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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10. 2021

꿈꾸는 낭만 덕구

#5 남반구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피렌의 봄

북부 파타고니아의 꿈꾸는 낭만 덕구의 독백에 묻어난 반려견의 세상..?!!


연재 포스트(해돋이 해넘이 생략된 색다른 마을) 중에서



아이들이 개펄을 향해 돌을 던질 때마다 잘생긴 떠돌이 개 한 마리는 돌을 주우러 개펄로 뛰어들었다. 아이들이 돌을 던지는 횟수가 많아지자 잘생긴 떠돌이 개 한 마리의 몸둥아리는 개펄이 자자했다. 그런 녀석이 기특해 보이기보다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녀석은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기 전에 했던 기억을 되살려 아이들이 던진 돌을 물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마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흔들었지만 다른 보상은 없었다.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잘생긴 떠돌이 개 한 마리는 행복해 보였다. 살아가는 게 꼭 보상을 위한 것만도 아니었지.. 



연재 포스트(여행지에서 만난 봄의 요정(妖精)들) 중에서



이날 낭만 덕구 한 마리가 우리를 따라나섰다. 그는 버려진 '길거리 개'의 신분으로 우리 곁은 졸졸 따라다녔는데 이들의 습성이었다. 여행자들이 던져주는 빵조각이나 고깃덩어리로 연명하고 있는 가련한 축생인 것이다. 이 마을에는 이런 덕구들이 무리 지어 살아가고 있었다. 
인생과 축생.. 불가의 법문에 따르면 축생은 전생에 지은 나쁜 업보 때문이라고 한다. 전생에 그는 무슨 죄업을 지었길래 선착장 곁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낭만 덕구의 표정에서 슬픔이 묻어난다. 그의 뒤로 중남부 파타고니아로 떠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곧 페리가 도착하면 이들 모두는 어디론가 떠날 것이며 장차 우리도 이 뱃길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서기 2021년 4월 8일 오후(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바를레타의 날씨는 눈부신 봄날이다. 현관을 나서면 대리석으로 만든 도시의 집들이 오후 햇살에 비쳐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다. 이날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운동을 다녀온 이야기부터 시작된 장황한 보고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에 산벚나무에 관한 소식도 포함됐다. 산길을 걷다가 마는 산벚이 너무 아름답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곁에 누가 있었으면 했는데 그 사람은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전화에 안타까움이 벚꽃향기처럼 묻어나는 것이다. 그녀가 "지금 머해?"하고 물으면, 나는 "브런치에 글 쓸 준비를 하고 있어욤"하고 대답한다. 



그녀는 한국에서 나는 이곳에서 코로나로 빚어진 견우와 직녀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포스트는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파타고니아 여행기를 이어 나가기로 한다. 오늘은 특별히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 마을의 길거리 개를 소환하여 그녀를 주인공으로 꾸며봤다. 그녀는 이 마을의 대빵이었으며 최소한 열댓 마리의 수컷들을 거느리고 있는 오르노삐렌 야생의 진정한 여왕이었다. 나는 그녀를 낭만 덕구라 불렀다. 낭만 덕구를 소개하며 연재 글을 이어간다.



꿈꾸는 낭만 덕구의 독백


  나는 낭만 덕구라 해. 샛노란 풀꽃들이 자지러지는 오르노삐렌의 바닷가에서 살았지. 정말 행복했었다. 어느 날, 태평양 건너 멀리 대한민국에서 이곳으로 여행을 왔던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기억해. 두 사람은 이곳 아이들과 재밌게 놀면서 나와 친해졌어. 아저씨는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바닷가를 서성거렸지. 아주머니는 빨간 레인코트가 너무 잘 어울렸어. 



아저씨는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든 모양이야.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그는 나를 포함한 이곳의 친구들에게 관심이 많았어. 우리네 삶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던 거야. 나는 주인공으로 출연을 했지. 사람들이 길거리 개로 말하는 축생(畜生)에 이런 행운이 오기도 쉽지 않은 거였어. 이 마을 사람들도 별로 관심이 없는데 그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주었던 거야.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어. 어느 날 그토록 날 아끼던 주인이 나를 길거리로 내몬 거야. 집으로 찾아가면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 이때부터 나의 삶은 초라해지기 시작한 거였어. 우리 친구들이 그런 이력을 가지고 있어. 참 잘 생긴 녀석들도 많은데 어느 날 버림을 당한 거야. 이런 황당한 일은 인간계에서 흔했던지.. 



