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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01. 2019

아내 꼬드긴 현악 6중주 거리 콘서트

-르네상스 고도 피렌체 답게 만든 아름다운 풍경  

밤마다 혼자 어디론가 떠나는 아내의 뒤를 따라가 보니..!


참 재밌는 일이다. 피렌체에서 한 지붕 한 침대를 사용하는 아내가 밤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처음에는 그냥 바람 쇠러 간다고 하더니 바람 쇠는 일이 잦았다. 그것도 밤만 되면 어디론가 이 핑계 저 핑개 등을 이유로 혼자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 그리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귀가했다. 나는 그동안 컴 앞에 앉아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낮에는 몰라도 어둠이 내리면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글도 쓰고 자료를 정리하는 등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그런 반면에 아내는 당신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게 여간 싫은 게 아니란다. 처음에는 등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았건만, 언제부터인가 몽유병 환자처럼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 그리고 귀가하는 즉시 미주알고주알 당신이 다녀온 피렌체 시내의 풍경을 상세히 고해바치는(?) 것이다



아내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이 본 게 설령 검은 것 혹은 흰 것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곧이곧대로 믿는다. 그러니까 나를 제쳐두고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언제인가 피드백이 될 게 뻔하므로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다만 기다림이 조금 필요하고 당신이 보고(?) 한 것에 대해 긴가민가 하는 물음표를 단 것은, 그게 어떤 것인지 궁금해할 뿐이다. 그런데 궁금해 한 어느 보고 내용이 아내가 나 몰래 외출을 시도한 결정적인 이유여서 몇 자 끼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건 매우 제한적이다. 당신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혹은 그렇게 굳게 믿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의 금전으로부터 오래전부터 들어온 클래식 음악과 미술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아내의 이런 취미 생활을 알게 되면 꽤나 잘 나가는(?) 줄 안다. 그러나 이른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질까. 아내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배경은 힘들 때마다 당신을 위로해 준 이유가 전부이며 그림 또한 그러하다. 따라서 어느 날 저녁부터 컴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면 얼마나 지겹겠는가.^^ 



조금 전.. 그러니까 어제 저녁(6월 30일), 외출에서 막 돌아와 브런치 글을 끼적거리기 시작했는데 아내는 곯아떨어졌다. 요즘 피렌체의 날씨는 한국에서 전혀 겪지 못한 더위이며 유럽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날씨란다. 따라서 웬만하면 컴 앞에서 뭉기적거리고 싶었지만, 나 또한 너무 달아올라 그동안 궁금했던 아내의 뒤를 밟기로(?) 마음먹은 것. 그런데 이 같은 결정이 호재를 만날 줄 누가 알았으랴. 


아내가 그동안 몽유병 환자 행세를 한 건 다름이 아니었다. 음악을 좋아하던 당신의 입맛에 마침맞게 들어맞는 길거리 공연 팀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내의 그동안의 보고에 따르면 현악 6중주를 하는 이들의 연주가 당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물론 이를 감상한 관광객들 혹은 시민들이 아낌없이 호주머니를 턴다나 뭐라나.. 


아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나로서도 조금은 과장된 것 같았지만, 아내를 뒤따라 도착한 살바또래 페라가모 본사 앞 길거리 콘서트는 그야말로 남달랐다.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차이콥스키의 현악 6중주를 듣는 사람들은 감동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는 것. 나는 실내도 아닌 산만한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길거리 콘서트를 관람하는 동안 내 생각은 아내의 판단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하수라는데 급공감한 것. 


자료 영상은 참고용입니다. 위의 길거리 콘서트와 비교해 보면 너무 재밌을 거 같은.. ^^


그동안 피렌체서 적지않은 길거리 공연을 봐 왔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상상 밖으로 떠나지 못했다. 뻔한 레퍼토리에 뻔한 연주 실력이랄까. 그러나 이들은 달랐다. 비록 세련된 연주복장을 갖추진 않았지만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무대인 피렌체 중심가의 명품거리를 배경으로, 차이콥스키의 현악 6중주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 것.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현악 6중주 앞에서 잠시 더위를 달래곤 했다.


차이콥스키는 1890년에 요양차 피렌체 들렀다가 예술적 영감을 받아 현악 6중주 <피렌체의 추억>를 쓰게 됐다고 전한다. 르네상스 고도 피렌체에 머물면서 예술적 영감을 받는 건 차이콥스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피렌체를 방문하면 영감을 받게 되는 것인지.. 어느날 밤이면 밤마다 아내를 꼬드긴 현악 6중주 때문에 살인적 무더위를 달랜 건 물론,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가 더욱 빛나는 저녁이었다. 



Un bel Concerto_per la strada 
davanti Salvatore Feragamo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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