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남반구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피렌의 봄
잘 알려고 하지 않거나 몰라서 그렇지 세상은 온통 생략 투성이..?!!
연재 포스트(여행지에서 만난 봄의 요정(妖精)들) 중에서
이날 바닷가에서 우리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들을 만났다. 가끔씩 보슬비가 내려 하니는 우의를 착용했다. 분홍색 우의였는데 소녀들이 하니의 우의와 내가 든 묵직한 카메라를 눈여겨봤다. 이곳 파타고니아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이나 우의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분홍빛 레인코트는 신기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렌즈와 바디가 큰 카메라를 보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아이들의 요구에 액정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보여주자 좋아 죽었다. 풀프레임의 사진이 마냥 신기한 것이다.
오르노삐렌에 도착한 첫날 만난 아이들은 많은 것을 질문하며 깔깔대며 좋아했다. 사춘기를 막 지나고 있는 여자 아이들은 무엇이든 신기한 법이다. 누가 그랬나.. 그맘땐 낙엽이 굴러가는 모습만 봐도 킥킥대며 좋아 죽는 것이다. 어디서 오셨는지 왜 오셨는지 언제 가실 건지 어디로 여행을 다닐 것인지 등등 나이까지 캐 물으며 나중에는 숙모 삼촌하고 불렀다. 그렇게 바닷가에서 놀다가 헤어졌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조용해 보이는 이 마을에 누가 보낸 것도 아닌데 소녀들이 우리를 반겨준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봄의 요정들은 이렇게 만난 것이다.
(상략).. 숙소 앞에는 어제 만났던 여학생들이 모두 나와있었다.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여학생들은 이틀 전 만날 때처럼 와락 품에 안겨 볼에 입을 맞추며 인사를 하는 아이들.(여행지에서 이런 호강을 누리다니... 감개무량 ^^ ) 아이들 중에는 어제 만난 아이가 빠져있기도 했고 새로 온 친구들도 있었다. 오르노삐렌의 소녀들이 통째(?)로 우리를 만나러 왔던 것이다.
"삼촌, 우리하고 놀러 가요. 네? ^^ "
아이들과 함께 선착장(Carretera Austral Hornopiren)에서 다시 마을 앞 바닷가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는데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네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네를 타기도 하고 썰물 때 속을 훤히 드러낸 바다에 돌을 던지는 놀이를 하기고 했다. 녀석들은 그들이 노는 장면이 나의 카메라에 담기기를 고대하며 신나게 놀이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아이들이 개펄을 향해 돌을 던질 때마다 잘생긴 떠돌이 개 한 마리는 돌을 주우러 개펄로 뛰어들었다. 아이들이 돌을 던지는 횟수가 많아지자 잘생긴 떠돌이 개 한 마리의 몸둥아리는 개펄이 자자했다. 그런 녀석이 기특해 보이기보다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녀석은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기 전에 했던 기억을 되살려 아이들이 던진 돌을 물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마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흔들었지만 다른 보상은 없었다.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잘생긴 떠돌이 개 한 마리는 행복해 보였다. 살아가는 게 꼭 보상을 위한 것만도 아니었지..
그리고 아이들은 놀이터 앞 공원에서 다시 재롱잔치를 벌였다. 하니와 친구를 장의자에 앉혀놓고 그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깜찍하고 발랄한 녀석들.. 우리는 손뼉을 치며 맞장구치고 좋아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희한한 일이었다. 일면식도 없었던 아이들과 우리가 하룻만에 친해지고 함께 신나게 놀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얼마 후 녀석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우리도 아침부터 아이들과 함께 했으므로 적당히 피곤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요기를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됐다. 목재로 지은 숙소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가득 풍겼다. 숙소 주인 내외는 두꺼운 무쇠로 만든 장작난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장작을 사용하는 이 난로에 커다란 오븐과 난로 위에는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었다.
난로 앞에는 벽에 기댄 작은 평상이 길게 누워 있었다. 평상 위에는 언제 세탁했는지 모를 두터운 이불이 깔려있었는데 주인 내외는 그곳에 걸터앉거나 누워있기도 했다. 주방은 난로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하니는 그 평상을 너무 좋아했다. 난로의 열기가 목재로 만든 젖은 집에서 풍겨져 나오는 습기와 마침맞게 어우러지는 것이다.
어떤 때는 하니가 그 평상 위에 벌렁 드러눕기도 했다. 그때마다 무뚝뚝한 주인아주머니는 자리를 비켜주곤 했다. 주방에서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출입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장작을 패는 공간이었다. 앙증맞은 빨간 꽃을 내놓은 사과나무 곁으로 장작이 가득 쌓여있었다. 북부 파타고니아의 우기를 지켜줄 연료는 주로 땔감이었던 것이다.
이날 주인아주머니는 오븐에 큼지막한 쇠고기 덩어리를 요리하고 있었다. 주방은 따뜻했으며 오븐에서 풍기는 고기 냄새 때문에 식욕을 마구 당겼다. 그래서 아주머니 곁에서 침을 삼키고 있는 내게(흐흐..^^) 하늘의 은총이 다았다. 커다란 쟁반 위에 노릇노릇 마침맞게 잘 익은 고기는 식탁으로 옮겨졌다.
