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우리는 언제쯤 행복해 할 것인가..?!!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돌로미티 여정이 19박 20일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냥 얼마간 바람이나 쇠고 올 요량이었는데.. 웬걸 돌로미티가 우리의 발목을 붙들며 '가지 말라'며 통사정을 하는 게 아닌가. 돌로미티는 중독성이 워낙 강하여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미궁에 빠진 듯 뒤로 돌아서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것도 우리 코 앞에 모습을 드러낸 리푸지오 삐쒸아두의 정상은 해발 2,585미터에 달하고 정상 부근까지 이어지는 길은 험악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하니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 이유는 잠시 후에 나타났다. 그녀는 "그냥 빨리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천하절경을 코 앞에 두고 주유하던 중 갑자기 마음이 돌변한 것이다. 로지 너머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비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닌 여정 곁에 없는 사람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만약 우리가 중도에 포기했더라면 코 앞에 있는 비경을 놓칠 뻔했다. 힘든 여정 가운데 눈에 띄는 풍경들은 절경이었으며, 그야말로 무릉도원에 발을 들여놓은 어떤 사람의 증언 같았다. 전설 속의 그가 카메라가 있었다면 무릉도원의 실체가 현실로 드러났을까.. 하니는 코 앞에 등장한 비경 앞에서 자꾸만 "빨리 돌아가자..ㅜ"고 말한다. 산행 중에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띠리리리릭.. 띠리리리리릭X3.. 띠깍!) 여보 세효?
-응, 나.. 머해?
-산에 갔다 왔어.
-몸은 괜찮아?
-응, 지난번에 개한테 물린 자국이 다 아물었어.
-다행이군, 얼마나 놀랐다고..ㅜ
-글쎄, 그 개 주인 여자가 더 나빠. 젊은 여잔데.. 싸가지 반푼 어치도 없데..
-그러게..
-자기는 모른데.. 개가 물었지. 개는 주인 닮는다자나..
-맞아, 개 보면 성깔을 알만하군.
-개도 조그마해. 시츄견인데..
개 한테 물린 하니
하니는 지난주 집 근처 횡단보도에서 개한테 물렸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신호를 기다리는 데 느닷없이 개가 달려들어 물었다는 것이다. 가해자 아니 가해 견은 축구공만 한 시츄견이었는데 개 주인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그녀는 즉시 "(광견병) 주사는 맞았느냐?"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란다. 그리고 연락처만 휴대폰에 입력한 다음 그냥 귀가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봉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입에서 "이런 개새끼 봤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똑같은 소리로 개 주인 여자한테도 일갈을 했다. 웬만하면 놀라지 않는 나였지만 이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즉시 사진을 찍어 개한테 물린 자국을 증표로 남겨두었는데.. 그곳에는 이빨 자국 두 개가 선명했다.
-응, 그래서..
-아파!.. 마치 송곳으로 찌른 것 같아. ㅜ 왜 개를 데리고 다니면 주둥이를 씌우지 않지..ㅜ
그럴 만도 했다. 시츄라는 녀석이 주둥이가 있나.. 가리게를 씌울만한 주둥이가 없는 녀석이자 사람들은 축구공만 한 녀석을 곁에 있어도 겁내지도 않는다. 여우도 아니고 늑대를 닮은 것도 아닌 것이.. 그럴 리가 없지만 그녀와 함께 신호등 곁에서 봉변의 현장을 목격했다면, 나는 즉시 갯값을 물어줄 요량으로 발길질을 하며 축구공처럼 차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아니면 녀석을 붙들고 다리 한쪽을 물어뜯었을지도 모를 일..ㅋ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웃음이 나오네 ^^)
-그럼 지금 머해..?
-응, 방콕 중이야.
-한국은 뉴스 보니까 코로나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던데..
-500명도 더 넘었어.. 거긴 어때?
-여긴 난리도 아냐. 이탈리아는 하루에 800명 이상씩 목숨을 잃는다니 말이나 되나..?!
