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긴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의 사진첩
코로나를 잠재우는 브런치의 따끔한 맛을 보여주마..!!
지난 여정(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길) 중에서
나는 짬짬이 나의 브런치를 통해 아름다움은 신의 그림자라고 말했다. 남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예술가의 십계명_Decálogo del artista>의 첫째 계명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더 계명을 돌아본다.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명언이자 행동을 실천하게 만드는 가르침이다.
첫째, 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둘째, 무신론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
셋째, 아름다움을 감각의 미끼로 주지 말고 정신의 자연식으로 주어라.
넷째, 방종이나 허영을 위한 구실로 삼지 말고 신성한 연습으로 삼아라.
다섯째, 잔치에서 너의 작품을 찾지도 말 것이며 가져가지도 말라. 아름다움은 동정성이며 잔치에 있는 작품은 동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너의 가슴속에서 너의 노래로 끌어올려라. 그러면 너의 가슴이 너를 정화할 것이다.
일곱째, 너의 아름다움은 자비라고 불릴 것이며 인간의 가슴을 기쁘게 해 줄 것이다.
여덟째, 한 어린아이가 잉태되듯이 네 가슴속 피로 작품을 남겨라.
아홉째, 아름다움은 너에게 졸림을 주는 아편이 아니고 너를 활동하게 하는 명포도주다.
열째, 모든 창조물 중에서 너는 수줍어할 것이다. 너의 창조물은 너의 꿈 보다 열등했으며 동시에 경이로운 신의 꿈인 자연보다도 열등하기 때문이다.
신은 때 묻지 않은 자연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서기 2021년 3월 29일 저녁답에 열어본 사진첩 속 풍경은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어디에 강림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두 번 다시 파타고니아로 갈 계획도 기회도 없을 듯 하지만,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이곳에 좀 더 오랫동안 머물었으면 싶은 생각 간절하다.
영상, 지상 최고의 환상적인 드라이브 길
* 위 영상은 전편에 이어 후속 편까지 재편집했다. 편집을 다시 하면서 실제로 현장에 가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당사자가 체험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살아오는 동안 겪은 여행 경험에 따르면 이런 곳도 몇 되지 않았다. 지난 여정에 이어 코로나 시대를 잊게 만드는 지상 최고의 환상적인 드라이브 길을 소개해 드리도록 한다.
하니와 내가 남미 여행 혹은 파타고니아 여행을 통해서 만난 환상적인 길이 있다. 여행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그 길은 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 길이 여러분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나의 브런치 매거진 길에 등장한 풍경이다. 위 자료사진이 최근에 발행한 포스트(사람_다음 생(生)에도 당신을)에 삽입된 것으로 꿈을 꾸는 듯한 비현실적인 도로이다.
우리는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별 일 없는 한 버스 앞 좌석을 이용했다. 만약 이 길을 버스를 타지 않고 손수 운전하면 더 나았을까..
승용차는 버스와 높이가 달라서 이런 풍경을 연출해내지 못할 것이다. 또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길은 라 루따 나치오날 누메로 꾸아란따(La Ruta Nacional Nº 40)였다. 링크된 위키피디아의 자료를 열어보시면 지도가 확인될 것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아무 때나 어디를 검색해도 부처님 손바닥처럼 세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자료를 남기신 분께 감사드린다.
이른바 아르헨티나의 40번 국도«Libertador General Don José de San Martín»는 산타 크루즈 주의 버진 아일랜드(el cabo Vírgenes)에서부터 볼리비아 남부 라 꾸이까 (La Quiaca)까지 이어지는 장장 5,194 km의 길이다.
하니와 나는 파타고니아 여행을 끝마치고 이 길을 따라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San Carlos de Bariloche)까지 이동했으며, 그곳에서 잠시 머문 후 다시 안데스를 넘어 칠레의 뿌에르또 몬뜨(Puerto Montt)로 이동한 것이다.
나는 당시를 회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우리에게 꿈같은 시간이 함께했던 것이다. 그때 바라본 남미의 평원과 안데스의 감흥은 하니의 그림 전시회에 쓰인 작가노트에 오롯이 남았다.
