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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01. 2021

누구를 위해 종을 때리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어느 신부님

예나 지금이나 어쩌면 영원토록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 같은 하늘나라.. 그곳은 어디메뇨..?!!



   세 여자 아이가 앉아있는 곳은 빠르마 두오모(Duomo di Parma) 앞이다. 이곳은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에밀리아 로마냐 주(Emilia-Romagna)에 위치한 곳이다. 서기 1106년에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La 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으로 헌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므로 대략 1000년의 세월이 흘렀다. 빠르마에서 가장 중요한 가톨릭 예배 처소이다. 이탈리아 주 정부(에밀리아 로마냐)가 후원하고 있는 요리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


어느 주말, 나는 빠르마의 명소를 찾아 나서면서 이 도시의 자랑거리인 두오모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때 맨 먼저 만난 세 여자 아이들.. 이 장면은 양해를 구한 뒤 자연스럽게 포즈를 잡아달라고 하며 기록에 남겼다.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좋아하며 잠시 몸 매무새를 고친 다음(여자 아이들은 달라도 달라 ^^)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한 것이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잠시 후 내 앞에 나타날 놀라운 장면에 대해 전혀 무방비 상태였다. 다만, 대리석으로 지은 건물의 외관에 한 눈이 팔려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배를 드리는 처소 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 비친 건축물은 거대한 작품이었다. 얼마나 섬세하게 조각되었는지.. 1000년의 세월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살아있는 듯했다.



두오모 입구에 새겨진 부조들의 모습을 기록에 남겼다. 기독교인들이라면 부조의 모습만으로도 무슨 뜻이 새겨진 것인지 단박에 눈치챌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다. 망원렌즈로 줌인한 장면이며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고난과 죽음에 이르는 장면 등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기 2021년 2월 28일 초저녁(현지시각), 사진첩을 펴 놓고 빠르마 두오모를 통해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어느 신부님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쩌면 영원토록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 같은 하늘나라를 두 사람으로부터 비교해 보며 나의 생각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기록을 남기고 있는 동안 한 아이가 카메라 앞으로 뛰어들었다.(아이들은 이래요. ^^)


자료사진 좌측으로 두오모 광장의 종탑(Campanile)이 보인다. 종탑의 높이는 63미터로 1284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294년에 완공된 것으로 대략 10년이 걸렸으며, 당시의 관점으로 볼 때는 엄청난 높이로 여겼을 것이다. 오늘날은 100층 이상의 고층빌딩이 널려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건축물에도 신의 개입이 있었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나는 잠시 후 신의 개입이 아니라 신이 살고 있는 듯한 두오모 내부를 보면서 촌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누구를 위해 종을 때리나




(지금부터는 두오모의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두오모의 천장 꾸뽈라(Cupola)는 신이 살고 있는 장소이자 신들의 공간이다. 나는 이곳 빠르마 두오모에서 미켈란젤로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의 천장화에 유명한 일화가 깃들어 있다. 주로 조각만 열심해 온 그에게 교황 율리오 2세(Papa Giulio II)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경당의 천정화를 그리도록 지시하게 된 것이다. 



그는 교황의 지시를 받고 난 다음 잠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자칫 교황청 내의 정치적 음모에 빠져들지 않을까 고심했던 것이다. 교황청은 일반의 생각보다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나 할까.. 그는 이 작업에서 손을 떼고 싶었다. 조각만 해 왔던 그에게 엄청난 일이 맡겨진 것 외에도 당신의 예술혼과 맞지 않은 주문과 갈등이 생긴 것이다. 