우리 독자님들은 다 아시는 이야기이다. 하니는 코로나 19를 피해 한국으로 도피해 있는 것이다. 대략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둑 피하니 강도 만난 꼴'로 봉변을 당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노심초사했다. 만약 광견병이라도 옮으면 어떡한단 말인가. 개 주인의 연락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계속 '만약'을 생각하며 하니의 전화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 그녀로부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 것.
나는 하니와 다녀온 돌로미티 리푸지오 삐쉬아두 사진첩을 열어 놓고 통화를 회상했다. 참 다행한 일이었다. 우리가 돌로미티의 한 빼어난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을 때 하니는 자꾸만 "내려가자!ㅜ"며 보챘다. 천신만고 끝에 당도한 정상의 빼어난 절경을 느긋하게 감상할 겨를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니는 정상으로 오를 때 만난 거의 수직의 벼랑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겁을 먹은 나머지 짧은 순간 트라우마로 작용해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고나 할까.. 웬만하면 당신의 처지에 대해서 입을 꾹 다무는 그녀가 마음에 걸렸다. 지금 당장 돌아가자는 그녀를 향해 "조금만 더 있다 가자"며 억지 아닌 억지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걍 내려가..!ㅜ
-쫌!..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니까!!ㅜ
이제.. 당분간 그럴 일은 없어졌다. 하니는 한국에 나는 이탈리아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데 억지를 부릴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잠시 떨어져 지내게 만든 코로나 19가 아니었으면 애틋함이 덜했을 것 같기도 하고.. 집콕하는 시간이 없거나 매우 줄었다면 지나간 일을 추억할 겨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가 연출한 삶의 또 다른 모습이랄까..
마침내 하니와 실랑이를 벌인 곳에 당도했다. 그곳에는 리푸지오 삐쉬아두(Rifugio F. Cavazza al Pisciadù Hütte)의 로지가 있는 곳이며 로지 벽에는 이곳이 해발 2,587미터라고 써 두었다. 힘들게 이곳까지 진출한 사람들은 로지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요기를 하곤 했다. 바람은 살랑거리고 하늘빛은 이탈리아 아주리 군단 유니폼(Nazionale di calcio dell'Italia)의 색을 쏙 빼닮았다.
로지에서 내려다본 작은 호수의 물빛은 푸르다 못해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했다. 속은 훤히 들여다 보였는데 날씨가 차지 않았더라면 훌러덩 벗고 뛰어들어.. 목구멍 끝까지 찰 때까지 옥수를 들이켜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될 일이자 정상의 온도는 입수를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날씨였다.
사진첩을 열어 그때를 회상하다 보니 별 생각들이 다 머리를 스친다. 하늘이 우리에게 허락한 매우 특별했던 여행지이자 죽을 때까지 가슴에서 지울 수 없는 추억이 돌로미티의 어느 산중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구름 조차 쉬었다 가야 하는 그곳에 조물주는 작은 호수를 마련해 놓고 당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라고 한다. 당신의 삶을 뒤돌아 보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의사와 관계없이 인생의 끄트머리까지 다가갈 것이며, 그동안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역경을 겪었을 것이다. 그때 동고동락한 한 여자 사람의 애원조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니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돌로미티 여행 사진첩을 열어보니 그곳에서 작고 짙은 회한이 묻어났다. 나는 천하절경을 앞에 두고 자꾸만 뭉기적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천하절경 혹은 비경..!!
돌로미티 여행 사진첩을 열어 여행기를 끼적거리는 지금(현지시각 밤 11시경) 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는 주룩주룩 비가 오신다. 언제부터인가 밤이 오시면 진공상태로 변했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빗소리가 이렇듯 다정다감하게 들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돌로미티에 남겨진 우리의 추억 때문일 것..!! 이 또한 코로니가 준 희한한 선물이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2020
Scritto_il 29 Nov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