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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8. 2021

1년에 단 한 번 볼 수 있는 우주쇼

#4 서울에 봄이 오시던 날


지난 편(봄처녀에 관한 단상(斷想)) 끄트머리



날파리가 쥐고 있는 줄자로 이탈리아에서 서울까지 거리를 잰다면 책상 위에 머리 박고 졸고 있는 사람의 처지와 별로 다를 바 없겠지..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는 어린왕자가 가지고 노는 작은 어항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도 최근이자 입춘 때 나타난 봄처녀 때문이다. 



어린왕자는 가끔씩 어항에 물을 주기도 하고 작은 입술로 호~하며 입김을 불기도 한다. 그가 생떽쥐페리를 만나기 위해 사하라 사막으로 떠났을 때 어항 속은 밤이슬에 젖기도 하고 볕에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돌아올 때쯤이면 봄처녀는 마냥 행복해할 것이다. 내가 겨울부터 입춘까지 기다리는 것도 그 때문이었지.. 



1년에 단 한 번 볼 수 있는 우주쇼




   아침햇살이 숲 속을 헤집고 다닐 때쯤이면 우리는 산기슭에 발을 들여놓고 있을 때이다. 산중의 공기는 세탁기에 돌린 듯 상쾌하고 발걸음도 서서히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봄처녀 제 오시는 날이면 이런 느낌은 도드라지다 못해 까무러친다. 게을러터졌던 몸 안의 세포들이 하나둘씩 깨어나면서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그저 '몸이 개운하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런 표현은 자연에 대한 평가절하된 한 모습이 아닐까.. 



서기 2021년 2월 17일(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눈부신 날이었다. 한 며칠 겨울비가 오락가락하시더니 하늘이 쨍하고 개인 것이다. 시내에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컴 앞에 앉으니 서울에서 이맘때 만난 풍경들이 그리워졌다. 



요즘 몇 편 끼적거린 '서울에 봄이 오시던 날'에 만난 풍경들이다. 이탈리아에도 명소가 있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의 산하와 비교가 안 되는 풍경들이 봄처녀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진첩을 열자마자 그녀의 향기가 분 냄새처럼 확 풍긴다. 



분 냄새.. 요즘은 넘쳐나는 게 화장품의 종류지만 유소년기에 내가 아는 화장품이 기억에 남는 건 분가루였다. 어머니와 누나가 면경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웃으며 얼굴에 토닥 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입춘이 지날 때쯤이면 그와 비슷한 풍경이 산기슭에서 도란거리는 것이다. 



숲 속에는 참 나뭇잎이 이불처럼 널브러져 있는 가운데 아침햇살이 숲을 헤집고 들어오면, 그때부터 숲 속은 함성이 자지러진다. 어쩌면 김유정(金裕貞)이 지은 단편소설 동백꽃(冬柏─)의 배경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사춘기의 봄처녀 점순이가 나처럼 순진하고 어수룩했던 소년을 꼬드기게 된 것도..(히히 ^^)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산동백(생강나무) 때문이었을 것이다. 



산수유꽃을 닮은 동백이 꼬물꼬물 꽃봉오리를 내놓을 때쯤이면 산기슭은 점순이의 음모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녀는 구운 감자로 소년을 꼬드겼지만 어수룩한 그는 봄바람난 점순이의 꾐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실제로 나의 첫사랑은 이런 상태에서 끝났다.ㅜ) 꼬드김에 실패한 그녀는 무안했던지 닭싸움을 붙이게 된다. 자기 집의 수탉과 소년의 집 수탉을 싸움 붙이면서 여러 차례 약을 올리는 것이다.(순진한 녀석 눈치도 없냐?) 



돌이켜 보니 그 맘때 사내아이들은 계집아이들 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덜 성숙되었을 때이다. 그는 자기 집 닭이 번번이 싸움에 지자 그녀의 닭을 때려죽이게 된다. 이게 문제(?)의 발단이 됐다. 점순이는 자기 닭을 때려죽인 소년을 어른들에게 일러바치지 않겠다는 제안에 옵션을 달았다. (조오기 산 기슭까지 걸어갔다 올까.. ^^)



순진한 녀석.. 둘이 타박타박 걸어서 도착한 산기슭에 동백꽃이 꼬물꼬물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 그곳은 마을(김유정역)에서 꽤 먼 곳으로 점순이의 음모가 실행되기 마침맞은 곳이랄까.. 참나무 잎이 솜이불처럼 푹신하게 널려있는 숲 속 산기슭에 도착하자마자.. 점순이는 어수룩하고 착한 소년의 허리를 감싸 안고 논개(論介)처럼 동백꽃 숲으로 파묻히게 된다. 



그다음부터 일어나는 복잡 미묘한 일들은 생략한다. 이맘때 서울의 대모산 기슭에 빼꼼히 얼굴을 내민 동백은 물론 진달래의 짙은 꽃봉오리는 봄처녀의 마음을 뒤흔들지 않았을까.. 오죽하면 하니까지 이맘때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을까. 점순이의 마음이나 하니의 이런 마음을 알 때까지 걸린 시간은 꽤나 되었지.. 



어느 작가의 마음을 뒤흔든 풍경들은 예사롭지 않다. 1년에 단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우주쇼가 펼쳐진 것이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당신의 나잇살만큼 만날 수 있는 것. 그나마 꽃피고 새가 우지지는 어느 봄날에 집콕을 하고 있거나 술잔 기울이는데 한 눈 팔면 그 횟수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느날 남자 사람이 함부로 점순이 따라쟁이가 되면 곤란하다. 그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분 냄새나는 풍경이자 어지럼증 일으키는 기분 좋은 상상력이다. 글을 끼적거리다 보니 갑자기 점순이의 꼬드김 상대가 되고 싶다. 1년에 단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우주쇼가 만들어낸 발칙한 상상이다. 끝!


Ecco come arriva la primavera_il Monte DEMO, Seoul COREA
il 17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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