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소 다른 느낌
#정중동_질주
저만치서 자동차 한 대가 먼지를 꼬리에 물고 어디론가 질주하는 풍경 너머로 일몰이 커튼을 드리우고 있다. 늘 어디를 가나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습관이 이럴 때 필요했다. 이런 순간을 그저 머릿속에만 저장해두면 있으나마나한 풍경. 이런 장면들 혹은 귀한 장면들을 모아 죽기 전에 책 한 권을 내거나 전시를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사진을 찍는 목적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발품을 팔아 챙긴 귀한 장면들이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면 덩달아 기뻐질 것 같았다. 우리는 누군가와 소통을 할 때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것. 사진도 그렇고 예술행위도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혼자만 좋아서 거울만 들여다 보고 희죽 거리고 있다면 그게 인간이 할 짓인가.
모름지기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누군가와 소통이 필요한 것. 만약 그런 행위가 없거나 매우 부족할 때 불쑥 찾아드는 게 있다. 처음엔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니 소통부족이 가져온 결핍현상이었다. 우울이란 녀석이었다. 생전 처음 울적한 경험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 노바라에서 한 것이다.
그곳은 요리학교의 실습과정이 한창일 때인데 정신없이 바쁘게 지낼 때였다. 당시 생활을 요약하면 꾸치나에서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샤워를 하는 둥 마는 둥 금방 곯아떨어지곤 했다. 다시 리스또란데로 하루 두 번씩 오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대화 상대는 있을 망정 대화시간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셰프와 동료와 나누는 대화는 소재도 제한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부족했다.
그런 어느 날 출근을 했는데 오너 셰프가 오늘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쉬어야 하므로 숙소로 돌아가 다음날 출근하라고 했다. (이게 웬 떡인가..) 내심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리스또란떼를 나서며 가까운 수로를 따라 노바라의 벌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알프스에서 발원한 물이 철철 넘치는 그곳은 평소 가 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고 보니 허전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유가 뭘까..
#질주_정중동
요리 유학을 하는 동안 나를 돌아볼 여유 조차 없었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았다.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불행의 늪으로 나를 끌어들였다고나 할까. 조금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울적한 느낌의 근원이 나를 돌아볼 수 없었던 시간 때문이었던 것. 벌판에 드리워진 붉은 커튼 아래로 자유롭게 질주하는 작은 자동차 한 대가 고립으로부터 탈출하는 장면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들어도 세상만사를 다 깨우쳐도 어쩔 수 없는 건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란 점이다. 사람들이 늘 바깥에 시선을 두고 사는 동안 나를 일구고 있는 자아의 내면은 내팽개쳐둔 게 울적함을 불러일으킨 것. 어쩌나..
가끔씩.. 살기 바빠 내팽개쳐 둔 자아를 보살피면 그곳에 웅크리고 앉아 흐느끼고 있는 한 녀석을 만나게 될 것이다. 녀석은 당신의 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가. 울적한 마음은 잠시, 먼지를 꼬리에 물고 사라지는 자동차와 함께 숙소로 발길을 돌린다. 자아가 말한다.
"오늘 주인님이 나를 토닥거려 주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헤..^^"
il Tramonto della NOVARA
Via ventisei Agosto 1944 Novar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