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서 브런치 글쓰기 100회 특집
날마다 기적 같은 일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이틀 전의 일이다. 요즘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낮에는 외출을 할 엄두를 못 내곤 했다.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의 구시가(Centro storico)를 이루고 있는 돌로 만든 뼈대(?)가 햇살에 데워져 마치 난로를 쬐는 듯 후근 달아오른 것. 이 같은 현상은 대략 오전 9시 이후부터 저녁 8시 정도까지 계속 이어져 혹시라도 외출할 일이 생기면 해가 드는 쪽을 피해 다니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은 시도 때도 없이 더위를 즐기는 듯한 표정들이자 신들린 듯한 모습들. 사람들로부터 르네상스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피렌체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본래의 모습은 간곳없고 행복해하는 것. 매일 기적의 현장을 보는 듯하다. 정말 대단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풍경들도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무덤덤해지는 것. 우리가 그랬다. 그래서 무더위도 피할 겸 겸사겸사 산책시간도 바꾸어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나서던 산책시간을 이른 아침에 맞춘 것. 대략 오전 7시 정도만 돼도 낮동안 뜨겁게 달구어졌던 돌들이 밤동안 냉각되어 아침만 되면 냉장고를 연상케 하는 시원한 공기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아침 산책 시간을 새벽으로 당겨 아르노 강가로 향한 것이다.
시내 중심을 가로질러 아르노 강가에 서면 해맑은 아침 하늘이 강 위에 내려앉아 비췻빛으로 변하는 한편, 어떤 때는 가는 바람에 인 파문 때문에 하늘 거리는 옷감을 강 위에 펼쳐놓은 듯하다. 우리의 동선은 살바또래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앞 일 뽄떼 산타 뜨리니따(il Ponte Santa Trinita)로부터, 빠르꼬 델레 까쉬네(Parco delle Cascine)까지 아르노 강 하류로 길게 이어지는 것. 공원에서 잠시 쉬었다가 귀가하면 아침 산책은 끝. 온몸이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귀갓길에 만난 놀라운 장면들. 아르노 강가의 어느 아파트 입구에 유도화(柳桃花) 꽃비가 내린 것이다. 아마도 이곳에 주차를 해둔 차주들이라면 아침에 일어나 유도화 꽃비 때문에 얼마나 행복해할까. 또 말없이 묵묵히 주인의 명에 따라 제 갈길만 오갔던 자동차들은 또 어떻고..
나는 이렇듯 기적 같은 장면 앞에서 (스스로 놀랍게도) 우리 몸과 마음을 주차장에 비교해 봤다. 자동차와 인간의 몸이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 육신의 주인인 영혼(혹은 자아)이 자기 몸을 다시 찾아올 때쯤 꽃단장한 당신을 보면 당신의 몸이 얼마나 귀한 줄 알게 될 것인가. 또 세상에서 함부로 처신할 때 당신의 영혼까지 더불어 업신여김을 당하진 않았을까 싶은 것. 꽤 길게 끄적인 아침산책 풍경의 일면을 통해 현재의 좌표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혹은 우리는 현재 피렌체에 살고 있고, 피렌체 시내를 가로질러 작은 도시를 휘감고 흐르는 강가를 산책하다 어느 집 주차장에서 유도화 꽃비를 만난 것. 이렇듯 매일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특정 공간에 머물기 마련인데 당신이 머물고 있는 현재의 공간에서 유도화 꽃비를 만난 것처럼, 날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이다.
혹자들은 (까이꺼) 로또 대박도 아니고 그깟 꽃 몇 송이 떨어진 거 보고 화들짝 놀라는 당신이 더 우습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 갈수록 작은 일에 감동하지 못하면 보다 큰 기적 같은 일이 당신 앞에 닥친다 해도 무덤덤해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무서운 일이다) 그러니까 아침산책 시간을 변경한 게 주효하여 어느 날 아침에 만난 행복한 주차장과 더불어 행복해하는 것인데 이 같은 공간은 사이버 세상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는 가끔씩 현실과 가상현실을 혼돈한다. 마치 장자(혹은 장주, 莊周)의 호접지몽(胡蝶之夢_나비의 꿈)과 비슷한 상황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고 있다고나 할까. 유도화 꽃비를 소재로 끼적거리고 있는 이 글은 브런치 글쓰기 100회 특집이다.(토닥토닥 스스로 자축한다!) 지난 3월 28일 첫 편을 시작한 이래 매일 한편씩 쓰기로 마음먹은 글이 어느덧 100회에 이른 것.