이 나라 곳곳에는 우리의 처지를 닮은 아이들이 땅에 굴을 파고 살아가고 있었어. 우리가 인간을 만나 가축화되기 전의 원시적 모습으로 돌아간 친구도 있었던 거야. 그런데 다행인지 우리는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살아가며 가끔씩 쓰레기 통을 뒤지기도 하고.. 여행자들이 던져주는 빵부스러기를 먹고 살아가고 있었어. 어떤 날은 운 좋게도 고깃덩어리를 얻어먹을 때도 있었지. 그날은 참 행복한 날이었어. 



인간계의 종교에서는 그들만의 종교를 위해 우리를 아주 나쁘게 폄훼하고 있었어. 사람들이 '개새끼 같은 녀석'이라는 표현은 인간 이하의 축생이라는 매우 심한 욕설이었어. 개새끼라 부르는 건 좀 나은 표현이지. 어떤 사람들은 "개 같은 XX" 하고 입에 달고 살아. 우리 친구들이 여럿이 모여있으면 "완전 개판이네"라며 막무가내인 사람들을 나무라기도 했지. 그리고 지들이 잘 못해 놓고 "이런 개같은 경우 봤나"라며 인상을 찌푸리고 해. 인간들은 아무때나 개 자(字)를 붙이는 거 있지..



그러면서 이승에서 복을 짓지 않거나 선업이나 공덕을 쌓지 않으면 다음 생에 축생으로 태어난다는 거야. 저주받은 운명이라는 거지. 또 어떤 이탈리아 사람 단테는 지옥과 연옥, 천국으로 마음대로 지어놓고 착하게 살아야 천국으로 간다는 거야. 한국에서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동시에 흔드는 사람들도 있어. 그들은 대놓고 나쁜 질을 일삼는 탐관오리들과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기도 했지. 



그들의 입으로 말한 '개 같은 짓'을 서슴지 않고 만든 게 인류문화사인가 개뿔인가.. 그렇군 무슨 나쁜 일민 생기면 갖다 붙이는 게 개뿔.. 그런데 어느 날 나를 모델로 사진을 찍어준 그 아저씨는 조금 달랐어. 함께 기뻐하고 잘 놀아준 거야. 그래서 해질 녘 숙로로 돌아가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바라보았지. 



그리고 달님이 안데스 위로 두둥실 떠 오르면 나를 돌아보며 슬픔에 젖는 거야. 그때 샛노란 풀꽃들은 밤이슬에 촉촉이 젖었어. 나는 수 만년 전 우리 선조님들을 생각하고 있었어. 그분들은 유라시아에 살았는데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개'라고 부르지 않았어. 늑대라 불렀지. 그 늑대가 인간과 함께 길들여지기 시작하면서 파란만장한 축생이 시작된 것이야.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준 사람은 옛 소련의 드미트리 콘스탄티노비치 벨라예프(Dmitrij Konstantinovič Beljaev)였어. 그는 길들여진 은여우(Volpe argentata)를 육종해 가축화된 과정을 재현한 과학자야. 여우와 늑대는 서로 다르지만, 개처럼 꼬리가 말려 올라가고 귀가 누워 있으며 사람을 반기는 ‘개 여우’를 불과 20세대 동안의 육종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의 변천사를 넌지시 알게 된 거지. 물론 단서만 제공했을 뿐이야. 그 시작이 1959년이었으니까 대략 60년 전의 일이야. 짧은 시간에 수 만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우리들의 역사를 잘 알 수는 없는 거였어. 그러나 아저씨가 전해준 길거리 개들의 습성을 참조하면, 우리 선조는 늑대가 틀림없어. 유라시아의 초원에 살던 선조들은 평원에 땅굴을 파고 비를 피하고 추위를 피했지. 



그땐 뭘 먹고살았는지.. 묻지 말아 다오, 참 가슴 아픈 일이 생겼던 거야. 우리는 먹이사슬에 따라 하위 개체를 사냥하고 새끼들을 번식시켰지. 달밤이면 달님을 향해 묘한 울음소리로 우우우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단다. 조물주가 지은 대자연에 무한 감사한 표현이자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 사람들이 양이나 소와 말 같은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네 삶의 터전이 사라지게 된 거야. 그때부터 우린 쫓겨다니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총이란 무기로 우릴 사냥하기 시작한 거야.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지. 먹이를 빼앗긴 우리가 그들이 먹이던 가축을 사냥한 게 죄목이었어. 오히려 그들이 망쳐놓은 먹이사슬의 피해자가 되기 시작한 거야. 



