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한국인, 안 가거나 못 가는 여행지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는 재밌는 풍경..?!!
10미터 남짓한 나지막한 언덕 아래 풀숲에는 나폴리 시대의 유적들이 비바람을 못 이겨 녹아내린 모습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소곤거림이 점점 더 숲이 에워싸고 있었다. 사람들이 죽자 사자 만들어 놓았던 건축물들이 어느 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있었던 현장. 그곳은 도시로부터 떨어진 곳이자 바닷가여서 산책로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나는 이 공원을 아예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햇살이 눈부셨다. 그리고 내 나이 6살 적의 아련한 기억을 떠 올려보니 그곳에 어린왕자가 엄마 아부지와 함께 있었다.
엄마 아부지께서는 동네 어른들과 함께 뒷마당에서 모깃불을 피워놓고 여름밤을 보내고 계셨는데 여섯 살 어린 꼬마가 나타나 좌중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분들의 환한 얼굴을 기억해 낸다.
지난 여정 어린왕자가 보고 싶을 때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어른들이 잊고 살거나 잘 모르고 있는 유년기의 아스라한 추억들을 생선가시 발라내듯 잘 발라낸 베스트셀러 작가가 <어린왕자>의 저자 생떽쥐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여섯 살 때 기억을 소환하여 자아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여섯 살 적에 속이 들여다 보이고 안 보이고 하는 보아 구렁이밖에 그림이라고는 그려 본 일이 없는 내가, 새삼 이 나이에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드는 노릇이다. 물론 할 수 있는 대로 비슷한 초상을 그려 보기로 하겠다. 그러나 꼭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어느덧 또르레 뿐따 뻰나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바닷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바람은 거의 멎은 상태였으나 간간이 아드리아해의 파도에 실려오면서 비릿한 바다내음을 풍겼다. 참 기분 좋은 냄새이자 속이 탁 트이는 바닷가 풍경들.. 바다는 썰물 때여서 거추장스러운 옷은 모두 훌러덩 벗은 듯한 모습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바라본 해변은 자주 만나던 모래밭이 아니라 바위를 쭉 펼쳐놓은 듯한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이곳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브린디시 시에서는 나폴리 왕국의 다 허물어진 유적 외에도 바닷가의 풍경을 명물로 자랑하기도 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연말연시 일몰과 해돋이를 보러 갔다가 잠시 들른 바닷가에서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피곤이 확 달아났다.
저만치 조금 전에 만났던 또르레 뿐따 뻰나의 모습이 보인다. 산책로는 바닷가를 따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의 지형은 일부러 쌓아둔 듯한 작은 언덕이 전부였으며 주변은 바다를 닮은 평원이 넓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6살 적 유년기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어린왕자
나는 별이니, 출발이니, 여행이니 하는 데 대해서 매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건 아주 천천히, 무엇을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우연히 알 게 되는 것이었다. 사흘째 되던 날, 바오밥 ―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그 줄기의 둘레가 20미터를 넘는 나무 ― 나무의 비극을 알 게 된 것도 이런 식이었다. 이번에도 양의 덕택이었다. 어린 왕자는 무슨 중대한 의문이나 생긴 듯이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다는 게 참말이야?"
"응, 참말이다."
"야! 참 좋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바오밥나무도 먹지?"
나는 바오밥나무는 작은 나무가 아니라 성당만큼이나 큰 나무고 그래서 그가 코끼리 한 떼를 몰고 간다 하더라도, 그 코끼리 한 떼가 바오밥나무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리라는 말을 어린 왕자에게 들려주었다.
"그놈들을 모두 무등 태워야 하게……."
그러나 영리하게 이런 말도 했다.
"바오밥나무도 크기 전엔 조그맣게 돋아나지?"
"맞았다! 그렇지만 어째서 네 양이 작은 바오밥나무를 먹었으면 하는 거냐?"
"아이, 참!"
하고 그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서 나 혼자 이 수수께끼를 푸느라고 여간한 노력이 들지 않았다. 과연 어린 왕자의 별에도 다른 별이나 마찬가지로 좋은 풀과 나쁜 풀이 있었다. 따라서 좋은 풀의 좋은 씨와 나쁜 풀의 나쁜 씨가 있었다. 그러나 씨는 보이지 않는다. 땅 속에서 몰래 자고 있다가 그중의 하나가 깨어날 생각이 든다.
