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의 봄맞이
흑사병으로 빼앗긴 도시를 바라보며 쓴 소설의 배경에 도사린 잃어버린 고향..!!
지난 여정(유년기의 미켈란젤로와 나의 꿈) 중에서
유년기에 쫄랑쫄랑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함께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눈깔사탕 하나를 입에 넣을 수 있는 곳. 칠 남매의 가정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보기 위해 제발 한 번이라도 아파봤으면 했던 나..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프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 앞에서 엄살을 떨며 머리를 내밀면 어머니의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손길이 온도계처럼 이마를 스친다. 그런데 어머니는 "흠.. 아들아, 괜찮단다.." 하신다. 그때가 젤 행복한 시간이었지.. ㅜ
하니와 함께 걸었던 길을 천천히 돌아보고 있자니 애틋하고 아련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피렌체서 사는 동안 거의 매일 시내는 물론 근교로 발품을 팔고 다녔으므로, 피렌체 곳곳에 우리의 흔적과 그녀를 향한 추억이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이런 생각 조차 코로나 시대가 간섭했음은 물론이다. 요즘 한국에 가 있는 그녀와 통화 중에 피렌체나 피에솔레는 안중에도 없다. 우리의 삶은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처럼 빠른 물살에 대책 없이 떠내려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마침내 피렌체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피에솔레 언덕 위에 도착했다. 지금부터 토스카나의 주의 숨겨진 명소를 만나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지난 여정 유년기의 미켈란젤로와 나의 꿈을 끝으로 하니와 나는 피에솔레 언덕 중심에 있는 산 로몰로 성당(Cattedrale di San Romolo) 앞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피렌체로 돌아갔다. 피에솔레 마을 전체를 둘러보기 위한 준비도 덜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찻길을 따라 걸었던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피에솔레 언덕 위 동쪽으로 향한 로마 극장(L'area archeologica di Fiesole)이 저만치 보인다.
그리고 사흘 후, 이번에는 도시락을 준비하고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피에솔레로 향했다. 이번에는 집에서 가까운 삐아짜 산 마르코(Piazza San Marco(Firenze)) 광장까지 걸어서 먼저 걸어갔다. 그곳에 피에솔레로 가는 버스가 있기 때문이며, 먼저 다녀왔던 길을 다시 걸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렌체-피에솔레 직행으로 도착한 것이다. 사흘 전에 거의 반나절을 소모했던 시간이 불과 20분이나 채 걸렸을까..
우리는 찜해 둔 장소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먼발치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로마 극장(L'area archeologica di Fiesole)이 눈에 들어온다. 피에솔레의 고고학적 유적지는 기원전 3세기 때부터 시작됐다.
피에솔레의 고고학적 유적지와 박물관의 유물은 물론 로마 극장 등이 남아있는 곳이나, 우리는 피에솔레의 봄이 더 궁금했다. 피에솔레 깊숙한 곳으로 발길을 옮기자 그곳에는 풀꽃들이 자지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겉으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발아래 혹은 피에솔레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부터 등장하는 피에솔레의 풍경을 눈여겨 봐 주시기 바란다. 피에솔레는 이탈리아의 작가 지오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소설 데카메론(Decameron) 쓴 배경이다. 피렌체서 살던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흑사병 때문이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흑사병(Peste nera)은 중세의 유럽에서 7500만~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전염병으로 알려졌다. 이 결과 당시 유럽은 이 무서운 전염병 때문에 인구의 1/3이나 줄었다고 전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데카메론이 탄생한 것이며 지오반니 보카치오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피렌체를 떠나 이곳으로 장소를 옮긴 것이다. 당시 피렌체는 흑사병으로 10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고 전한다.
2017년 기준 피렌체 인구는 382,258명이므로, 당시의 인구를 감안해 봤을 때 피렌체 공국 사람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2021년 3월 13일 자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위 도표)를 살펴보면 흑사병이 창궐할 때 보다 덜하지만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비루스가 당시 못지않다. 위 그래프 우측이 현재의 감염자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26,031명을 기록하고 있다. 덕분(?)에 집콕하며 브런치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다고나 할까..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에는 사람들이 쥐들과 함께 서식(?)하는 취약한 도시 및 가옥 구조를 지녔으므로 창궐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에 비해 현대사회는 세균에 대항할 수 있는 마스크는 물론 백신까지 개발해 내고 있으므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중세로 거슬로 올라가 코로나비루스가 창궐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상상만으로 실로 끔찍한 일이다.