대자연 속에서 나(我)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평원을 질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차창 너머로 사라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차에서 내려보고 싶지만, 그냥 지나치고만 오래된 경험들..
어느 날 거울 앞에선 내 모습 속에는 그 풍경들이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얼핏 스쳐 지나간 풍경 속에는 코끝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꽃들과 세포를 깨우는 먼지 내음들과 바람에 흔들리던 무수한 이파리들. 그리고 밤새 평원을 달리면 은빛 가루를 쏟아붓던 달님과 여명 속에서 다가왔던 발그래한 일출 등
그때는 내 앞가림만으로도 힘들었지만 엊그제 같았던 지천명의 세월을 지나 이순을 접어들면서, 그게 그리움으로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 그렇다고 마냥 회한만 붙들고 있기엔 내 가슴속 열정이 나를 용서치 못한다.
어느 날 거울 앞에서 그리움의 흔적을 좇다 보니 그게 하얀 종이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게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자라고 발효되고 있었던 그리움이라니.. 그리움의 실체가 그토록 아름다운 색과 형체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다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그리움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언제인가 내가 꿈꾸던 세상이 하얀 종이 위에서 바람이 되어 별들이 마구 쏟아지던 안데스 속으로 사라지는 그날까지..
-아내의 작가 노트 中
초초(Lupinus)가 넘실대는 지상 최고의 환상적인 드라이브 길
앞에서 잠시 엿본 이동 경로는 버스를 타고 다녔던 기나긴 여정이었다. 그때 남긴 기록들은 여전히 외장하드에서 발효를 거듭하고 있다. 죽을 때까지 브런치에 열심히 쓰면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코로나가 보다 빨리 사그라들면 그나마 기록은 더디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하늘이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까지 기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번 포스트에 등장하는 풍경은 앞서 만난 드라이브 길과 약간은 다른 것으로, 우리를 안내한 친구 툴리오의 안내에 따라 도시 근교를 한 바퀴 돌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환상적인 풍경들이다. 버스를 타고 둘러본 파타고니아 여행 길이 허공에 내던져진 느낌이라면, 초초가 손을 흔들며 넘실대는 이 길은 누군가 가슴에 꼭 품어주듯 따뜻함이 묻어나는 길이랄까..
역사의 기록은 '만약'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만약에 말이다. 당시 몸상태만 멀쩡했더라면 나는 그 즉시 차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조수석에 앉아 환상적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겠는가.. 여러분들의 생각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때 하나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 앞에서 마음껏 걸어보고 싶은 게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속마음이 아닐까..
서기 2021년 3월 31일(현지시각)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는 조금은 나아진 듯 보이나 여전히 참담하다. 신규 감염자 수(23,904명)와 사망자 수(467명)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만한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Coronavirus, ultimi dati. Oggi in Italia altri 23.904 casi e 467 vittime.)
이러한 통계 수치를 발표하는 보건당국은 지겨움 이상으로 두려울 것이다. 코로나 시대가 이대로 이어진다면 지구촌의 삶의 풍속도는 스스로 진화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사람을 피하는 시대가 될 것이며 얼굴을 마주치는 일을 두려워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때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게 인간이 발명한 인터넷이자 브런치에서 보내는 시간이 행복을 이어가는 시대로 변하게 되는 것이랄까..
하니는 그녀의 작가노트에서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다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그리움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언제인가 내가 꿈꾸던 세상이 하얀 종이 위에서 바람이 되어 별들이 마구 쏟아지던 안데스 속으로 사라지는 그날까지.."라고 말했는데 그녀의 꿈까지 앗아갈 형국으로 코로나 사태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견우와 직녀의 삶이 어떤지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한편, 친구 툴리오가 안내해 준 환상적인 드라이브 길을 따라 마음의 위안을 삼고 집콕을 하시는 분들에게 브런치를 공유하며 답답한 심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희한한 일이지.. 처음에는 코로나가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코로나를 향한 불만보다 조물주가 지은 미생물에 대한 '하늘의 뜻'을 점차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인류문화사를 뒤돌아 보면 인간들은 그동안 거침없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해오고 있었다. 한 때 유럽의 인구 1/3에 해당하는 7500만~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전염병이었던 흑사병을 두고 사람들은 '신의 노여움'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코로나의 창궐을 두고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우의 수만 봐도 코로나는 관리할 수 있는 전염병이며 인간으로부터 전해지고 있는 병이었다. 현대인들이 상용하는 교통수단과 생활문화 등으로 이 질병을 여기까지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부활절 연휴(4월 3~5일) 기간 동안 전국 모든 지역에 가장 엄격한 봉쇄령을 내리기로 했다.
