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남반구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피렌의 봄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세상의 신묘막측한 현상들 속에서 만나는 하늘의 천사..?!!
우리는 이곳에서 장차 만나게 될 여행지를 꿈꾸고 있었다. 하니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수평선 너머에 위치한 오르노삐렌이라는 마을이었으며, 그곳은 이 도시와 함께 북부 파타고니아로 불리고 있었다. 그곳이 장차 우라가 만나게 될 여행지인 것이다. 이 섬에 도착한 이후 이곳의 텃새 황조롱이가 이방인의 출입을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녀석은 우리가 발길을 옮기는 대로 따라다녔다.(우리.. 나쁜 사람 아니거덩.. 히히 ^^)
관련 포스트(내가 찍고 내가 감동하는 봄바다) 중에서
누군가 소설을 쓴다면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장면이 영화처럼 맨 먼저 등장해 장차 우리 앞에 다가올 미래의 장면을 환상적으로 포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때 나의 뷰파인더를 적신 풍경들을 코로나 시대에 집콕을 하며 브런치에 옮기고 있자니, 내가 찍은 사진에 내가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자화자찬..!
봄이 저만치 가시지 전에 속도를 내어 우리가 만났던 풍경들 일부를 공유하기로 한다. 참고로 연둣빛의 정체는 우리나라에서 겨울에 즐기는 매생이와 꼭 닮은 해조류였다. 밀물이 들면 꼭꼭 숨겨져 있다가 썰물 때 전라의 모습을 드러내 놓고 여행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바다에도 봄이 오시고 있었던 것이다. 하니와 나는 어느 날 아침 숙소를 출발하여 장차 우리가 건너게 될 선착장(Carretera Austral Hornopiren)까지 걸어가 봤다. 이때 촬영된 사진이 자화자찬의 풍경이다. 씩~^^
이날 바닷가에서 우리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들을 만났다. 가끔씩 보슬비가 내려 하니는 우의를 착용했다. 분홍색 우의였는데 소녀들이 하니의 우의와 내가 든 묵직한 카메라를 눈여겨봤다. 이곳 파타고니아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이나 우의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분홍빛 레인코트는 신기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렌즈와 바디가 큰 카메라를 보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아이들의 요구에 액정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보여주자 좋아 죽었다. 풀프레임의 사진이 마냥 신기한 것이다.
오르노삐렌에 도착한 첫날 만난 아이들은 많은 것을 질문하며 깔깔대며 좋아했다. 사춘기를 막 지나고 있는 여자 아이들은 무엇이든 신기한 법이다. 누가 그랬나.. 그맘땐 낙엽이 굴러가는 모습만 봐도 킥킥대며 좋아 죽는 것이다. 어디서 오셨는지 왜 오셨는지 언제 가실 건지 어디로 여행을 다닐 것인지 등등 나이까지 케 물으며 나중에는 숙모 삼촌하고 불렀다. 그렇게 바닷가에서 놀다가 헤어졌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조용해 보이는 이 마을에 누가 보낸 것도 아닌데 소녀들이 우리를 반겨준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봄의 요정들은 이렇게 만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숙소의 주인아주머니가 방문을 노크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봤더니 아주머니는 대뜸 "누가 찾아왔어요"라고 말했다. 지구 반대편 머나먼 땅에서 우리에게 볼 일이 있는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누구신데요?"라고 물었더니 무뚝뚝하고 살집 좋은 아주머니는 퉁명스럽게 "나도 모르죠"라며 나가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삐거덕 거리는 2층 숙소에서 1층 숙소 앞으로 내려갔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틀 전 바닷가에서 만났던 소녀들이 숙소 앞에 와글와글.. 녀석들은 나를 보자마자 "ㅋ 안녕하세요. 삼촌 ^^"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 중 한 아이가 숙소를 묻길래 가르쳐 주었더니 친구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숙소 앞에는 어제 만났던 여학생들이 모두 나와있었다.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여학생들은 이틀 전 만날 때처럼 와락 품에 안겨 볼에 입을 맞추며 인사를 하는 아이들.(여행지에서 이런 호강을 누리다니... 감개무량 ^^ ) 아이들 중에는 어제 만난 아이가 빠져있기도 했고 새로 온 친구들도 있었다. 오르노삐렌의 소녀들이 통째(?)로 우리를 만나러 왔던 것이다.
