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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6. 2021

그리움으로 변한 풍경들

-서울에 봄이 오시던 날

늘 곁에 있을 때는 잘 모르는 법이지..!!


   서기 2021년 2월 5일(현지시각) 저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화창한 날씨를 보였다. 봄 날씨를 쏙 빼닮았다. 기온은 영상 15°C.. 한동안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음산한 날씨가 입춘을 지나면서 활짝 개인 것이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만 봐도 불과 한 달 전의 모습과 비교가 된다. 다만 사람들의 얼굴을 가린 마스크는 여전하여 표정을 알 수가 없다. 


화난 표정인지 찡그린 표정인지 기분 좋은 표정인지.. 코로나 시대가 끝나 봐야 알 수 있을 것. 그러나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 가면 사정이 다르다. 그곳에는 풀꽃들의 대합창이 이어지는 곳. 어떻게 알았는지 풀꽃들은 날씨의 변화를 기막히게 잘 감지하고 있다. 언제쯤 꽃잎을 내놓아야 하는지 신기할 정도로 잘 알아맞히는 것이다. 



오늘 저녁 나는 서울의 봄이 보고 싶어 사진첩을 열었다. 때가 조금은 이르지만 그곳에는 복수초며 산괴불주머니 꽃과 진달래와 느티나무 등의 새순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서울에 살 때 사시사철 또 입춘이 오는 즉시 하니와 함께 거의 매일 아침운동을 다녔던 청계산이나 대모산의 봄소식을 카메라에 담곤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산기슭에 주차를 해 놓고 양지바른 곳을 기웃 거리는 것이다. 



포스트에 등장한 몇 장의 봄 풍경은 대모산 기슭의 어느 골짜기에서 눈에 띈 우리나라의 야생화이자 봄이 오시면 흔히 눈에 띄던 풍경들이다. 그중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복수초(福壽草)는 여러해살이풀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꽃이다. 한자말에서 유추되듯이 복과 장수를 의미하며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란다. 산골짜기 눈 속에서 납작 엎드려 지내다가 봄이 오시는 즉시 샛노란 꽃잎을 내놓는 것이다. 



서울의 대모산 기슭에서 만난 복수초는 눈 속은 아니었지만 낙엽을 머리에 이고 꽃잎을 내놓았다. 그리고 산괴불주머니 꽃은 골짜기 언덕에 무리 지어 핀 것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돌틈이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로 유년기 때부터 봐 왔던 친근한 녀석들.. 봄이 오시면 개울가 언덕을 발그레 수놓던 진달래는 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진달래 꽃잎을 따 먹던 추억은 쉰세대의 해묵은 행복일까.. 



진달래는 꽃잎이 활짝 피기 전 짙은 분홍색 꽃봉오리가 맺힐 때 가장 아름답다. 하니는 그 자태를 "슬프도록 아름답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릴 때면 서울 근교의 산은 물론 먼 산으로 소풍을 떠나는 것이다. 노트북을 열어놓고 글을 쓰는 지금 테이블 위에는 그녀의 사진 한 장이 액자에 담겨 진달래 꽃봉오리를 응시하고 있다. 



어느 봄날 청계산의 원터골에서 찍은 사진이 늘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진달래꽃 봉오리와 닮은 색의 짙은 분홍색을 입은 한 여인의 아웃도어와 함께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녀는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쯤 백설희 씨가 부른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지금은 옷고름 씹을 일도 없고 성황당을 찾기도 쉽지 않은 시대지만 진달래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누가 일부러 시킨 것처럼 흥얼거리는 것이다. 지금 그 여인은 빌어먹을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다. 현재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를 감안하면 진달래꽃이 필 때쯤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올 수 있을까.. 


누군들.. 그 누군들 곁에 있을 때는 잘 모르는 법이다. 진달래꽃이 전국 방방곡곡의 산하를 붉게 물들일 땐 귀한 법을 잘 모른다. 그러나 봄이 저만치 아드리해 건너서 오실 때면.. 먼 나라 이탈리아에서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꽃이 그리움을 아장아장 소환하는 것이다. 봄꽃 속에 옷고름 씹어가며 흥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Il giorno della primavera a Seoul_IL MONTE DEMO
il 05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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