그러면 기지개를 켜고 우선 아무 힘도 없는 그 예쁘고 조그만 싹을 해를 향해 조심조심 내민다. 무나 장미나무의 싹이라면 마음대로 자라게 내 버려 둘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풀이라면 그것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곧 뽑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어린 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바오밥나무로, 그것은 자칫 늦게 손을 대면 영 없애 버릴 수가 없게 된다. 그놈은 별 전체를 휩싸 버리고 뿌리로는 벌에 구멍을 파 놓는 다. 그래서 별은 너무 작은데 바보밥나무는 너무 많게 되면 별이 터지고 마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그건 규율 문제야. 아침에 세수를 하고 나면 별도 세수를 꼼꼼히 해줘야 해. 장미나무와 구별할 수 있게 되면 곧 바오밥나무를 뽑아 버리도록 규칙적으로 힘써야 해. 아주 어릴 적에는 바오밥나무와 장미나무가 몹시도 비슷하니까. 그건 대단히 귀찮지만 매우 쉬운 일이기도 해."
그리고 하루는 날더러 고운 그리을 한 정성껏 그려서 우리 땅에 사는 어린이들 머릿속에 이런 사정을 꽉 박아 주도록 하라고 했다.
"그 어린이들이 어느 때고 여행을 하면 필요할 거야. 제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게 괜찮을 때도 있지만, 바오밥나무의 경우엔 큰 사고가 생겨. 난 게으름뱅이가 사는 별을 하나 아는데, 그 게으름뱅이는 작은 바오밥나무 셋을 허술히 넘겨 버렸어."
그래서 어린 왕자가 일러 주는 대로 그 별을 그렸다. 나는 윤리 선생 티를 내기는 싫다. 그러나 바오밥나무의 위험이 하나도 알려져 있지 않고 또 길을 잘못 들어 어떤 소혹성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크나큰 위험을 당하기에 한 번만 이 근심을 버리기로 했다.
'어린이들아, 바오밥나무를 조심하라!'
내가 이 그림을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 그린 것은, 나와 같이 오래전부터 알지 못한 채 당하게 되는 바오밥나무의 위험을 내 친구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내가 준 교훈이 그만한 값어치는 있었으니까. 그대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하리라.
'이 책에는 왜 바오밥나무만큼 굉장한 다른 그림이 없을까?'
그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려 보았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바오밥나무를 그릴 적에는 너무나 위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나의 유년기를 소환한 바닷가 풍경들
어린이와 어른이의 생각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을 알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안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고 나면 그때부터 치열한 생존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사느냐 죽느냐 먹느냐 먹히느냐 쪽 팔리느냐 자랑스러우냐 조금 더 차지하느냐 모두 빼앗기느냐 대가리가 되느냐 꼬리가 되느냐 등등..
치열한 경쟁 끝에 얻게 되는 건 사회적 지위이거나 명예이거나 그게 돈이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다 얻은 끄트머리에는 고독과 외로움이 밀물 들 듯 모든 것이 수면 아래로 잠들어 버릴 것이다. 그게 인생이라면 애당초 바오밥 나무를 뿌리째 뽑듯 뽑아버리고 생존경쟁에 뛰어들지 말아야 했을까..
가던 걸음을 붙든 것은 산책로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구조물이었다. 구조물은 바위를 깎아 만든 것으로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아래 모래가 소복이 쌓여있었다. 이곳에 소량의 용천수가 솟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폴리 왕국의 사람들 혹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샘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유일했을까.. 자세히 샘터를 관찰하니 수면 아래로 이글거리며 흐르는 샘물이 보였다. 담수와 해수가 함께 섞인 곳. 나는 그곳에서 6살 적 유년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개다리춤으로 어른들을 기쁘게 하다
개다리춤을 아시는가.. 두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머리를 쓸어 올리며 가끔씩 손바닥으로 이마를 쳐대는 동작.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한 번만 보면 따라쟁이가 된다. 여섯 살 적 나는 뒷마당에서 자리를 펴 놓고 잡담으로 시간을 때우시는 어른들 틈에 끼어있었다.
