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울에 봄이 오시던 날
서울에 봄이 오시던 날 지난 편(1년에 단 한 번 볼 수 있는 우주쇼) 끄트머리
어느 작가의 마음을 뒤흔든 풍경들은 예사롭지 않다. 1년에 단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우주쇼가 펼쳐진 것이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당신의 나잇살만큼 만날 수 있는 것. 그나마 꽃피고 새가 우지지는 어느 봄날에 집콕을 하고 있거나 술잔 기울이는데 한 눈 팔면 그 횟수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느 날 남자 사람이 함부로 점순이 따라쟁이가 되면 곤란하다. 그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분 냄새나는 풍경이자 어지럼증 일으키는 기분 좋은 상상력이다. 글을 끼적거리다 보니 갑자기 점순이의 꼬드김 상대가 되고 싶다. 1년에 단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우주쇼가 만들어낸 발칙한 상상이다.
집 앞 아파트 화단에 잎을 내민 수선화(水仙花科, Amaryllis belladonna) 새싹들에 힘이 넘쳐난다. 이곳은 응달진 습지로 화초들이 살아가기 적당한 토질이 되지 못했다. 떨기나무 조경수들이 인도 곁으로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어느 날 상사화 꽃대를 닮은 수선화 두 송이가 꽃대를 길게 내밀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꽃이 시든 자리에 새싹들이 꼬물꼬물 잎을 내놓은 것이다.
오며 가며 살피다가 그제야 나의 손에서 셔터음이 울렸다. 꽃대 두 개만 덩그러니 있을 때 보다 눈에 띄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위 링크를 열면 이 식물이 피워낸 꽃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입춘이 지나 3월이 오시면 짬짬이 집 주변은 물론 가까운 산기슭으로 기분 좋은 출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날 뷰파인더에 들어온 수선화의 기록은 3월 18일이었으므로 꽃은 보다 빨리 피어났었다. 그리고 같은 날 집에서 멀지 않은 서울 강남의 유명한 S병원 뒷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맘때 아가들의 손가락에 끼워둔 금반지처럼 샛노란 빛깔의 산수유꽃이 앙증맞은 꽃잎을 내놓는다. 그 현장으로 가 본다.
도시인들은 바쁘다. 바쁘게 산다. 그들 가운데 더 바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사람들로부터 전혀 불필요해 보이는 대명사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일컬어 '갑'이라 불렀으며, 이들의 행위를 '갑질'이라 불렀다. 갑질이 존재하는 사회.. 갑질의 상대편에 '을'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내 앞에는 S병원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샛노란 꽃잎을 내놓은 산수유나무 몇 그루가 언덕 위에 서 있다. 산수유나무들은 지난해 맺은 열매를 아직도 매달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열매들.. 이들에게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뷰파인더를 유혹한 건 샛노란 꽃잎과 빨간 열매의 조합이었다. 요즘 용어로 말하면 신세대와 쉰세대가 한 줄기에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이들처럼 조화롭게 잘 살아가면 좋으련만 사정은 민초들의 바람과 전혀 다르다. S병원의 뒷동산에서 살아가고 있던 산수유나무도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아파트 단지에 서 있는 조경수 정도의 위치라고나 할까.
이맘때 니가 젤 잘났다
코로나 시대의 산수유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을의 위치에서 갑으로 순식간에 자리를 바꾸게 된다. 그 시기는 대략 한 달 정도.. 사람들은 산수유가 피는 시기가 되면 산수유 명소를 찾아 나서는 상춘객으로 변하게 된다. 3월이 시작되는 것이다.
갑과 을의 순서가 바뀌었을까..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마냥 행복해한다. 산수유와 진달래의 갑질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때만큼은 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갑질에 마구 빠져드는 것. 평소 사람들의 눈밖에 나 있던 식물들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스스로 '을'을 자청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의 대소 등에 당신을 대입시키며 비교하고 스스로를 폄훼하는 것이다. 인간계와 자연계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하는 갑과 을의 모습이 산수유나무에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S병원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서면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된다. 뉴스위크(News week)의 자료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의 최고 병원은 서울아산병원이 1위(97.6%)를 기록했고, 2위(94.2%)는 삼성서울병원, 3위(93.4%)는 서울대병원, 4위(91.7%)는 세브란스병원, 5위(91.4%)는 분당 서울대병원이 차지했다.
산수유꽃이 흐드러진 언덕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병원이 2위를 차지한 것이다. 통계의 배경에는 의료진이 탄탄하고 첨단장비 등 시설이 좋으며 환자들로부터 만족도가 좋아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이게 기쁜 일일까..
코로나 시대에 사는 요즘 하루 일과 중에 빼놓지 않고 보는 게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이다. 오늘자(18일, 현지시각) 성적표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감염자가 매일 1만 명 이상을 넘기고 있고, 사망자는 여전히 수백 명을 기록 중이다. 다행히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은 행복을 말하겠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불행 보다 더 큰 지옥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집 앞 화단에 명자나무가 꼬물꼬물 꽃봉오리를 내민 것도 수선화와 산수유와 똑같은 시기이다. 천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고의 병원을 가진 미국의 코로나 성적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그런 반면에 언덕 위에 샛노란 꽃잎을 내놓은 산수유와.. 소리 소문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의 모습은 단연 으뜸이다. 갑질을 하지 않는 게 진정한 갑의 모양새랄까.. 3월이 오시면 세상에서 젤 잘난 봄꽃을 마중 나가시는 당신이 젤 잘났다. 당신이 갑이다.
Ecco come arriva la primavera_il Monte DEMO, Seoul COREA
il 18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