"삼촌, 우리하고 놀러 가요. 네? ^^ "
기분 좋은 제안이기도 했지만 참 뜬금없는 일이기도 했다. 세상 살다 살다 별 일 다 만나는 것이다. 인연은 대체로 인과응보의 결과라고 말하는데 이 아이들과 내가 무슨 연(緣)이 닿았던 것일까.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으며 선업과 공덕을 쌓았단 말인가.. 아무튼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해놓고 하니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그녀는 너무 좋아했다. 여행지에서 이런 일도 있난 싶은 것이다. 그런 잠시 후 하니가 숙소 앞으로 나타나자 이번에는 아이들이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ㅋ 숙모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반가워요 ^^"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틀 전에 다녀왔던 선착장(Carretera Austral Hornopiren)까지 천천히 다시 걸어가게 된 것이다. 하니는 마치 아이들과 함께 봄소풍을 떠난 여학교 선생님 같은 모습이 물씬 풍겼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나이가 14살에 불과했다.
그중 한 아이는 고등학생이었으며 언니라고 부르며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는 사이였다. 마을 중심에서 멀지 않은 선착장은 중남부 파타고니아로 이어지는 까르레떼르라 오스뜨랄(La Carretera Austral (ufficialmente ruta CH-7))의 연결 통로였다. 마을 중심과 달리 이곳에 오면 여행자들과 붐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랄까..
아이들은 깔깔대며 마냥 좋아했다. 그냥 이곳까지 동행했을 뿐인데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며 갖은 재롱을 다 떠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터넷에서 봤다며 어른들에게 엎드려 인사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철제 구조물 위에서 엎드려 하니에게 큰절을 올리는 것이다. 하니는 좋아 죽는다. 넙쭉 엎드려 절을 하는 아이들 등 위로 기다랗게 잘 기른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살고 있던 아이들 전부가 머리를 길렀다. 우리나라 여학생들과 비교되는 모습들..
이날 낭만 덕구 한 마리가 우리를 따라나섰다. 그는 버려진 '길거리 개'의 신분으로 우리 곁은 졸졸 따라다녔는데 이들의 습성이었다. 여행자들이 던져주는 빵조각이나 고깃덩어리로 연명하고 있는 가련한 축생인 것이다. 이 마을에는 이런 덕구들이 무리 지어 살아가고 있었다.
인생과 축생.. 불가의 법문에 따르면 축생은 전생에 지은 나쁜 업보 때문이라고 한다. 전생에 그는 무슨 죄업을 지었길래 선착장 곁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낭만 덕구의 표정에서 슬픔이 묻어난다. 그의 뒤로 중남부 파타고니아로 떠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곧 페리가 도착하면 이들 모두는 어디론가 떠날 것이며 장차 우리도 이 뱃길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 우리는 선착장을 한 바퀴 돌아 마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삼촌, 삼촌!" 하며 불러가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애원한다.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딸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이라면 꼭 깨물어 주고 싶을 것이다.
서기 2021년 4월 8일, 자정이 넘은 한밤중(현지시각)에 사진첩을 열어 당시의 모습을 회상하고 있다. 포스트에 등장한 사진들은 해묵은 것으로 아이들은 어느덧 장성하여 결혼을 했거나, 어떤 아이들을 출산을 했을 것이다. 사진첩이 이렇게 해묵은 이유는 자료를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여행사진도 때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봄날에 단풍사진을 곁들이며 감흥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법이다.
그런 햇수가 차일피일 10년의 세월을 계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다 코로나 시대 때문이라고 했다. 코로나가 되찾아준 시간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현재 상황은 진공상태로 변하여 정적이 흐르고 있다. 귀에 들리는 소리라곤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는 소리뿐이다. 이런 날 오랜만에 열어본 사진첩 속의 아이들이 천사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파타고니아에 지천에 널린 신의 그림자와 요정들이 우리 내외를 위문공연(?) 차 나타난 것이랄까..
오늘자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는 기대와 달리 다시 원상회복으로 돌입했다. 단 하룻만에 기대치가 무너진 것이다. 신규 확진자 수(13.708)와 사망자 수(627명)가 눈에 띄게 도드라지는 것이다.(Coronavirus in Italia, il bollettino di oggi 7 aprile: 13.708 nuovi casi e 627 morti)
만약 누군가 이런 결과를 떠안게 된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떠안게 될 것이다. 전혀 기대치 않는 일이 일상이 된 것이다. 그 암울한 시간에 열어본 사진첩 속에서 요정들의 환한 웃음과 표정들이 추억을 소환하며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다면 덮어두었을 사진첩 속에서 천사들의 맑고 향기로운 미소가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하늘의 일은 참으로 신묘막측하다. 그때 우리가 만났던 아이들이 천사들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게 지금이라니.. 너희들이랑 눈 맞추며 함께 웃던 날들이 점점 더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아이들아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지..? <계속>
La Primavera dell Hornopiren nella Patagonia settentrionale del CILE
il 08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