그는 천장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천지창조 당시의 아담과 이브의 모습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반대 의견은 '신성모독'으로 돌아왔다. 성자가 음부를 드러내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이었다. 예술과 사회적 제도가 충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충돌은 그가 이 작업을 맡기로 하면서 작업장 주변에 아무도 접근하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성자의 발가벗은 몸을 본 교황청 반대파 사람들이 시비를 걸지 않게 사전에 막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밀이 물 새듯 흘러가 어느 날 신성모독으로 돌아온 것. 하는 수 없이 음부만 가린 채 꾸뽈라에 등장하는 인물 다수는 베일을 씌운 것이다. 시스티나 천장화의 작업은 무려 4년이나 걸렸다. 4년 동안 1만 2천 점의 작품을 남겼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작품이 그의 손으로부터 발현된 것이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깨를 도려내고 싶었다"라고 술회할 정도였다. 주로 누워서 그리다 보니 물감이 눈이나 얼굴에 묻어나는 것은 물론 어깨 통증이 너무 심했던 것이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 중앙에는 창세기의 장면을 프레스코로 재현한 아홉 점의 그림이 띠 형태로 그려졌고, 똑같은 생김새에 동적인 자세를 취한 남성 누드(이누디)가 각 모서리에서 작품들을 둘러싸고 있다. 



기록에 따른 작품의 제작 순서이자 내용에 따른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면, 첫 번째 여섯 작품은 빛과 어둠의 분리, 별의 창조, 땅과 바다의 분리, 아담의 창조, 하와의 창조, 원죄로서, 창세기 속 몇 가지 일화를 보여준다. 나머지 세 작품은 노아의 이야기로, 노아의 희생과 노아의 방주, 노아의 만취 등이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성당이 봉헌된 성모승천 대축일을 기념하여 1511년 8월 15일에 부분적으로 공개되었다가, 1년 후인 1512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축일에 마침내 천장화 제막식이 거행되었다고 전한다. 



자료를 대략 둘러보는 동안에도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배경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메디치가의 후원에 힘입어 최고의 예술가로 명성을 떨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세상 너머에 있는 하늘나라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하늘나라는 안드로메다 너머에 있던지 우리 곁에 상존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당신의 영안(靈眼)에 비친 하늘나라의 모습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돌(대리석) 속에 갇힌 천사를 구출하기 위해(이게 말이나 될 법한가..!) 망치와 정을 두드리고 끌로 다듬었다. 세상에 널린 기록들 조차 당신의 생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작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내곤 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신의 동행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1인을 꼽으라"면 무조건 미켈란젤로를 꼽는다. 나는 그의 예술혼은 물론 신이 세상에 내린 가장 큰 선물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가슴에는 맑고 향기로운 아름다움이 거대한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다시 서기 2020년 어느 날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로 옮긴다. 그곳은 하니와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이다.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어느 신부님




이곳은 빠르마 두오모 자하에 위치한 예배 처소이다. 저 멀리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고개가 땅을 향하고 있다. 여러분들에게 매우 익숙한 장면이자 거룩하며 숭고한 장면이다. 당신께서 남기신 족적을 생각만 해도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이다. 이탈리아 어디를 가도 어떤 교회를 가도 기독교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쉽게 마주치는 장면이다. 조금 전 두오모 대성전을 한 바퀴 돌아 지하에서 다시 두오모 내부의 아름다운 장면 곳곳을 기록에 남기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잠시 둘러본 내부의 장식은 이곳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하늘나라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세상의 모습과 동떨어진 풍경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바를레타에도 이와 비교는 안 되지만 근사한 두오모는 물론 크고 작은 교회들이 있다. 현재까지 내 눈에 띈 교회는 전부 일곱 군데나 된다. 그 가운데 우리 집 바로 곁에 위치한 교회의 신부님의 귀를 간지럽힌다.



지난해의 일이었다. 하니가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귀국한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당시 그녀는 한국에서 창궐하고 있었던 코로나를 피해 급히 이곳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그때부터 코로나가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전혀 무방비 상태의 이탈리아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결국 이탈리아 정부 보건 당국은 비상조치를 취하고 전국을 봉쇄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아예 문을 닫는 조치를 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개방할 때였다. 



평소 가까운 교회에서는 미사가 진행되는 시간 전후 혹은 특별한 미사가 진행될 때 종소리를 울리곤 했다. 누군가 결혼을 하면 웨딩마치를 울렸고 성탄절이 되면 캐럴을 울렸다. 종소리가 음악을 잘 연주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울리는 멜로디만으로 교회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일 미사 때는 알 수 없는 멜로디가 차분하게 흘러나오곤 했다.



