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8. 2020

터널 속에서 일어난 깜놀 사건

#28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가끔씩 전혀 뜻밖의 일에 깜짝 놀라게 된다..!!



   서기 2020년 9월 28일, 하니와 나는 돌로미티의 치비아나 골짜기에 있었다. 연재 글에서 언급했지만 우리가 이 골짜기를 찾아간 이유는 돌로미티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싶어서였다. 어느 여름날 감행한 돌로미티 여행에서 우리는 이 지역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실로 놀라운 절경들이 펼쳐진 곳. 사람들이 왜 돌로미티.. 돌로미티..하는 줄 그제사 깨닫고 둥지를 옮길 작정으로 이 골짜기로 이동한 것이다. 


이곳으로 오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대략 편도 900킬로미터 왕복 2000킬로미터의 거리이다. 거리가 말해주듯 웬만하며 쉽게 나설 수도 없는 먼 곳이지만. 돌로미티의 유혹을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 골짜기에 도착한 날은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그리고 다음 날 비가 개일 것 같았지만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하며 시꺼먼 구름들이 산등성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런 잠시 후 우리는 치비아나 디 까도레(Cibiana di Cadore)로 이어지는 국도변의 굴다리(눈여겨봐 두시기 바란다) 아래에 자동차를 주차해 두고 차콕하며 쉬고 있었다. 그곳은 잠시 비를 피하기 쉬운 곳일 뿐만 아니라 곁에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르는 수도꼭지가 있었다. 컵으로 물을 받아 마시니 한 순간에 속이 말갛게 변하는 것. 하니가 차콕을 하는 동안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수돗물이 나오는 장소를 지나 작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저만치 동굴이 하나 보였다. 처음에는 이곳에 웬 동굴이냐 싶었지만, 그 동굴은 터널이었으며 한 때 이곳으로 기차가 지나다녔던 흔적이 남은 곳이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한 때 철로였던 이 길을 산책로로 바꾸어 놓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산책로는 깨끗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터널 입구를 올려다보니 터널이 준공된 년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1919년.. 하필이면 아버지께서 태어나신 해에 이 철로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1919년은 기미년으로 3월 1일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이 시작된 날이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 속에서 지낼 때 아버지께서 태어나셨고 그해 이탈리아의 어느 골짜기에서는 철로가 완성된 것이다. 



나중에 치비아나 꼬무네(Comune_우리나라 동사무소 격)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은 50년 전에 철로가 폐쇄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1970년경에 폐쇄된 것이다. 철로는 이곳에 살던 주민들의 이동 수단이었으며 철광산의 부속물을 퍼 나른 임무를 끝마친 것이다. 그 임무를 50년 만에 마치고 어느 여행자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것.



나는 이런 풍경 앞에 서면 궁금증 내지 호기심이 즉각 발동한다. 터널 끝까지 한 번 돌아오고 싶어 진 것이다.  이날 아침 이곳에는 하니와 나를 빼면 아무도 없었다. 곁에 있는 국도변으로는 자동차들이 무시로 지나다녔지만 산책로에는 개미 한 마리 찾기 힘들었다. 하늘은 우중충 하고 비는 오락가락하시고.. 터널 내부를 들여다보니 중간중간 등불이 환히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귀신이 출몰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터널 입구에서 몇 발자국만 옮기고 돌아섰다. 기회가 닿으면 다시 가 볼 요량이었다. 터널 안에서 바깥으로 바라보니 저만치 굴다리가 보인다. 나는 조금 전 저 아래로부터 이곳까지 진출한 것이다. 비록 아스팔트로 포장된 산책로였지만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바라본 철길은 참 아름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증기기관차가 석탄을 태우면서 까만 연기와 수증기를 피우면서 이 길을 오갔을 것, 



잠시 머물던 터널 안에서 빠져나와 터널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잘 축조된 터널 주변에는 비를 맞고 있는 풀잎들이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여행자를 맞이했다. 



참 고운 녀석들..



녀석들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만들어 둔 터널의 석축에 머리를 박고 그들의 터전으로 삼았다. 



100년 전의 건축물이 최근에 완성한 것 같이 견고한 모습으로 보존된 현장..



우리가 머물고 있는 굴다리 앞의 모습은 이러했다. 날이 밝자마자 끊임없이 이 골짜기를 오가는 자동차들.. 구비구비 골짜기를 돌아 철로를 건설한 사람들의 노고는 물론 건축술이 놀랍기만 하다. 그 아래로 최신식 자동차들이 다니는 국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게 대략 50년 전의 일이었다.



터널 곁에서 비를 맞고 있는 잡초들이 석축과 어우러져 기분 좋은 질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굴다리 위로 비가 다시 쏟아지는 것. 나는 여전히 100년 전의 구조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치의 흐트럼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석축 사이로 풀꽃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세월의 흔적을 이끼가 덮었지만 석공들의 손놀림은 빗속에서 더욱 반듯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불세출의 예술가 미켈란젤로를 배출한 이탈리아 반도.. 



그가 살았던 반도 국가의 어느 골짜기에 가을이 깃들고 비가 오시는 것이다. 



나는 하니가 머물고 있는 자동차로 다시 온 후 굴다리 밑으로 자리를 옮겨 주차해 두었다. 괜히 비를 맞고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 나는 이때부터 조금 전 다녀온 터널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일부러 터널을 찾아온 것도 아니지만 하필이면 명소를 만났으므로 터널을 끝까지 돌아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굴다리 위에서 바라본 골짜기의 풍경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터널 속을 들어가 볼 생각 때문에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낯선 곳. 비가 추적추적 내리시는 날.. 하니는 차콕을 하고 있고 나 혼자 어둠이 깃든 터널 속으로 들어가 본다..? 흥미롭기고 하고 약간은 켕기는 분위기.. 



나는 체질상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는다. 누군가 놀라게 하려 해도 무덤덤하다. 이런 성격 등이 어우러져 나름 중책을 맡기도 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즉시 문제점을 찾아내는 한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 내게 이 터널은 깜짝 놀랄(깜놀) 일을 예비해 놓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일이 생긴 것이며 터널을 다 빠져나갈 즈음이었다. <하편으로 이어진다>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_Passo di Cibiana
il 18 Dic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꽃이 된 그녀와 깨시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