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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12. 2021

어린왕자가 보고 싶을 때

#11 한국인, 안 가거나 못 가는 여행지

하늘을 우러러볼 때 마음은 이런 것일까..?!



사람들은 혼자 남게 되면 죽는 줄 안다. 그렇게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태양이 빛을 잃으면 달이 뜬다는 거 알랑가 몰라.. 그믐달이면 어떻게 되냐고 묻지 마라. 그때는 별님들이 나와 함께할 것이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건축물 곁에 한 무리의 선인장이 자라나고 있었다. 혼자 하는 여행 중에 어린 왕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도 외로웠을까.. 어느 날 "나는 혼자야"라며 흐느끼듯 외쳤다. 


IO SONO SOLO..!!


   지난 여정 태양이 빛을 잃으면 달이 떠요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2021년 양력설 초하룻날부터 무리한 여정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브린디시의 또르레 뿐타 뻰네 유적지를 샅샅이 뒤지고 나선 것이다. 그곳은 나폴리 왕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자 바닷가는 특별한 지형을 갖추고 있었다. 기다랗게 널린 바위층(Campi carreggiati)은 마치 수레가 지나간 형상이었으며 아드리아해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을 돌아보는 동안 따뜻한 볕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주 가끔씩 이곳을 산책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나 혼자 뿐이었다. 



어린왕자가 보고 싶을 때




내가 이곳에서 꽤 오랜동안 서성거린 이유는 폐허로 변한 건축물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새집을 선호하지만 나는 오래된 건축물을 더 좋아한다. 방금 입주한 새 집에서 느낄 수 없는 질감은 물론 수많은 이야기가 묻어나는 것이다. 그곳에는 한 때 사람들이 붐볐을 것이고 그들이 나눈 대화들이 녹아내린 돌 벽돌처럼 나의 호기심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뷰파인더에 포착된 장면들은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일 뿐만 아니라 시간 저편의 일들을 되새기게 된다. 어느 날 내가 타란토 바닷가에서 일몰을 만나고, 다시 일출을 만난 즉시 브린디시로 이동한 것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내가 온 곳으로부터 멀어졌다가 다시 떠났던 장소로 되돌아 가는 것. 이건 육신의 일이자 세상에서 하는 일 아닌가.




그렇다면 나의 정신체는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는 <성경>과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자본론> 다음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어른을 위한 이 매혹적인 동화는 오늘날까지 160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누적 판매부수가 1천억 부에 달한다고 전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왜 이곳에 쏠렸는지 생각해 볼 때이다. 



나는 이 책에서 작가가 설정한 어린왕자를 여러분들처럼 사랑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나 모티브 등에 대해서는 한동안 하기 싫은 숙제처럼 미루어 왔다. 그 숙제를 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니가 한국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마다 어린왕자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그는 은하계 저 먼 데서 우리 행성까지 왔다가 장차 나를 본향으로 데려갈 천사가 아니었던가.. 나는 이곳에 발을 디딘 직후 공원 전체를 돌아볼 마음을 먹었다. 나도 모르는 이끌림 때문이었다.





어린왕자


B612호 소혹성의 명예를 위해서는 다행한 일로, 터키의 어느 독재자가 자기 국민에게 양복 입기를 명하고, 거역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이 천문학자는 1920년에 멋있는 양복을 입고 증명을 다시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모두들 그의 말을 믿었다.


B612호 소혹성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 호수까지 일러준 것은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어른들은 '그 친구의 목소리가 어떠하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를 수집하느냐?'라고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는 몇이냐? 형제는 몇이냐? 몸무게는 얼마냐? 그 친구 아버지는 얼마를 버느냐?' 하는 것이 고작 묻는 말이다.



그래야 그 친구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곱고 고운 붉은 별 돌집을 보았다' 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생각해 내지 못한다. 어른들에게는 '1억 원짜리 집을 보았다' 고 해야 한다. 그래야 '야, 참 훌륭하구나!' 하고 부르짖는다.



이와 같이 '어린 왕자가 몹시 예뻤고, 잘 웃었고, 양을 가지고 싶어 했고 한 것은 그가 존재하고 있는 증거가 된다. 누가 양을 가지고 싶어 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증거가 된다. 누가 양을 가지고 싶어 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증거가 된다'라고 어른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어깨를 들먹이며 우리를 아이로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나온 별이 B612호 소혹성이다'라고 하면 그들은 우리말을 알아들을 것이고, 또 여러 가지 질문으로 귀찮게 굴지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그렇게 되어 먹었다. 그것을 가지고 어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못 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 대해서 아주 너그러워야 한다.



그러나, 인생을 이해한 우리는 물론 소혹성의 호수 같은 건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옛날 선녀 이야기하듯이 시작하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옛날에 저보다 좀 더 클까 말까 한 별에 어린 왕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왕자는 친구가 그리웠습니다'라고. 인생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훨씬 더 진실한 느낌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아무렇게나 읽어치우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이 추억을 이야기하자니 수많은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내 친구가 양을 가지고 떠나간 지도 벌써 여섯 해가 된다. 지금 여기에다 그의 모습을 그려 보려는 것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니까. 누구나 다 친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숫자밖에는 흥미가 없는 어른처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림물감 상자와 연필들을 산 것도 이 때문이다.



여섯 살 적에 속이 들여다 보이고 안 보이고 하는 보아 구렁이밖에 그림이라고는 그려 본 일이 없는 내가, 새삼 이 나이에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드는 노릇이다. 물론 할 수 있는 대로 비슷한 초상을 그려 보기로 하겠다. 그러나 꼭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그림은 괜찮아 보이는데 저 그림은 그렇지가 않다. 키도 조금씩 틀리다. 이 그림은 어린 왕자가 너무 크고, 저 그림은 너무 작다. 또 옷 빛깔에 대해서도 망설여진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그럭저럭 더듬거려 그려 본다. 끝에 가서 나는 더 중요한 어떤 부분을 잘못 그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잘못 뿐만은 아닐 것이다. 내 친구는 도무지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아마 나도 자기 같은 줄로만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불행하게도 상자 속에 들은 양을 꿰뚫어 보지는 못한다. 아마 나도 좀 어른들처럼 생겨 먹은 모양이다. 아마 이젠 늙었는가 보다.





10미터 남짓한 나지막한 언덕 아래 풀숲에는 나폴리 시대의 유적들이 비바람을 못 이겨 녹아내린 모습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소곤거림이 점점 더 숲이 에워싸고 있었다. 사람들이 죽자 사자 만들어 놓았던 건축물들이 어느 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있었던 현장. 그곳은 도시로부터 떨어진 곳이자 바닷가여서 산책로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나는 이 공원을 아예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햇살이 눈부셨다. 그리고 내 나이 6살 적의 아련한 기억을 떠 올려보니 그곳에 어린왕자가 엄마 아부지와 함께 있었다.



엄마 아부지께서는 동네 어른들과 함께 뒷마당에서 모깃불을 피워놓고 여름밤을 보내고 계셨는데 여섯 살 어린 꼬마가 나타나 좌중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분들의 환한 얼굴을 기억해 낸다. <계속>


Torre punta penna, La citta' di Brindisi_Regione Puglia in ITALIA
il 11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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