현재 내가 처한 현실의 세계가 이상향인지 이상향의 세계가 현실인지 나 또한 헷갈린다. 행복한 주차장 때문이었다. 나의 생각과 기억들을 보관해 두는 아름다운 나만의 공간. 이를 테면 자동차는 주차장에 내 생각은 브런치에 두고 살고 있었던 횟수가 어느덧 100회에 이른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공간들도 브런치를 위한 것이다. 그동안 적지 않은 브런치 작가님들이 응원해 주셨다. 스텝분들이 꼭 붙들어주셨다. 정말 깊은 감사드린다. 또 이 기회를 빌려 어렵게 문을 두드린 브런치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응원의 한마디 보탠다.
글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글 쓰는 일만큼 더 쉬운 일이 세상에 또 있었던가. 만약 글 쓰는 일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잠시 접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결코 좌절하지 마시기 바란다. 예컨대 박경리 선생께서 대작을 집필하실 때 이를 앙다물고 원수 갚듯이 썼을까. 세상을 사는 동안 한 땀 한 땀 수놓듯 쓴 글이 대작을 완성했다. 육필 원고 수만 해도 3만 1천 장에 이른다. 당신이 행복해서 글을 쓰지 않았다 해도, 당신께서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산고 이상의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뎠을까..
그런데 비하면 글쓰기 100회는 조족지혈 그 이하이자 비교 조차 안 된다. 또 브런치를 통해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라면 매우 위험한 일이라 생각된다. 글쓴이가 브런치를 시작할 때 언급했다. 대략 5년 만에 처음 끼적거리는 글이라고.. 만약 글쓴이가 타인의 관심만을 위해 블로깅을 했다면 블로그 방문자가 일찌감치 1억 뷰 이상은 도달했을 테지만 어느 순간부터 접어버렸다. 유튜브 크레이터도 그랬다. 칼럼 쓰기도 마찬가지 이유로 접었다.
정치적 이유도 있었지만 연식(?)도 작용했다. 무엇보다 그 같은 일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제 살을 깎아먹는 듯한 일의 연속이었다고나 할까. 브런치에 글을 끼적이고자 마음먹었을 때 그냥 내 삶의 단편을 기록으로만 남기고 싶었다. 재미없었던 일 혹은 불행했던 일은 가능하면 빼놓고, 행복했던 기억들만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었다.
그런데 브런치 툴을 적극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또 이웃들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작가가 점점 블로거화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들. 브런치는 일반 포털에 제공되는 콘텐츠(content)와 다른 작품 활동인데 그걸 몰랐단 말인가. 서두에 잠시 언급했다. 피렌체는 세계인들이 찾는 명소이자 도시 전체가 이야기로 가득한 그야말로 "예쁜 도시'이다. 어디를 가나 어느 곳을 보나 누구를 만나나 전혀 심심하지 않고 호기심만 더 생기는 곳. 뻔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들. 비록 복잡하긴 하지만 문만 나서면 이야기보따리가 와르르 쏟아지는 곳이다.
브런치가 블로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르네상스의 고도처럼 보다 솔직하고 보다 아름답고 보다 지적이며 보다 감성적인 글 등이 보물처럼 쌓인 공간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로그인하여 브런치 문을 열면 브런치인들의 꽃비가 눈처럼 휘날리게 되는 것을 날마다 상상하게 된다. 이 세상에 그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일인가. 나도 한 닢의 꽃비가 되고 싶다.
il parcheggio della Felicita FIRENZE
24 Giugno parco delle Cascin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