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이 보다 더 황홀할 수 없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까마득히 오래전.. 인간이 시간을 계수할 수 없는 시간 저편의 바닷속이라고 한다. 우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한 복판에서 하느작하느작 유영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돌로미티 품에 안기는 순간이자 돌로미티를 잊을 수 없는 시간을 하늘이 허락한 것이랄까..
자유로운 영혼.. 세상의 구속으로부터 탈출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다. 하니는 다시 벼랑 끄트머리로 나아가고 있다. 해발 2,585미터의 거대한 바위산.. 그곳에는 전혀 상상밖의 비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여정 자랑스러운 그녀 편에서 이렇게 썼다. 어느 날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Barletta_provincia di Barletta-Andria-Trani in Puglia.)를 떠나, 북부의 뜨렌띠노 알또 아디제 주(Trentino-Alto Adige) 알따 바디아(Alta Badia)의 쉼터에서 올려다본 해발 2,585미터의 거대한 바위산 꼭대기는, 전혀 상상 밖의 비경을 우리에게 선물에 주었던 것이다.
일찍이 관련 자료를 뒤지는 동안에도 느끼지 못했던 장엄하고 신비로운 절경이었다. 하니와 함께 정상에 도착한 직후,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한 곳을 응시하게 됐다. 그곳에는 태곳적 시간이 통째로 박제된 박물관(?)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이때부터 놀이에 정신 팔린 아이들처럼 어쩔 줄 몰랐다. 그 현장을 천천히 둘러본다.
리푸지오 삐쉬아두(Rifugio F. Cavazza al Pisciadù Hütte) 정상에 도착한 직후 벼랑 끝에서 우리가 걸어왔던 정상 부근의 길을 돌아보니 까마득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본 곳에 전혀 상상밖의 비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뷰파인더를 꽉 채운 시간 저편의 태곳적 풍경들.. 그제야 사람들이 왜 돌로미티 산군에 열광하는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조물주는 천지만물을 다 지어놓고 어딘가에서 쉼을 얻었을 텐데.. 그때 당신께서는 돌로미티 산군(山群)의 어느 곳에서 창조물을 내려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을 것. 그리고 장차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이 함께 이곳을 방문할 기회를 준 게 아닐까 싶은 생각들.. 황홀함이 벅차 말문을 막아버렸다. 이때부터 천상유희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신선들의 지경인 하늘나라에 발을 디딘 것이다.
벼랑 끝에 다가서서 바라본 돌로미티 산군.. 한 때 이곳은 심연을 알 수 없는 바닷속 깊은 곳이라 했지.. 그러고 보니 한 인간이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 거야.. 비행기를 타고 알삐(Alpi)를 지나칠 때도 눈치채지 못했던 절경이 파노라마(Panoramica)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만약 카메라가 없었다면, 하산한 이후 사람들에게 이런 풍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면 전혀 믿지 않을 게 아닌가. 아마도 이상향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다녀온 정신박약자쯤으로 여길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산속을 헤매다가 낙원에 발을 들여놓은 무릉도원 이야기를 잠시 소환해 본다.
4세기 무렵 중국의 이야기이다. 후난 성(湖南省)의 무릉(武陵)이라는 지역에 민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어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남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따라 계곡 깊숙이 들어가는 사이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부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자신의 작은 고기잡이 배를 저어가니 계곡 양쪽 물가를 따라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하나같이 모두 복숭아나무였다. 달콤한 향기가 계곡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꽃잎이 하늘하늘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어부는 이 복숭아나무 숲이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보고 싶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한동안 가니까 복숭아나무 숲은 끊기고 계곡이 맞닿는 곳에 작은 산이 나타났다. 계곡 물이 솟아 나오는 수원 근처에 작은 동굴이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기슭에 배를 두고 뭍으로 올라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동굴 안은 무척 좁아서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였다.
동굴 안으로 계속 들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더니 눈앞에 대지가 나타났다. 넓은 대지는 평탄했고 손질이 잘 되어 있는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도 있었다. 잘 닦인 길과 커다란 집들이 있었고 그 집들의 뜰 안에서는 개나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들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나 머리를 땋은 아이들도 한가롭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어부의 모습을 발견한 마을 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부가 겪은 그대로 이야기하자 마을 사람은 자기 집으로 어부를 데리고 가서 술과 닭고기 요리를 대접해주었다. 어부에 대한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그 집으로 몰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아래 세상에 대해서 이것저것 어부에게 캐물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진(秦) 나라 때 전란을 피해서 가족과 친지들을 이끌고 이 산속으로 피난을 왔다. 그 후로는 마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과는 인연이 끊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마을 사람들은 한(漢)이라는 시대도 몰랐다. 그러니 위(魏)나 진(晋)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략 500년 동안이나 바깥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하자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다음부터 마을 사람들은 번갈아가면서 어부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해서 푸짐한 술과 안주로 대접하며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어부는 이 마을에서 며칠 동안을 지낸 후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 중 하나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 주시오."
어부는 마을을 나와서 원래 장소에 있던 배를 타고 오면서 도중에 표시가 될 만한 곳을 여기저기 눈여겨보며 자신의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을 관리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관리는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어부에게 부하를 동행시켜서 마을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는 그 평화로운 마을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출처: 위키백과
동서양의 세계관은 적지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돌로미티의 리푸지오 삐쉬아두가 연출해 낸 절경은 무릉도원 혹은 천상유희 같은 이상향을 소환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들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얼추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우리는 넋 나간 사람처럼 이리저리 발길을 옮겨가며 돌로미티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그러한 잠시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천상에서 먹는 만찬이 곧 시작될 것이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지금 현재 위치
참고로 우리가 노닐고 있는 현재 위치를 기록해 둔다.
사진과 영상은 트래킹을 나서기 전 알또 바디아 쉼터에서 올려다본 리푸지오 삐쒸아두의 위용이다. 우리의 현재 위치는 구름 속에 가려진 정상 부분이다. 지금까지 본 풍경들은 정상에서 수평으로 바라본 절경인 것. 우리는 어느 날 놀라운 장면을 맞닥뜨리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실로 기기묘묘한 세상이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2020
il 12 Nov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