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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13. 2019

손잡이만 바꿨을 뿐인데   

-대박 예감 노랑 우산

똥 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 다르지..!


우리 속담에 유독 똥과 관련된 이야기가 적지 않은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똥 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 다르다는 건 '사람의 마음이 자주 변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한다. 지금 내가 이런 모습이나 다름없다.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피렌체에 둥지를 틀 때까지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곡절을 겪는 동안 자리매김이 확실하면 이야기보따리가 가득한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를 샅샅이 돌아보고 싶었다. 그게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1주기가 다가온다. 그리고 잠시 뒤돌아 보니 우리 속담이 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것.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아니면 마음이 변했다고 할까.. 처음에는 눈에 엑스레이(?)를 켜고 바라보던 르네상스의 유산들이 점점 흥미 바깥으로 겉도는 것.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딱히 '이것이다' 하고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흥미들로부터 저만치 멀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시큰둥해진 것. 왜 그랬을까.. 지난주에 마침내  그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보다 현대의 피렌체에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 그 실마리는 노랑 우산으로부터 시작됐다.




글쓴이가 이탈리아어 인텐시보 과정 때문에 매일 오전 오후에 드나들던 피렌체 중심가는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곳이다. 신었을 때 발이 너무 편안한 로퍼나 하이힐 같은 구두가 유명한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_창업주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장남 페루치오 페라가모 회장) 본사 앞을 매일 지나치는 것.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의 영화배우 이미연 씨가 페라가모의 본사를 방문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거리이기도 하다. 


이 거리에는 페라가모 외에도 헤르메스, 로레따 까포니, 레꼬뱅, 까사 데이, 막스마라, 파렌띠, 뽀멜라또, 토즈, 로베르또 까발리, 구찌, 안네 폰따이네, 쁘라다, 로마넬리, 몽블랑, 지안프랑코  로띠, 도도, 쇼파드, 셀린느, 티파니, 버버리, 푸치, 돌체 앤 가바나, 오메가, 발렌티노, 발렌시아, 크리스천 디올, 다미아니.. 등등 피렌체 시내에는 이름을 대기만 하면 낯익은 브랜드들이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유혹한다. 유혹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동안 아내의 동선을 쫒아다니다가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나 홀로 외출을 승인(?) 한 것이랄까.  아내는 한동안 이들 브랜드에 푹 빠져 어떤 때는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아내는 르네상스의 유산들 보다 피렌체 시내를 다니며 아이쇼핑하는 것을 더 즐기고 있었던 것. 속으로 못마땅했지만 그나마 이런 낙이 없다면 피렌체는 또 얼마나 삭막할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못마땅해 한 내 속마음이 곧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이럴 때 쓰던 속담이  똥 먹던 강아지 안 들키고 겨 먹던 강아지 들킨다고 했던가. 




지난주 시내를 산책하던 중 나는 진열장에 전시해 둔 노랑 우산을 발견하고 잠시 발길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앙증맞고 귀엽게 생긴 우산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브랜드 생략) 똑같은 우산인데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디자인이었다. 자세히 보나 마나 손잡이만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것. 그때 문득 노랑 우산을 받쳐 들고 노랑 우의를 입고 노랑 장화를 신은 작은 꼬마 아이를 떠올렸다. 그런 녀석을 보면 오리 병아리를 만난 듯 얼마나 귀여울까.. 그리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이들이 우비를 하고 집을 나서면 맨 먼저 하는 일이 월까 하고 말이다.



"보나 마나 녀석은 물웅덩이를 찾아 첨벙거리며 다니겠지..ㅋ" 


언제부터인가 내가  르네상스의 문화유산보다 진열장의 풍경을 훔치고(?) 다닌 이유가 은근슬쩍 드러났다. 그리고 아내의 눈팅을 백분 이해하고 나선 것. 어떤 때는 아내가 늦게 귀가하면서 시내에서 만났던 진귀한 풍경을 늘어놓으며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그땐 속으로 "그게 그렇게 좋을까'싶었지만, 웬걸.. 현대의 피렌체가 르네상스 시대 때 보다 더 재밌게 다가오는 것이다. 똥 먹던 강아지 안 들키고 겨 먹던 강아지 들킨다고 했지.. 


이 속담은 "크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은 쉽게 안 들키고 작은 일을 못한 사람이 들켜 애매하게 남의 죄까지 뒤집어쓰게 되었을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이제 나 혼자 시내를 돌아다니면 아내가 이런 속담을 들먹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약간의 발상 전환만으로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이런 상품은 만들기만 하면 대박 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명품이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Nella vetrina Giallo Ombrello 
in Via dei Calzaiuoli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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