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남다른 풍경
지난 여정(그날 아침) 끄트머리
그런 일이 해를 넘기면서 마침내 우주선을 쏘아 올릴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어린 왕자의 등장에 놀란 어느 비행사처럼 눈이 동그래지며 먼동이 터 오는 초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텍쥐페리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장 난 비행기 엔진을 수리하고 있었지만 내겐 그런 안전장치가 없었다. 만약 안전장치가 있었다면 무슨 꾀를 부려서라도 그 장치를 써먹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을 그리워하는 한(恨)을 남길 지언정.. 내가 스스로 허락한 약속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새로운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엔 선물을 안 주신대요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잠 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 날 때 장난할 때도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요즘 가끔씩 나의 브런치에 소환하는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이자 마음으로 읽은 책이다. 다 큰 어른이 어린왕자와 함께 나누는 대화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며, 사는 동안 굳어버린 고정관념의 세계가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생사의 기로에서 만난 어느 별나라의 어린왕자와 나눈 첫 번째 대화를 기억해낼 것이다. 사막에 불시착한 주인공 생떽쥐페리가 고장 난 비행기를 수리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양 한 마리만 그려줘"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처음엔 꿈인가 생신가 싶었을 것이다. 아무도 없어야 할 사막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작가는 이 책에서 어린왕자를 설정해 놓고 당신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생떽쥐페리와 달리 의도된 착륙이었고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과정이 포함됐다. 아무튼 다른 별에 불시착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장차 나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는 건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최선을 다해 앞만 바라보며 갈 뿐이었다.
나의 대화 상대는 어린왕자가 아니었다. 생떽쥐페리는 당신의 경험 등을 활용해 소설을 쓰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여유를 전혀 갖지 못했다. 나에게 소설은 여전히 잘 맞지 않는 옷처럼 거북한 존재였다. 허리가 너무 큰 사이즈이거나 몸에 꽉 달라붙는 옷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불시착한 비행사 옆에 먼 나라에서 온 어린왕자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카메라가 손에 쥐어있는 것이다.
나는 소설보다 현장감이 묻어나는 다큐가 좋았으며 사진 때문에 행복해하는 1인이었다. 내가 만난 세상의 풍경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볼 때면 마냥 행복해지며, 하루 종일 싸돌아 다녀도 피곤한 줄 모르는 것이다. 그건 어른이가 된 지금까지도 다르지 않다. 카메라만 있으면 행복은 유효기간이 없어지는 것이랄까..
서두에 성탄절에 즐겨 부르는 캐럴송을 소환해 봤다. 우리가 잘 아는 이 노래는 12월만 되면 귀에 대못이 박히도록 즐겨 듣는 노래일 것이다. 그리고 12월만 되면 기다려지는 노래로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엔 선물을 안 주신 대요라며 빨간 옷을 입은 산타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가 매우 의심스럽거나 그저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 먼 나라의 성탄절 풍습에 따라 잠자리에 양말을 놓고 잠들면 산타 할아버지가 몰래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을 놓고 가신다는 것이다. 그런 한편.. 그 산타 할아버지의 유효기간은 생각 만큼 별로 길지 않다. 요즘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보다 휴대폰의 게임 어플에 더 열광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연말에 거리에 쏟아지는 캐럴송은 그냥 습관처럼 행해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금은 썰렁한 시대로 변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사정이 확 달라진다. 산타 할아버지의 노랫말을 곰 되씹어 보면 선물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이들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세상을 살다 보니 정작 착해야 할 사람은 어린이들이 아니라 '어른이'들이었다. 그런 어른들이 찌질 대면 선물을 안 주신다는 것. 바꾸어 말하면 행복해야 할 당신이 불행을 말하고 있었으므로, 행복하려면 '제발 찌질 대지 말라'라고 타이르는 게 아닐까..
이른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숙소를 빠져나와 듀럼밀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에 발을 들여놓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 밀려들었다. 간밤에 비가 내렸던지 촉촉해진 길 옆으로 풀꽃들이 자지러지고 있었으며, 오래된 올리브나무는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이곳을 방문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는지 동이 트자 황금빛 베일을 두르고 나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들이 나 보다 더 행복해하는 모습이 뷰파인더에 포착되기 시작했다.
"..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는 것처럼 환해질 거야. 어느 발소리 하고도 틀리는 발소리도 알게 될 거고, 다른 것이 들리면 난 굴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 거야. 그러나, 너의 발소리를 들으면 음악이라도 들은 듯 굴 밖으로 뛰어나오게 될 거야. 언제든지 같은 시간에 오는 것이 좋을 거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해. 그러다가 4시가 되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을 느끼게 돼.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될 거란 말이야.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니까..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 슬픔이 가시고 나면(슬픔은 가시는 거니까) 넌 언제까지나 내 동무로 있을 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 질 거야."
카메라를 들고 어디론가 떠나는 날이면, 나는 어린왕자가 여우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게 된다. 설령 너무 바빴던(?) 나머지 그의 명대사를 잊어버렸다고 해도.. 뷰파인더를 즐겁게 하는 새로운 별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면 그때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La Memoria della Reggia di Colorno_Provincia di Parma
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