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11. 2021

여왕님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

#7 남반구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오르노피렌의봄

우리가 늘 그리워하는 게 있지. 여왕님 품에 안겨 발라당 재롱을 떠는 거야..!!


연재 포스트(꿈꾸는 낭만 덕구) 중에서



우리는 어느 날부터 인간들에게 길들여진 후 충성심과 귀소성(歸巢性)으로 똘똘 뭉쳤지. 그러니까 그 어떤 실험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고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우린 돌아갈 땅도 없고 사람들로부터 길들여졌으므로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야. 인간들 최고의 가치가 행복이라면 우리도 다르지 않아. 주인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주인의 품에 안겨 재롱을 떨고 싶어. 



나는 달님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휘영청한 밤에 하늘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곤 하지. 다음 생에 다시 축생으로 태어날 망정 제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기를 희망하고 있는 거야. 아무튼 우리네 삶을 만만하게 함부로 대하는 인생들은 우리보다 별로 나을 게 없어. 
우리는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그 며칠간은 매일 하루 종일 슬퍼하고 통곡을 했지. 그래도 인간들은 참을성이 많은 거 같아. 자기 가족들이 코로나 때문에 죽어 자빠져도 대책이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대책 마련을 위해 그 원인을 우리에게 돌리고 있는 거야. 미생물의 출처가 박쥐라던가. 축생들로부터 찾으려 하지. 



희한하지.. 아무런 고통도 없고 희열만 넘치는 이곳에서 나는 다시 그 바닷가를 그리워하는 거야. 다시 축생으로 태어나면 어때. 나는 그 바닷가에서 다시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던 사랑을 되찾고 싶은 거야. 그게 나의 운명이었으면.. 하늘나라 보다 그 바닷가가 더 좋아. 하늘나라에 없는 아름다운 풀꽃과 맑고 향긋한 바닷바람과 은빛 가루 퍼부으시던 달님이 있는 나라.. 오늘따라 그곳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아저씨 글쵸..?  히히 ^^



서기 2021년 4월 10일 오후(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봄이 무르익을 대로 익어 홍시감처럼 터질 듯하다. 볕은 초여름을 닮아 잘 데운 불판 같고 도시의 대리석에 반사된 햇볕 때문에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할 듯싶다. 마스크에 선글라스를 착용한지 꽤 됐지만, 이제 제 값을 하게 된 것이랄까.. 



여왕님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


이렇듯 아름다운 봄날에 멀리 가지 못하고 집콬으로 노트북 앞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다. 그리고 연재 글 꿈꾸는 낭만 덕구 편을 열어놓고 낭만 덕구의 독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에서 지낼 때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다시 힘주어 말하지만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더라면, 그 가치는 묻히거나 사라졌을 것이다. 


오르노삐렌 삼각주에 썰물이 찾아들면 굴과 홍합과 따개비와 게 등 해산물이 즐비하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낮과 밤처럼 우리들의 명운도 서로 다른 것인지.. 코로나 시대의 어느 날부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무지개와 파랑새 쫓던 바쁜 시간을 잠시 붙들어 둔 것이다. 그래서 덮어두었던 사진첩을 열어 북부 파타고니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꿈꾸는 낭만 덕구의 독백과 함께 어느 날 우리 가슴에 안긴 오르노삐렌의 비경은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신의 그림자였다.



꿈꾸는 낭만 덕구의 독백  II


 나는 낭만 덕구라 해. 선박 한 척이 뭍으로 올라온 듯한 바닷가.. 그 뒤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은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의 한쪽 모퉁이에 해당하는 곳이야. 나와 우리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는 강이 세 군데나 있어. 제일 큰 강은 리오 블랑꼬(Rio blanco)라 부르고, 그다음 리오 네그로(Rio negro)라 부르며 마지막으로 리오 꾸낄데오(Rio cuchildeo) 강이 있어. 뭍에서 옆으로 드러누운 듯한 어선 뒤로 리오 꾸낄데오 강이 흐르고 있고 그 너머 마을에는 중남부 파타고니아로 이어지는 선착장과 가까운 곳이야 마을의 한쪽 모퉁이인 셈야. 이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어.



나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이곳 바닷가에는 굵은 자갈과 돌들이 널부러져 있어. 마을 뒤편에 솟아있는 화산(Volcán Hornopirén)에서 쏟아져 나왔거나, 어느 날 환태평양 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_Cintura di fuoco)가 꿈틀거리며 만들어낸 독특한 구조의 바닷가야. 



이곳 오르노삐렌 삼각주에도 매우 옅은 층의 개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져 있어. 썰물 때는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지. 바닷속 해조류와 홍합이나 작은 게들이 지천에 널리기 시작하는 거야. 우리 같은 길거리 개 혹은 떠돌이 개들의 신분으로 해산물을 채집할 수는 없어. 아니 별로 맛짜가리가 없어서 선호하질 않아. 그 대신 썰물 때가 되면 거대한 놀이터가 생기는 거야. (먼 말인지 알쥐? ^^) 


그리고 바닷가는 이때부터 놀라운 장관을 드러내 놓는 거야. 샛노란 풀꽃들이 바닷가를 빙 둘러 피어있는 게.. 꼭 둥지 속에 든 새들이 노란 입을 벌리고 삐약거리는 것 같은 앙증맞은 풍경을 연출하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아 쫌..! 지금 막 말하려는데 아저씨가 말을 걸었잖아요. ㅜ