지오반니 보카치오가 피에솔레로 장소를 옮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코로나 시대에 말하는 '거리두기'를 했던 것이다. 피렌체는 아르노 강을 끼고 만들어진 도시로 서쪽 지중해 쪽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비해 로마 극장이 위치한 피에솔레는 동쪽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피에솔레 언덕에 위치한 집들이 피렌체를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피에솔레의 중심(성당이 위치한 언덕 꼭대기)을 동서로 나누어 봤을 때 피렌체 시내 중심과 분리된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은 버스로 2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중세 때라면 마차를 타고 피에솔레 기슭까지 겨우 도착했을 것이다. 토스카나 주에서 보기 힘든 피에솔레의 지형은 난공불락의 거대한 성처럼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거기에 언덕 너머에는 성 내부를 연상케 하는 마을과 농경지기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숲만 우거진 게 아니라 언덕 너머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물까지 갖추어 아기자기한 꽃 동네 새 동네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데카메론의 이야기가 100편까지 쓰인 까닭도 이해가 간다. 외부와 적당히 차단된 이곳에 칩거하면서 흑사병이 끝날 때까지 끼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코로나 시대에 집콕을 하며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연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피에솔레 관련 글을 끼적거리고 있자니 슬며시 억울한 생각도 든다. 나 혹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꽃 동네 새 동네는 이탈리아에 건재한 것이다. 해방 이후 70년을 돌아볼 때 대한민국을 괴롭힌 건 일제강점기 때 남았던 잔재(정치검찰과 적폐 언론)가 이어지고 있었고, 6,25 전쟁을 겪으면서 갈기갈기 찢기고 황폐해진 금수강산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금수강산을 그리워하는 노래 <고향의 봄>은 이랬지..
_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La mia città natale è una collina dove sbocciano i fiori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Fiori di pesco Fiori di albicocca Baby Azalea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Un quartiere dove si possono raccogliere fiori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Mi manca il tempo per giocarci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 고향 Villaggio dei fiori e nuovo la mia vecchia città natale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Quando il vento soffia nel sud dei campi azzurri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Una città dove i salici piangenti danzano vicino al fiume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Mi manca il tempo per giocarci
고향의 봄노래는 1927년~1929년경 일제강점기 때에 만들어졌다. 그때 만들어진 노래를 지금 다시 들어봐도 아련하고 어딘지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은 우리 선조님들이 물려주신 정서 때문이 아닐까.. 빼앗긴 땅을 그리워하며 구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꿈을 꾼 선조님들.. 해방이 되었지만 다시 산천초목과 선량한 사람들이 다 쓰러진 전쟁을 겪고.. 폐허 속에 쌓아 올린 '한강의 기적' 속에는 꽃동네 새동네가 사라졌다.
하니와 내가 걷고 있는 피에솔레 안 동네의 모습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꿈같은 풍경이 피에솔레의 봄에 묻어나는 것이다. 꽃이 피고 새가 우지지는 오래된 마을..
부러움은 없다만 자꾸만 고향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금 고향땅 부산으로 돌아간들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풍경들이 남아있을까.. 어림 반푼 어치도 없다. 서울에 살면서 명절에 고향 땅을 밟으면 나의 살던 고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졸졸졸 흐르던 개울의 물속을 들여다봤던 그곳은 하수구로 덮이고 말았다. 그저 가슴에만 간직해야 하는 고향땅.. 고향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피에솔레.. 우리가 먼 나라 낯선 땅 구석구석을 싸돌아 다니는 것도 잃어버린 꽃동네 새동네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갈증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생수를 찾는 것처럼.. 마시고 퍼 마시고 또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그리움이 데카메론의 배경 피에솔레에 묻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마을 끝까지 가 보고 싶었다. <계속>
La primavera fiorentina del Rinascimento_FIESOLE
il 14 Marz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