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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4. 2021

출가 말고 가출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남다른 풍경

   꿈같은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꿈꾸던 장소였다.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가면 맨 먼저 가 보고 싶었던 곳이 토스카나 주였으며 토스카나의 주도 피렌체였다. 그리고 기회가 닿으면 사르데냐로 가 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찾아낸 그곳에는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언덕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곳이었다. 

언덕 위에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가 하면 군데군데 박혀있어서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언덕의 곡선을 특별하게 만들곤 했다. 그 언덕 위에는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집들이 사이프러스 나무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막 베어낸 밀밭은 주단을 깔아놓은 듯했다. 



출가 말고 가출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면서부터 나의 이름은 프란체스코(Francesco)로 불렸다. 어학당의 담임 선생님이 이탈리아 이름을 선택하라고 했으므로 나는 주저 없이 프란체스코를 떠 올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탈리아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였다. 내가 차용한 이름 프란체스코는 이탈리아 움브리아 주 아시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성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isi)였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계기는 청년기에 읽은 책 <성 프란체스코> 때문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는 순간부터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며 책은 물론 빕비아(Bibbia,성경)를 적시기 시작했다. 감동의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마구 흘렀다. 이때부터 나는 짬짬이 성경 통독을 하거니 교회에 출석하며 봉사를 하게 됐다. 아울러 주말이면 보따리를 챙겨 기도굴을 찾았다. 



그곳에 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나는 프란체스코가 깨달음을 얻은 세상을 만나고 싶었다. 그 기간은 대략 16년의 세월이 경과했다. 성경을 통독 하면서 내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세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자아에 눈을 뜨게 되면서 어느 개신교의 출석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곳은 내가 더 이상 거할 곳이 못되었다. 내 눈에 비친 한국의 개신교는 예수가 설 자리가 없었다. 예수가 그토록 싫어했던 돈놀이가 성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내가 좋아했던 두 사람은 예수와 프란체스코였다. 시대적으로 출생 시기가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예수가 프란체스코로 환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의 기도가 하늘에 맞닿으며 그의 몸에 그리스도의 표징이 나타난 것이다. 수난의 표시인 옆구리와 손과 발에 사랑의 상처가 묻어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예수의 길을 가고 있었다. 



사는 동안 숱하게 목격하게 된 수행자의 길도 다르지 않다. 해탈을 얻거니 불법을 전하기 위해 '붓다의 길'로 들어선 비구 스님들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사기의 저자 고려시대의 일연스님을 시작해 경허(鏡虛), 만해(卍海), 효봉(曉峰), 성철(性徹) 스님은 불자가 아니라도 한 번쯤 들어본 법명일 것이다. 



아울러 근래 <무소유>를 펴내며 사부대중에게 큰 울림을 준 비구 법정(比丘 法頂) 스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같이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는 진관 스님이 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속가(俗家)를 떠나 불문(佛門)에 들었거나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에 전념하시는 분들이었다. 인간계를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자 어떤 이유로 출가를 한 사람들.. 



어느 날 나는 이렇듯 위대한 사람들과 전혀 다른 가출에 비견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성자의 길을 걷고 있었던 사람들과 붓다의 길을 간 사람들과 달리 여생을 잘 살아보기 위해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때 나의 이름표에는 프란체스코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의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다. 



비록 하니로부터 허락된 가출이자 준비된 가출을 통해 나는 세상을 탐하게 된 것이다. 나의 오래된 습관이 먼 나라 이탈리아에 오자마자 때를 만난 듯 쉴틈이 없는 것이다. 나는 불국토를 꿈꾸지 않았고 천국 조차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만난 아름다운 세상을 이웃과 공유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나만의 길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만난 꿈같은 세상.. 마침내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살던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La Memoria della Reggia di Colorno_Provincia di Parma
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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