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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7. 2021

그날 아침

#2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남다른 풍경

지난 여정(출가 말고 가출) 끄트머리



어느 날 나는 이렇듯 위대한 사람들과 전혀 다른 가출에 비견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성자의 길을 걷고 있었던 사람들과 붓다의 길을 간 사람들과 달리 여생을 잘 살아보기 위해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때 나의 이름표에는 프란체스코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의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다. 
비록 하니로부터 허락된 가출이자 준비된 가출을 통해 나는 세상을 탐하게 된 것이다. 나의 오래된 습관이 먼 나라 이탈리아에 오자마자 때를 만난 듯 쉴틈이 없는 것이다. 나는 불국토를 꿈꾸지 않았고 천국 조차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만난 아름다운 세상을 이웃과 공유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나만의 길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만난 꿈같은 세상.. 마침내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살던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날 아침




   아직 먼 동이 트기도 전, 나는 민박집(Agriturismo, 농가민박)을 나와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걷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별나라에 불시착한 어린 왕자처럼 놀라운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어린 왕자는 다른 별을 찾아 여행을 떠났지만 나는 생텍쥐페리처럼 어느 날 불시착을 한 것이다. 그와 다른 게 있다면 사막이 아니고 초원이었다. 



사막에서 모래언덕과 하늘과 별님과 달님과 해님을 볼 수 있다면, 초원에서는 온갖 풀꽃들과 곡식들과 사이프러스 나무와 올리브나무는 물론 참나무 등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곳을 신세계라 생각했다. 엄격히 말하자면 불시착이 아니라 의도된 착륙이었다. 


내 조국 한국을 떠나 이곳까지 올 때까지 여정을 생각하면 달나라의 옥토끼를 내쫓는 로켓의 비행과 별로 다름없었다. 지구에서 쏘아 올린 로켓이 대기권을 뚫고 달착륙에 이를 때까지의 매우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과정을 출가 말고 가출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되물릴 수 없는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속을 떠난 수행자들이 앞만 보며 나아가는 것과 매우 다른 의미가 가출 속에 포함되었다. 대체로 가출은 시행착오가 생겼을 때 당신이 떠나온 집으로 고개를 떨구고 다시 찾아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가출을 시도해도 될 것이다. 한 번 가출에 재미 들리면 두 번 세 번 여러 번 가출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청춘들에게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청춘들에게는 세상이 시험대상일 것이다.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는 모험심과 세상을 품을 호연지기를 기를 기회도 될 것이다. 그러나 안 청춘의 가출은 보다 심각하다. 한 번 감행한 가출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시도한 가출이 실패로 끝나는 날이면 대기권에서 불타버린 로켓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과정은 그냥 모험이 아니라 목숨을 건 도전이나 다름없다. 하나밖에 없고 한 번 밖에 없는 천하 보다 더 귀한 목숨을 가출에 걸고 있는 것. 그렇게 생각해 보니 출가와 별로 다를 바 없네.. 출가자들의 목적은 누구누구의 제자가 되어 인류를 구할 원대한 꿈을 꾸고 있지만, 나의 출가 목적은 전혀 다른데 있는 것이다. 


남은 생을 감안하여 '10년만 잘 살아보자'며 마음먹고 다른 별로 갈 수 있는 우주선의 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 내가 착륙한 곳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어느 벌판이었다. 내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그 카메라는 우주선에 장착된 기록장치와 다름없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취미로 즐긴 작은 기계 하나가 허블 우주 망원경처럼 작동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건져내는 일일 것이다. 세상에는 매우 훌륭한 기록장치들이 있고 오늘날은 드론(drone, 무인항공기)까지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차원이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발품을 팔아야 얻을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아무튼 초원이 펼쳐진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과정은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맨 먼저 형제자매는 물론 친구까지 만나지 말아야 했다. 다른 별로 갈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었다. 집에서 등 따습게 지내며 할 짓 다해 가면서 다른 별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곳은 매일 전화 너머로 "한 잔 어때..?"라며 나를 유혹하는 세상이다. 매일 봐 왔던 풍경이자 지천명의 시간을 지나면 지겨울 때도 됐다. 그 자리에서 맨날 떠들어대던 무용담과 자랑질을 버려야 갈 수 있는 다른 별을 향한 여행의 첫 번째 조건이 '나홀로' 되는 일이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가 우주선의 연료가 되어줄 언어였다. 이탈리아어를 습득하기 위해 살아갈 날이 더 적은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야 했다. 이런 사정을 안 지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말렸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보다 더 바짝 긴장의 끈을 졸라맸다. 



그런 일이 해를 넘기면서 마침내 우주선을 쏘아 올릴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어린 왕자의 등장에 놀란 어느 비행사처럼 눈이 동그래지며 먼동이 터 오는 초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텍쥐페리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장 난 비행기 엔진을 수리하고 있었지만 내겐 그런 안전장치가 없었다. 만약 안전장치가 있었다면 무슨 꾀를 부려서라도 그 장치를 써먹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을 그리워하는 한(恨)을 남길 지언정.. 내가 스스로 허락한 약속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새로운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La Memoria della Reggia di Colorno_Provincia di Parma
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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