그런 직후, 아주머니는 통 크게도 고깃덩어리 1/3 정도를 싹둑 절라 다른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난로 곁에서 서성이던 우리에게 "이거.. 맛있게 드시구려"하며 건네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 열심히 재롱을 떨고 간 이후 하루 숙박비 1만 원짜리 집에서 푸짐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고깃 덩어리.. 식탁에서 게눈 감추듯 맛있게 먹어치운 우리는 다시 바닷가로 나섰다. 그곳에는 해넘이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샛노란 풀꽃들이 지천에 널린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는 색(色) 다른 광경이었다. 북부 파타고니아의 오르노삐렌의 지형은 동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남쪽의 피오르드 바다만 열려있을 뿐, 동쪽과 서쪽 그리고 북쪽은 각각 안데스 산맥 줄기와 오르노삐렌 화산(Volcán Hornopirén)으로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특히 해돋이가 시작되는 안데스 산은 덩치가 워낙 커서 해돋이가 시작된 한참 뒤에나 마을을 비추는 것이다.
그런 사정은 서쪽도 마찬가지여서 해가 동태평양 너머로 사라지는 광경을 이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쉬울 것도 없었다. 세상에는 생략되면 될수록 더 나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해 질 녘 바닷가로 나서면 그곳에는 딴 데서 볼 수 없는 신비로운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바닷가에는 저녁 햇살에 초롱한 눈망울을 연 풀꽃들의 세상이었다. 난생처음 만나는 풍경들이 조석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잘 알려고 하지 않거나 몰라서 그렇지 세상은 온통 생략 투성이었지.. 한 때 목숨을 걸고 세계일주에 나섰던 사람들이 다시 환생해 현대를 둘러보면 그들이 한 짓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어서 한숨만 쉴 게 틀림없다. 마젤란(Ferdinando Magellano)이나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나 콜럼버스(Cristoforo Colombo) 등이 그 주인공이다.
그중 마젤란은 세계 최초로 세계일주에 나선 사람으로, 1519년 9월 20일 5척의 배에 선원 270명을 태우고 지도에도 없고 알려진 지식도 없는 바닷길을 향해 떠났다. 그는 필리핀에서 원주민들에 죽임을 당할 때까지 남미대륙을 돌아 망망대해 태평양을 건넌 것이다. 당시 복병은 생각보다 큰 남미대륙이었고, 그나마 그의 항해술은 빛나 오늘날 마젤란 해협(Stretto di Magellano)으로 불리는 길을 찾아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은 그에게 세계일주를 허락했을지 모르지만, 보석과 향신료를 찾아 나선 그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긴 것 같다. 그가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원주민들과 벌인 전투에서 그와 그의 부하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1521년 9월 5일, 1080일 동안 247명의 목숨을 희생한 끝에 가까스로 세계 일주를 마친 생존자 18명이, 스페인 세빌리아 대성당(Cattedrale di Siviglia)에서 죽은 동료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고 전한다.
그런데.. 대략 500년이 지난 현대에서는 그 험난한 길을 통째로 생략하여 단 하룻만에 공간이동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비행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석과 향신료를 찾아 나섰던 마젤란 일행과 하룻만에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현대인을 바라보는 신의 선택은 너무 불공평했을까..
해넘이가 시작되면 난로에 불을 피워 목재집을 데우고, 저녁 짓는 파르스럼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해넘이는 볼 수 없지만 대신 해넘이에 가렸던 꿈같은 풍경이 가슴에 안긴다.
세상은 참 이율배반적이자 신묘막측하다. 마젤란 당시에는 죽도록 고생하며 모두 다 잃은 것 같았지만, 따지고 보니 여러 절차가 생략된 현대는 더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요즘 나의 브런치에 자주 등장하는 '코로나 길들이기'인 것이며, 신께서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가늠해 보고 있는 것이다. 생략의 미학..
해넘이가 산에 가려 보이진 않는다. 멀리 중남부 파타고니아로 이어지는 선착장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서기 2021년 4월 8일(현지시각) 저녁나절 노트북을 켜고 사진첩을 열어보니, 생략된 공간이동 덕분에 우리는 인류문화사에 커다랗고 불명예스러운 족적을 다시 남기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코로나 시대인 것이며, 우리는 대략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수백만 명의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지구촌이 동시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는 생략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랄까..
어떤 나라에서는 하루에 3 천명씩이나 코로나로 인해 목숨을 잃고 시신을 묻을 장소도 없어서 오래된 공동묘지를 파내고 그곳에 다시 묻는 일까지 생겼다고 한다. 실로 끔찍한 일이 생략된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의 오늘자 코로나 성적표를 열어보니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 전 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신규 확진자 수(17,221명)와 사망자 수(487명)는 여전히 우려할만한 통계치인 것이다.(Coronavirus in Italia, il bollettino di oggi 8 aprile: 17.221 nuovi casi e 487 morti)
세상 사는 동안 잠시 해돋이와 해넘이가 생략된 공간에 있다는 것은 오히려 축복받은 일이자 그 일을 집콕으로 누리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통틀어 집콕을 하며 책상머리에 이렇게 오래도록 죽치고 있었던 적이 또 있을까. 하니와 나는 해넘이가 생략된 오르노삐렌 바닷가에서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해넘이가 동쪽의 안데스에 황금빛으로 묻어나는 가운데 안데스는 새하얀 솜털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북부 파타고니아가 연출한 선경이 여행자 앞에 나타난 것이다.
La Primavera dell Hornopiren nella Patagonia settentrionale del CILE
il 08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