인간들은 농사 대신 가축을 먹이면서 우리의 터전을 빼앗은 거야. 우린 빼앗긴 거고.. 이런 걸 보면 오래전 우리 선조들이 인간에게 길들여진 이유를 알 것 같아. 어느 날 강아지로 생포된 선조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서서히 가축화되고 길들여진 것이랄까. 몽골에서는 늑대는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로 알고 있어. 그렇지만 유전자라는 게 반드시 특정 지역의 경우를 대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우리가 바닷가에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이제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자연은 사라졌어. 일부 살아남은 선조들이나 후손들이 산속에서 살아갈 망정 인간들이 잠식한 자연으로 복귀는 불가능한 거야. 그렇다면 누가 우리의 행복했던 삶을 보상해 줄까.. 



우리의 후각은 대단해서 저만치서 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꼬리를 흔들며 좋아해. 한 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으로 섬기지.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한 배경에는 후각이 큰 작용을 했어. 아저씨가 살고 있었던 한국에서는 팔려나간 진돗개가 7개월 만에 원래 주인을 찾아 300킬로미터를 떠나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어. 인간은 우리를 배신해도 우리는 배신 같은 거 몰라. 


우리는 어느날부터 인간들에게 길들여진 후 충성심과 귀소성(歸巢性)으로 똘똘 뭉쳤지. 그러니까 그 어떤 실험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고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우린 돌아갈 땅도 없고 사람들로부터 길들여졌으므로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야. 인간들 최고의 가치가 행복이라면 우리도 다르지 않아. 주인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주인의 품에 안겨 재롱을 떨고 싶어. 



나는 달님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휘영청한 밤에 하늘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곤 하지. 다음 생에 다시 축생으로 태어날 망정 제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기를 희망하고 있는 거야. 아무튼 우리네 삶을 만만하게 함부로 대하는 인생들은 우리보다 별로 나을 게 없어. 



요즘 인간계는 코로나 시대로 부르고 있어. 잘 생각해 봐야 해. 조물주가 천지만물을 만들었다면 미생물도 함께 만든 거야. 다 쓸모가 있다는 거지. 인간들을 해친다고 함부로 나쁜 녀석이라고 몰아붙일 일이 아니야. 우리의 터전을 빼앗고 총질을 하는 사람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해. 미생물이 살고 있던 공간을 빼앗은 결과 인과응보의 업보를 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야. 


밀물이 들면 바다는 신호를 보낸다. 파래를 몇 점 뜯어 여기까지 바다의 지경이라는 것.


종교가 과학적일 때 알 수 있는 현상이 이럴 때 쓰이는 게 아닐까.. 괜히 축생 가져다 붙이고 전생의 업보 운운하지 마. 요즘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는 아저씨는 코로나가 인생에 미치는 길들이기를 나름 살펴보고 있다고 해. 코로나 때문에 두 분이 견우와 직녀의 삶을 살고 있는 거지. 잘 살아봤자 80년이며 수명을 질질 늘려도 100년 밖에 안 되는 인생에 1년의 세월은 긴 세월이야. 



우리는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그 며칠간은 매일 하루종일 슬퍼하고 통곡을 했지. 그래도 인간들은 참을성이 많은 거 같아. 자기 가족들이 코로나 때문에 죽어 자빠져도 대책이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대책 마련을 위해 그 원인을 우리에게 돌리고 있는 거야. 미생물의 출처가 박쥐라던가. 축생들로부터 찾으려 하지. 



그래서 COVID-19와 동물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거야. 장황하게 끼적거려 놓은 자료를 참조해 보면 별 대책이 보이지 않아. 단지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이 가축과 가까이하지 말라는 게 전부나 다름없었어. 자칫 코로나에 대한 누명까지 뒤집어쓸 뻔했지.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 COVID-19 의심자 또는 확진자는 반려동물, 가축, 야생동물 등 동물과의 접촉을 피해야 합니다.. 



링크된 자료를 잘 살펴보면 지구촌을 엉망으로 만든 개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하늘 나라야. 두 분이 한국으로 돌아간 어느 날.. 나는 샛노란 풀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언덕 아래 수풀 속에서 달님을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지. 그리고 깨어보니 하늘나라였어. 



희한하지.. 아무런 고통도 없고 희열만 넘치는 이곳에서 나는 다시 그 바닷가를 그리워하는 거야. 다시 축생으로 태어나면 어때. 나는 그 바닷가에서 다시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던 사랑을 되 찾고 싶은 거야. 그게 나의 운명이었으면.. 하늘나라 보다 그 바닷가가 더 좋아. 하늘나라에 없는 아름다운 풀꽃과 맑고 향긋한 바닷바람과 은빛 가루 퍼부으시던 달님이 있는 나라.. 오늘따라 그곳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아저씨 글쵸..?  히히 ^^  <계속>


La Primavera dell Hornopiren nella Patagonia settentrionale del CILE
il 09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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