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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0. 2020

그곳에 다시 서고 싶다

#30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오시면.. 그곳에 다시 갈 수 있겠지..!!



무슨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그저 된 게 아니다. 깨시민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우리 사회는 보다 힘들 것이며, 어둠의 세력들에 의한 밥이 되고야 말 것이다. 하니를 깨시민들과 함께 꽃으로 비교해 본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신 앞에 놓인 숙제를 미루지 않았을 때 당신이 꿈꾸는 진정한 세계가 눈앞에 도래할 것이다. 
나는 능선 위에서 우리가 지나온 고갯길을 내려다보며 다시 고갯마루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먼 나라에서 바라본 내 조국 대한민국의 위상이 곧 이렇게 바뀔 것이라 생각하니 다시금 설레는 것이다. 



지난 여정 꽃이 된 그녀와 깨시민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내 조국 대한민국이 힘들어할 때 먼 나라에서 작은 응원이라도 보내고 싶었다. 그곳은 여전히 형제자매들과 아이들과 코로나 19를 피해 한국으로 잠시 피신해 있는 하니가 살고 있는 곳이자, 민주시민들과 이웃들이 날마다 이부자리를 개는 정겨운 곳. 그곳을 어찌 잊으리오.. 하니와 나는 어느 날 돌로미티에 내리고 있는 첫눈을 쫓아 마침내 빠쏘 디 지아우 고갯마루의 능선에 선 것이다. 그곳은 19박 20일 여정의 돌로미티 여행을 마무리할 때쯤 만난 절경이 펼쳐진 곳이다.



그곳에 다시 서고 싶다




서기 2020년 12월 20일, 이제 열흘만 지나면 한 해가 다 저물어 간다. 밤중에 컴을 열어 사진첩을 열어보니 그곳은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아직은 혹한의 겨울이 시작되지 않은 곳. 먼저 내린 첫눈이 땅을 적시다가 살포시 얼어있는 곳. 곧 이들도 기나긴 동면에 들어갈 것이다. 



첫눈이 오시던 날 치비아나 골짜기서부터 이곳 빠쏘 지아우 고갯마루까지 이어진 동선을 보니 까마득하다. 아직 90일도 채 넘기지 않은 지난날의 시간이지만, 열흘만 지나면 시간 저편의 세월로 기억될 것. 하니와 나는 이곳 고갯마루 능선에 서서 우리가 다녀온 먼 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진눈깨비가 날리는 그 능선에서 바라본 곳.. 그곳이 도대체 무엇이관데 그리워지는 것일까..



광활한 대자연을 다시 눈 앞에 두고 보니 새삼스럽게 인생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의 대표 여류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세 번째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_Tous les Hommes Sont Mortels>를 썼다. 오래전에 읽은 책의 줄거리에 따르면,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어느 마술사로부터 불로장생의 약을 마시고 세상을 다 거머쥐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죽지 않은 한 인간.. 그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다 해내고 싶었고 또 해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를 깨닫게 한 것은 당신과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이 주변에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때부터 죽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세상을 먼저 살다 간 현자들도 당신의 전부를 바쳐 피를 흘린 성자도.. 그들이 남긴 인생의 종착역은 단 한 곳이다. 사람들이 신의 아들이라고 말한 내가 사랑하는 예수의 공생애 조차 33년이다. 당신이 친히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인간은 모두 죽는다'라는 사실이다.  



어느 날 우리 앞에 첫눈이 오셨다. 우리는 아이들처럼 첫눈을 쫓아 기나긴 동선을 긋고 있었다. 아직은 가을이었지만 첫눈이 오신 그곳은 새하얀 비단으로 만든 이불 홑청을 뒤집어쓴 아이들이 동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곧 겨울이 다가올 것이며 어느 겨울밤 나는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나는 물론 하니의 흔적이 오롯이 묻어나 있었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낸다. 이탈리아에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는 한국에 비할바도 아니어서 일찌감치 도피해 있는 것이다. 형편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오늘자(19일, 현지시각)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는 감염자 수는 16,308명이며, 사망자 수는 553명에 이른다. 



아마도 이들 유가족들은 살아도 산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 보일 것이다.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니.. 차마 믿기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은 현실이며 우리네 삶의 한 모습이다. 어느 날 컴을 열어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것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늘 보던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면 누군가 동면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시면 그땐 부활의 노래를 부를까..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다만, 그곳에 다시 서고 싶다..!!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_Passo di Giau
il 20 Dic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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