다시.. 새들이 노란 입을 벌리고 삐약거리는 것 같은 앙증맞은 풍경을 연출할 때 멀리 한국에서 여행 온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만난 거야. 그동안 아무도 우리를 아는 척하거나 돌봐주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우리는 이 마을 아이들과 두 분과 함께 신나게(신나개..?) 뛰어놀게 되었어. 아 참, 가만히 쫌..요.ㅜ



아저씨는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 같았어. 함께 놀던 소녀들이 딸내미 보다 더 어려 보였는데 그 아이들과 친하게 잘 지내는 거 있지. 그 놀이에 나와 우리 친구들을 끼어넣고 놀았던 거야. 그때 잠시 잊고 살던.. 나의 여왕이자 우리의 여왕이 생각나는 거야.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기 전까지 우리는 궁궐의 무수리나 희빈 정도의 계급이 아니었어. 여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애완견이었지. 반려견 정도의 신분은 한참 뛰어넘은 귀족이었어. 돌이켜 보니 나는 여왕님이 나타나면 발라당 배꼽을 보여주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재롱을 떨었지. 그러면 여왕님은 내 배꼽을 손가락으로 적당히 비비면서 간지럼을 태우는 거야. 그리고 덥썩 안고 식탁 앞으로 이동했지. 



여왕님의 탄력 있는 가슴이 온통 나를 파묻어 버렸어. 그리고 식탁 앞에서 내게 고깃덩어리를 내밀며 먹으라는 거야.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어. 그리고 밥을 다 먹고 난 여왕님은 널따란 정원을 산책하며 내게 응가를 허락했지. 그리고 어느 날 이웃으로 마실을 떠날 때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쓰담쓰담해 주었어. 꿈같은 축생이 이어지고 있었던 거야. 



그때는 목줄이나 가슴 줄도 매지 않았지. 여왕님은 내가 당신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늘 그렇게 동행을 하는 습관이 몸속 깊이 배였던 어느 날.. 내게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찾아든 거야. 나를 그토록 사랑한 당신이 어디론가 이사를 떠날 때, 실수였던지 일부러 그랬던지 나 홀로 이곳에 남게 되었던 거야. 큰 도시에 살면 보다 더 아담하고 귀여운 애완견이 필요했을까.. 



나는 이때부터 바닷가를 배회하며 슬퍼했지. 그때 만난 친구들도 나 하고 비슷한 경험을 하고 바닷가를 서성거렸어. 참 불쌍한 친구들이야. 그때부터 이상한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어. 여왕님이라 생각하고 따르던 비슷한 아주머니가 나타나면 즉시 달려가서 확인을 하는 거야. 사람들은 그때마다 "저리 가!"라며 발길질을 했어. 아.. 그땐 너무 슬펏어. 그래서 해질 녁 바닷가로 나가 외롭고 고독한 마음을 달래곤 했지.



그게 한 두 번이 아니야. 사람들은 나를 먹을 것을 구걸하러 온 '떠돌이 개' 정도로 생각했나 봐. 그들은 나의 속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그런 어느 날 나와 친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아주머니가 나타난 거야. 분홍빛 레인코트를 입은 그 아주머니는 나를 끔찍이 사랑한 여왕님을 떠올리게 만든 거야. 살며시 아주머니 곁으로 다가가자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예뻐해 주셨지. 가슴이 뭉클했어.(개도 가슴이 뭉클하냐..?) 



아 쫌.. 아저씨이~ㅜ 그렇게 써야 되잖아요.ㅜ 다시.. 살며시 아주머니 곁으로 다가가자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예뻐해 주셨지. 가슴이 뭉클했어. 나는 그때부터 내가 평생 앓고 있던 트라우마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거야. 사람들도 그렇지만 우리도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걸 그제사 깨닫게 되는 거야. 지독한 외로움이나 고독함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그걸 깨닫게 되면 사랑을 알게 되는 법이지. 

이곳 바닷가에서 썰물 때 드러난 삼각주와 안데스는 최고의 풍경으로 가슴을 적셨다. 그립다.


요즘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코로나 때문에 견우와 직녀로 번신했어. 지난해 10월 23일부터 지금까지 서로 떨어져 지내는 거야.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코로나 시대라 불러. 아주머니가 살고 있는 한국의 코로나 사정은 이탈리아에 전혀 비할바도 못돼. 아직 오늘의 통계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제의 통계치를 보면 놀라운 일이야. 내가 하늘나라에서 독백을 하고 있을 때 아저씨는 "구급차가 하루 종일 삐요삐요하고 다녀"하고 말했어. 그리고 우리가 바닷가에서 만난 시간을 추억하고 있는 거야. 나는 지금도 우리와 동행해 준 여왕님이 보고 싶어. 사랑을 받고 싶단 말야. <계속>



4월 10일 자, COVID-19 이탈리아 신규 확진자 수(17,567명)와 사망자 수(344명)


Covid, le notizie di oggi. Bollettino: 17.567 contagi su 320.892 tamponi, 344 morti.


La Primavera dell Hornopiren nella Patagonia settentrionale del CILE
il 10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꿈꾸는 낭만 덕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