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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16. 2021

로즈마리향에 묻어난 환상(幻想)

#6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의 봄맞이

시간이 지나면 더 짙어지는 그리움의 향기..!!



지난 여정(잃어버린 꽃동네 새동네) 중에서



하니와 내가 걷고 있는 피에솔레 안 동네의 모습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꿈같은 풍경이 피에솔레의 봄에 묻어나는 것이다. 꽃이 피고 새가 우지지는 오래된 마을..
부러움은 없다만 자꾸만 고향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금 고향땅 부산으로 돌아간들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풍경들이 남아있을까.. 어림 반푼 어치도 없다. 서울에 살면서 명절에 고향 땅을 밟으면 나의 살던 고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졸졸졸 흐르던 개울의 물속을 들여다봤던 그곳은 하수구로 덮이고 말았다. 그저 가슴에만 간직해야 하는 고향땅.. 고향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피에솔레.. 우리가 먼 나라 낯선 땅 구석구석을 싸돌아 다니는 것도 잃어버린 꽃동네 새동네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갈증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생수를 찾는 것처럼.. 마시고 퍼 마시고 또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그리움이 데카메론의 배경 피에솔레에 묻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마을 끝까지 가 보고 싶었다. 





로즈마리향에 묻어난 환상(幻想)




   하니와 나는 피에솔레 언덕 꼭대기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갇고 있는 곳은 언덕의 동쪽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마을로 오래된 담벼락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그곳에는 파릇한 풀포기가 군데군데서 자라나고 있었으며 봄볕이 따사롭게 내려 쬐고 있었다. 



   서기 2021년 3월 15일(현지시각) 저녁나절,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추적거리던 봄비가 그치고 사람들의 통행이 잦아졌다. 여성들의 옷차림이 더욱 가벼워졌고 어떤 아가씨들은 짧은 치마에 기다란 부츠를 신었다. 얼굴은 마스크로 가렸지만 봄 차림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져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코로나 시대는 곧 종식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건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오늘 자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는 이틀 전 보다 조금 줄긴 했지만 여전히 상승 그래프를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감염자 수가 1만 5천 여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사망자 수는 354명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Covid, le news. Il bollettino: 15,267 nuovi casi e 354 morti nelle ultime 24 ore. DIRETTA) 



이날 아침, 하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 내용에는 가십이 포함됐으나 주요 내용은 코로나의 현황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그녀의 이탈리행 비행기는 점점 더 지체될 게 분명해 보였다. 통호 속에 한숨이 묻어 나온다. 이제 한국에서 시작된 백신 접종까지 맞고 돌아와야 할 것이다. 접종까지 마치게 된다면 봄날은 저만치 달아날게 아닌가.. 




통화를 끝마칠 때마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런 한편, 코로나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조물주가 천지창조를 했다면 최소 단위의 세균이나 박테리아 조차도 필요에 따라 만들었을 것이다. 



전편 잃어버린 꽃동네 새동네에서 잠시 언급한 바 중세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은 유럽의 인구 7500만~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류 최악의 참사였다. 이때 피렌체 공국의 사람들도 10만 명이나 죽었다. 그로부터 이 참사는 1346년부터 1353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대략 670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 사대가 도래한 것이다. 



오늘 현재 지구촌의 코로나 사망자는 265만 명이고 미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 영국 순으로 집계됐다. 현대는 중세 때 보다 모든 의료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그나마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피해자를 보이고 있지만 중세 때 코로나가 창궐했다면 흑사병 못지않았을까.. 코로나가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의 가치는 많이 변하게 됐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코로나가 장기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코로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우선 나부터도 일상을 앗아간 녀석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도달하게 됐다. 현대인들의 일상은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물질이 차고 넘치는 시대이고 코로나 시대에서 조차도 치맥을 배달시켜 먹을 정도로 편리한 세상이다. 중세 때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생명을 존재케 해주는 물과 공기의 고마움을 새까맣게 잊고사는 것처럼, 현대문명 속에 빠져 살던 우리의 일상은 너무 당연시 여기는 게 아니었는지.. 그 일상을 잠시 잃어버리게 만든 게 코로나였으며, 코로나를 통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모습이 얼마나 특별하고 귀한지 깨우쳐 준 게 빌어먹을 코로나였다. 



