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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9. 2020

터널 속에서 일어난 깜놀 사건(하편)

#29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사람들은 언제쯤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일까..?!!



굴다리 위에서 바라본 골짜기의 풍경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터널 속을 들어가 볼 생각 때문에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낯선 곳. 비가 추적추적 내리시는 날.. 하니는 차콕을 하고 있고 나 혼자 어둠이 깃든 터널 속으로 들어가 본다..? 흥미롭기고 하고 약간은 켕기는 분위기.. 
나는 체질상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는다. 누군가 놀라게 하려 해도 무덤덤하다. 이런 성격 등이 어우러져 나름 중책을 맡기도 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즉시 문제점을 찾아내는 한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 내게 이 터널은 깜짝 놀랄(깜놀) 일을 예비해 놓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일이 생긴 것이며 터널을 다 빠져나갈 즈음이었다.


지난 여정 터널 속에서 일어난 깜놀 사건 상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속이 훤히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은 여전히 궁금했다. 잠시 비가 추적추적 쏟아지는 굴다리 위를 배회하며 치비아나 디 까도레(Cibiana di Cadore) 골짜기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다가.. 자동차를 굴다리 아래로 옮겨놓고 다시 언덕길을 올라왔다. 이번에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 볼 요량이었다. 이때부터 깜놀의 시작이란 걸 나중에 알게 됐다. 



터널 속에서 일어난 깜놀 사건(하편)




100년 전에 건설된 굴다리 위에서 앞 뒤로 살펴본 골짜기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빼곡한 숲 위로 넘나드는 비구름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이탈리아에서 느껴보는 동양화.. 그 속에는 오래 전의 추억들이 물씬 배어 나오고 있었다. 대명천지가 된 요즘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가 곳곳에서 출몰할 때였다. 



그런 이야기는 잊힐만하면 패러디되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곤 했다. 좀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6070세대는 귀신(鬼神)들 때문에 화장실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했다. 구식 화장실은 똥통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곳에 발판 두 개만 걸쳐놓았다. 화장실 문을 열면 악취가 진동하는 곳. 그곳에 달걀귀신이 산다고 했다. 볼일을 다 마칠 때쯤이면, 엉덩이 아래서 누군가 손을 쑥 내밀면서 "하얀 종이 줄까.. 까만 종이 줄까.."라며 놀라게 한다는 것. 



당시 아이들은 그들의 상상만으로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을 꺼렸다. 특히 밤중이나 비가 오시는 어둑어둑한 날에는 누구를 데리고 가야 볼 일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귀신에 대한 개념에 대해 초인간적 또는 초자연적 능력의 발휘 주체로 여겨지는 신(神)이라고 정의하면서 귀신의 종류는 무한 확장된다. 



특정 사물 등에 신 자(字)만 붙이면 귀신의 한 종류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잡귀나 객귀 혹은 죽은 자의 넋도 그러했다. 또 무가(巫歌)에서 는 '일만팔천신' 또는 '팔만신' 등으로 신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고상한 신들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귀신들의 모습은 보는 순간 기겁을 할 것만 같았다. 



비가 추적추적 오시고 어둠이 내린 어느 공동묘지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 귀신이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등장하는 장면은 소름 돋도록 놀라운 장면이자 이미 고전이 됐다. 서양에서는 드라큘라가 등장하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흡혈귀로 둔갑한 드러큘라가 특정인의 목을 물어 혈액을 취하는 것이다. 또 엑소시스트(The Exorcist)란 영화 속에서는 인간의 몸속에 사악한 귀신이 깃든 모습을 보여주며 공포심을 유발하곤 했다. 



문제는 이런 귀신 이야기를 사는 동안 자연스럽게 학습해 왔던 것이다. 귀신의 등장 배경에는 벌건 대낮이 아니라 어둠이 깃든 곳이거나 음산한 날씨가 지속되는 곳. 혹은 인적이 드문 수도원의 지하 공간 같은 곳이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둠보다 빛을 더 선호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들 때문이 아닐까.. 



나는 기어코 어둠과 습기가 가득한 터널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터널 속으로 들어올 때 음산한 기운들 때문에 이미 학습해 둔 귀신들이 고개를 삐죽 내밀기 시작했다. 터널 속은 너무도 조용했다.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은 있어도 진공상태로 변한 이곳저곳을 들러보며 기차가 다녔을 당시를 회상해 보곤 했다. 


100년 전에 만들어진 터널의 축조 기술이 대단했다는 생각과 함께 비상 공간을 만들어 둔 당시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터널을 산책로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등불은 밝혀 두었지만, 언제라도 귀신이 출몰할 듯한 음산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왈왈..!!



하이고 깜딱이야..!! ㅜ



언제 나의 뒤를 따라왔는지.. 터널 속의 침묵을 깬 건 개 한 마리였다. 녀석의 가슴 줄은 풀린 채 앞서 걷는 내 곁에서 큰 소리로 짖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속으로 흠칫 놀라며 소름이 돋았다. (이런 개 쉐이 봤나..!!ㅜ) 만약 녀석이 저만치 도망치지 않고 곁에 있었다면 축구공 차듯 날려버렸을 것. 



문제는 개 보다 개 만도 못한 주인이었다. 키는 멀대같이 길쭉한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것이다. 개를 나무라는 법도 없었다. 개나 개 주인이나 한통속이랄까.. 



그는 가까이 다가와 가슴 줄을 묶는 듯 다시 풀어주며 저만치 앞서 걸었다. 세상에 별 녀석들을 다 본다. 이웃에 민폐를 끼쳤으면 응당 사과를 해야 마땅할 것이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에고이스트 귀신 1인과 천방지축 개 한 마리를, 하필이면 터널 속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처음 겪는 매우 불손하고 오만한 일이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한 못된 녀석에게 놀란 이후 오히려 머릿속은 가벼워졌다. 귀신 씨 나락 까먹는 따위의 귀신 시리즈는 저만치 사라진 개와 개 주인처럼 멀어지고 있었다. 그 대신 비에 젖은 골짜기의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다. 치비아나 디 까도레(Cibiana di Cadore)는 한 때(1921년) 2천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2011년 기준)은 4백 몇십 명으로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농업과 산림 관리 등으로 살아왔지만, 철로와 터널이 건설될 당시에는 철광산이 개발되고 있을 때였다. 그 철광석은 열쇠를 만드는데 주로 애용되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현재는 돌로미티의 배후 도시로 여행자를 위한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마을에 들른 이유도 그곳에 포함되었다. 우리는 돌로미티에 첫눈에 반하여 장차 이곳으로 둥지를 옮겨볼까 생각하며 들르게 된 것이다.



이제 다시 굴다리 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터널 출구에서 바라본 터널 내부는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굴다리 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둘러본 터널 속은 여전히 진공상태로 변한 듯했지만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비 오시는 아침나절에 겪은 작은 소란이 해묵은 귀신들을 다 쫓아버린 것이다. ㅋ 



다시 굴다리 위로 돌아와 바라본 골짜기의 모습은 동양화를 그려놓은 듯한데 하니는 차콕으로 졸고 계셨다.



비가 개인 이튼 날.. 이 골짜기의 산중에 첫눈이 내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천방지축 누렁이처럼 좋아하며 빠쏘 디 지아우(Passo di Giau) 능선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선물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_Passo di Cibiana
il 19 Dic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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