 따서 뽀뿌라마치(町)라고 불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말 순화가 늦었던 때였고 부산 사람들의 말투는 자연스러울 정도로 족바리의 언어를 습관처럼 사용하던 때였다.
뽀뿌라마치는 포플러 마을이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미루나무에 고스란히 박제된 때였다. 봄이 오시면 미루나무는 봄의 전령사나 다름없었다.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연둣빛 새싹을 내놓은 것이다. 여린 잎을 내놓을 때까지 나는 그 장면을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 그러나 그 장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루나무가 내놓은 앙증맞은 이파리들이 자라 바람에 나부낄 때쯤이면 여름이 오시고.. 매미가 우는가 싶으면 태풍이 잦아들면서, 툇마루에 앉은 한 녀석은 도랑 한편에 줄지어 선 미루나무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루나무가 바람에 나부끼는 풍경이 사라져야 친구(동무)들을 만날 수 있는 것.
주야장천 노는데 정신이 팔린 한 녀석의 눈에 버드나무과의 미루나무(원산지가 미국인 미류(美柳) 나무가 미루나무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는 기상관측소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먼길을 떠나 낙동강 하구에 도착하면.. 미루나무 마을에 길게 이어진 수로 곁 미루나무길을 따라 강변에서 갈대의 서걱임을 듣고 오는 것이다. 낙동강의 모습이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논둑길을 따라 다시 철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모험을 강행한 것이다. 아침 일찍 친구들과 작당하여 그 먼길을 돌아오면 허기에 지쳐 울고 싶어도 울 힘 조차 없을 때였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축 늘어진 한 녀석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절반은 꾸짖음으로 절반은 다행한 표정으로 "이 녀석아 어디 갔다 왔느냐"며 안아주며 토닥거려 주신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어머니는 이어서 "어여 손발 씻고 밥 먹어"라며 정지(부엌)로 향하신다. 아.. 그때가 언제 적인가..ㅜ
나는 습관적으로 미루나무가 서 있는 풍경 곁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 가슴속에 아련하게 자리 잡은 한 풍경이 코크랑 가는 길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됐다. 파타고니아는 바람의 땅이었다. 건기가 지나고 우기가 오시기라도 하면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경험에 따르면 바람에 날려 서 있지 못할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 터전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집 주변에 방풍림을 빙 둘러 심어놓는다. 바람에 잘 견디는 미루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허리를 숙여가며 바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게 오래도록 습관이 되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반대로 비스듬히 누워 자라는 것. 나는 그 장면을 뿌에르또 인제니에로 이바녜스(Puerto Ingeniero Ibáñez) 포구에서 만난 적 있다. 파타고니아 사람들에게 미루나무는 매우 친숙한 존재랄까..
버스가 굽이굽이 먼짓길을 가는 동안 뷰파인더는 미루나무가 서 있는 풍경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행복한 풍경들이 가슴에 남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선이 미루나무를 향하고 있었던 것. 미루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그곳에는 분명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척박해 보이는 이 산하에도 오아시스 같은 땅이 있고 바람을 피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동승한 사람들일까..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 것일까..
그곳에도 놀기 바쁜 한 녀석이 어머니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을까.. 굽이쳐 흐르는 리오 코크랑 강 곁으로 굽이굽이 먼짓길이 이어지면서.. 한 여행자는 당신의 가슴에 남아있는 한을 토해내듯 미루나무가 서 있는 풍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이제 어느덧 나의 차례가 됐다. 어머니께서 애간장을 녹인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 미루나무가 서 있는 것이다.
그 나무는 왜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일까..
보고 싶다.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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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