흑사병이 창궐할 중세 때 지오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소설 데카메론(Decameron)을 피에솔레에서 썼다면, 현대를 살고 있는 나는 바를레타에서 노트북을 열어놓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을 쓴 곳은 피에솔레의 시골 별장이라고 기록은 되었지만 중세의 개념은 오늘날의 별장과 약간은 차이가 있을 것이나 그의 재력을 참조하면 궁전이나 다름없는 별장이 이곳 피에솔레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하니와 내가 둘러보고 있는 이곳 피에솔레 골짜기에는 그가 은둔하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보카치오는 피렌체 인근 체르딸도(Certaldo)의 부유한 가정에서 아버지 보카치오 디 켈리노(Boccaccino di Chellino)와 프랑스 여성 잔느(Gianne)ㄹ부터 태어났다. 이후 유년기를 프랑스에서 보냈으므로 가문의 재력이나 배경이 대단해 보인다. 



그의 어머니는 6살 때 세상을 떠났고 피렌체에 살고 있던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라틴어 문법을 배우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12살 때 그의 아버지는 상술을 가르쳐 가업을 이으려 했지만, 왕립 도서관 사서인 빠올로 다 페루지아(Paolo da Perugia)의 가르침으로 문학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가 29살 때 쓴 시가 피에솔레의 요정(Ninfale fiesolano)이었다. 



데카메론 이전에 쓴 작품에 피에솔레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23살 때부터 사랑을 느낀 한 여인이 그의 작품에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35세가 되던 해 피렌체에 흑사병이 나돌기 시작하고 데카메론을 집필할 구실이 생긴 것이다. 그는 피에솔레서 대략 5년간 칩거를 하며 40세 때 데카메론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카치오는 근대소설의 창시자로 알려지며 62세가 되던 해 고향 체르딸도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우리는 점점 더 피에솔레 깊숙한 곳으로 발을 옮겼다. 질감이 두텁게 배인 담벼락 위로 올리브 과수원이 길게 펼쳐져 있었고 봄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맑고 향기로운 로즈마리(Rosmarino, rosemary) 향에 취했다. 보랏빛 앙증맞은 무수한 요정들이 우리 곁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로즈마리는 이탈리아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향신초이자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매우 친숙하게 됐다. 



나홀로 유학길에 오른 이탈리아에서 로즈마리는 그리움을 달래주는 향기를 품은 마법 같은 존재였다. 한 때 학창 시절에 목놓아 부르던 팝송까지 절로 소환되던 로즈마리..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스카보로우 페어에 파슬리(Prezzemolo)와 세이지(salvia comune) 로즈마리(Rosmarino)와 타임(Timo)이 그것이다. 괄호 속은 영어식 표기와 다르지만 노랫말은 이랬지..



Scarborough Fair

_ Simon & Garfunkel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스카보로우 박람회장에 가실 건가요?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파슬리와 세이지와 로즈마리 그리고 타임..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기억해 주셈.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그녀는 한 때 나의 진정한 사랑이었다고욤.(역자 주, 이하 생략)

Tell her to make me a cambric shirt (in the deep forest green)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Tracing of sparrow on snow-crested ground)
Without no seams nor needle work
(Bedclothes the child of the mountain)
Then she'll be a true love of mine
(Sleeps unaware of the clarion call)

...



하니와 나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점점 더 피에솔레 골짜기 깊숙한 곳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가끔씩 개 짖는 소리만 멍멍.. 봄볕은 올리브 과수원 숲 속으로 머리를 마구 들이밀며 단잠을 깨우고 있었다. 



서기 2021년 3월 15일 저녁 나절 피에솔레 여행 사진첩을 펴 놓고 보니 그녀와 함께 걸었던 시간들이 올리브 잎사귀처럼 또렷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리 먼 과거도 아니었건만 코로나 때문에 아스라하게 멀어진 과거의 시간이 환상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보카치오는 피에솔레의 어느 별장에서 대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오늘날 그가 남긴 대작들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사람들로부터 잘 읽힐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종이책이 점차 사라지고 오디오북이 대세를 이루는 현대사회..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가운데 책 읽는 시간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솔레 깊이 발을 담그면 괜한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 로즈마리향이 진동하던 그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피에솔레의 요정이 살고 있는 이 땅의 기록도 코로나가 없었다면 그냥 사진첩 속에서 묻히고 말았을까..



이미 과거로 변한 세월들이 환상처럼 다가온다. 로즈마리 꽃잎을 따서 코에 가져가 향기에 취했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그녀가 전화기를 붙들고 푸념을 길게 늘어놓는 것이다. 보카치오는 이곳에서 한 여인을 그리며 글을 쓰고 나는 그 장소를 추억하고 있다. 



코로나가 사그라지고 일상으로 되돌아 간다고 해도 두 번 다시 피에솔레로 갈 기회가 없어진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맑고 그윽한 향기가 진동하는 이 길을 다시 가 보지 않을까..



로즈마리향과 환상 속에서 그녀를 마냥 기다린다. 마냥..!


La primavera fiorentina del Rinascimento_FIESOLE
il 15 Marz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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