마치 우리가 잘 아는 '학교종'의 계이름처럼 솔솔라라 솔솔미 솔솔미미레. 솔솔라라 솔솔미 솔미레미도.. 하고 종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처럼 신부님이 종소리를 울리는 동안 신자들이 꾸역꾸역 시간에 맞추어 모여들곤 했다. 



그 신부님은 키가 186센티미터(흠.. 너무 정확한가.. ^^)가 될 정도로 훤칠했으며 얼마나 잘 생겼는지 일류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 교회 앞에서 신도들과 만나면서 나누는 대화는 나긋나긋했으며 얼굴의 표정은 온화하고 후광까지 입은 듯 빛나 보였다. 그런 어느 날부터 교회는 텅 빈 채 신부님 혼자 지키고 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느덧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하니와 함께 집콕을 하며 듣게 된 교회의 종소리는 평소와 전혀 달랐다.



-종소리가 왜 저래..?(갸우뚱) 하니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무슨 일일까..? 내가 말했다.

-무슨.. 지랄엠병하는 것도 아니고 ㅋ 하니가 말했다.

-신부님이 코로나 때문에 완전 맛이 간 거 가토!! ㅋ 내가 말했다. 



종소리는 이랬다. 

땡때댕때댕떼그랑떼떼에땡그랑땡똥땡*&^%$@#^&^$@!$%..


원래는 이래야 했다.

솔솔라라 솔솔미 솔솔미미레. 솔솔라라 솔솔미 솔미레미도..


착하고 맑아야 할 종소리가 얼마나 엉망인지 당장이라도 종이 깨어질 듯했다.



우리가 잘 아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는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가 쓴 장편소설이다. 그가 작품에 소환한 건 존 던(John Donne) 신부이자 성공회 사제이며 시인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에서 종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의 종소리는 타동사이지만 우리 동네 신부님의 종소리는 자동사(自動詞)였다. 그런데 목적은 분명해 보이는데 불명확한 거 있지.. 종소리 멜로디가 엉망진창이었어. 어쩌면 불완전 자동사라 할까.. 그것도 아니면 타동사.. 암튼 최악이었다. 세상 그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할 성직자가 코로나 앞에서 무릎을 꿇은 모습이 교회의 종소리에 묻어났던 것이다. 그렇게 인자하신 신부님이 졸지에.. 



나는 3월을 코 앞에 두고 예나 지금이나 어쩌면 영원토록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 같은 하늘나라의 두 모습을 비교해 보고 있는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하늘과 어느 신부님의 하늘.. 신부님이 두들긴 종소리는 누구를 위한 종소리였을까 싶은 생각을 한 것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두오모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꾸뽈라 천장에 그려진 살이 포동포동 찐 사람들이 거하는 곳이 신들이 살고 있는 하늘나라일까.. 미켈란젤로가 그토록 그리고 싶었던 누드화는 세상의 가식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지만, 세상은 쓸데없는 의식(儀式)에 구속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웃을 돌아보면 가난에 찌든 사람 병든 사람과 돌보지 못하는 노약자들이 수북하다. 어쩌면 그들은 하늘나라는 커녕 호화롭게 잘 꾸며놓은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 게 평생의 소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후로도 나는 제국주의자들이 남겨놓은 유산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조물주는 세상 만물을 먼저 지으시고 최후에 사람을 만들었다. 당신이 보시기에 흡족한 남자와 여자 사람들.. 그들이 동경하며 바라보는 하늘나라가 필요한 때인 듯싶다. 빠르마 두오모를 돌아 나오는 길이 이번에는 두 사람의 남자아이를 만났다. 세 사람의 여자 이이 그리고 두 사람의 남자아이.. 이들은 장차 요정과 천사로 변신하여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겠지.. 


L'Artista gènio Michelangelo e il Sacerdote_Cattedrale di Parma
il 28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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