그 곁에는 모깃불이 파란 연기를 피우며 드라이 아이스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수박을 앞에 놓고 이웃과 나누어 먹는 곳에 엄마 아부지가 계셨다. 그분들은 아부지의 인술 혜택을 받은 사람들로 가난한 시절에 만난 이웃들이었다. 가난한 이웃들은 치료비 대신 음식을 대접하는 분들도 계셨고 담배나 막걸리를 대접하는 분들도 계셨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부자였던 것도 아니었다. 중부님 두 분은 잘 살았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는 가난했었다. 그런 가운데 작은 것을 함께 나누며 기뻐하던 사람들이 아부지 엄마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어른들은 참 짓궂지.. 이럴 때 아이들이 곁에 있으면 꼭 장기자랑을 시킨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흥을 돋워야 하는 것이다. 마침내 나한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두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다리를 후덜덜 요란하게 떨면서 까까중머리를 쓸어 올리며 가끔씩 손바닥으로 이마를 쳐댓다. 좌중은 이 순간부터 난리법석이다. 마치 섹시한 무희가 위문공연을 온 풍경이랄까.. 어른들이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면 어린 녀석은 덩달아 신이 나서 두 다리가 발발발.. 아싸~ㅋ 엄마 아부지도 까무러친 건 당연하다. 객석(?)은 완전히 뒤집어진 것이다.
"아고.. 이눔 장차 뭐가 될라꼬 저러노.ㅋㅋ"
나는 장차 어른이가 되어 2021년 첫날,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어느 바닷가를 서성거리며 당시를 기억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술 더 뜨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 생전에 형제들은 주말만 되면 손자들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보냈다. 먹고살기 바쁜 형제들의 사정도 있지만 두 분이 외롭지 않게 아이들이라도 보냈다가 다시 데려오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두 분의 맛(?)을 안 녀석들은 으레 주말만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는다. 어린 조카들은 엄마 아빠의 성화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시는 산타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들의 속마음을 꿰뚫고 아이들이 되어 그들과 한통속이 되는 것이다. 함께 웃고 울고 삐치고 얼르고 달래는 등 친구가 된 할머니 할아버지..ㅜ
이때 중요한 법칙이 있다. 어른들은 당신 마음에 안 들면 삐치지만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면 좋아할까.. 절대로 안 좋아한다. 그때 삐친 아이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며 기분 좋게 만드는 비법이 있다. 이번에는 어른이가 역할을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할머니 할아버지 중 한 분이 두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다리를 후덜덜 요란하게 떨면서 머리를 쓸어 올리며 가끔씩 손바닥으로 이마를 쳐대는 것이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난리법석을 피운다. 이번에는 공연장 전체가 개다리 춤꾼들의 떼춤이 이어지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상상이 가시는가..ㅋㅋ
새해 첫날.. 나를 기분 좋게 만든 건 6살 적 산골짜기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풍경이 바닷가에서 발견된 것이다. 장소는 다르지만 태곳적 시간을 간직한 바닷가에 다 녹아 흘러내린 바위 구멍에 함초가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니 어른들은 이런 풍경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그저 아무렇게나 뿌린 내린 잡초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요즘 내가 듣고 있는 오디오북 속의 어린왕자는 나의 여섯 살 적 모습으로 돌려놓았다. 자아를 성찰하는 여러 방법들 중에 생떽쥐페리는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이후 외로움과 고독은 물론 공포감에 떨었을 것이다. 그때 당신을 지켜준 건 공군 조종사 직함이 아니라 당신 속에 잠자고 있던 자아를 돌아본 것이랄까..
그는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만하고 편협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귀족들이 민초들에게 비친 모습은 주로 그러했다. 그런데 그의 유년기를 돌아보면 15세 때 남동생 프랑수아가 죽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하며, 동생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로 인해 죽음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당신의 작품에 나타난 어린왕자는 자기가 태어난 은하계의 어느 별로 되돌아 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가 12세 때 집 근처에 있던 앙베리외 비행장을 들락거리면서 배운 조종술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나의 생각이다. 그는 먼 하늘을 날아 장차 당신이 가야 할 본향을 그리워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바닷가에 쪼그리고 앉아 때 묻지 않은 나의 유년기를 돌아보고 있었다. 왜, 그때가 더 그리울까.. <계속>
Torre punta penna, La citta' di Brindisi_Regione Puglia in ITALIA
il 12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