현재 이탈리아의 누적 코로나 19 사망자는 10만 명을 넘었으며, 유럽에서는 영국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나라이다. 누적 확진자 수는 약 356만 명으로 집계됐다. 인류가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시대로 바뀌면서 중세에나 겪을만한 일을 겪고 자초하고 있는 것이랄까..
느낌은 다르겠지만 환상적인 드라이브 길을 따라 스크롤을 내리고 있노라면 우리가 잠시 누렸던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각은 오후 9시(현지시각)를 막 지나고 있고 한국의 시간을 보니 오전 5시를 막 지나고 있다. 이탈리아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오전 5시까지 통행이 금지되고 있는데 벌써부터 차량의 통행이 뜸한 것이다.
그리고 글을 발행할 때쯤이면 도시는 정적에 휩싸이면서 진공상태로 변하는 게 일상이 됐다. 서두에 인용한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예술가의 십계명_Decálogo del artista> 중 둘째 계명을 돌아보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둘째, 무신론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
사람들은 신을 섬기고자 하는 동시에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다. 예술가가 아니라 생활인일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잠시 잠깐 지구라는 태양계의 행성에 살다가는 사람들이다. 따지고 보면 미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인류의 모습이지만, 조물주는 우리를 통해 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랄까..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을 통해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이 간파한 신의 모습이자, 우리를 오만 방자하지 못하게 하는 신앙인의 참모습이 아닌가 싶다. 황홀한 드라이브 길을 안내한 친구 툴리오는 이 도시 꼬자이께(Coyhaique)에서 건축감리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출근을 하면 매일 공사현장에 나가 공사현장 감독을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자료사진은 숙소에서 가까운 풍경이며 움푹 파인 계곡에 리오 심프슨(Rio sympson) 강이 흐르고 있다.
그런 그가 어느 날부터 우리의 수족을 자청하면서 하니와 나를 태워 이 도시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준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가족처럼 친하게 어울려 지냈다. 관련 글에서 언급했지만 우리는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으로 숙소 앞에서 만난 그의 아내 마리아와 숙소 주인 나디에 때문에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이다.
참 묘한 인연이 먼 나라에서 이어지고 있었으며, 우리는 파타고니아 여행 중 전혀 뜻밖의 행운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두에 "코로나를 잠재우는 브런치의 따끔한 맛을 보여주마.."라고 언급했다. 글을 써 놓고 보니 따끔함은커녕 부드럽고 달콤하기만 한 라떼같은 풍경만 즐비하다. 꽤 긴 시간 동안 포스트를 편집하고 글을 쓰는 동안 십 년 묵은 듯한 코로나 체증이 싹 가라앉는다.
툴리오의 안내로 북부 파타고니아의 아름다운 도시 꼬자이께의 환상적인 드라이브 길을 끝내고 시내로 돌아오니 장작을 가득 실은 짐차 한 대가 앞서가고 있다. 아직도 파타고니아 곳곳에는 장작을 땔감으로 사용하는 집들이 적지 않은 곳이다. 난방을 해 주고 오븐을 따끈하게 데우는 데 사용할 땔감은 뿌에르또 몬뜨 이남 파타고니아 전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인구밀도가 적은 파타고니아에서 상대적으로 넘쳐나는 목재이자, 아직도 아날로그 생활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짐차 한 대에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와 함께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는 곧 친환경에너지(배터리)로 전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인류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말하는 가운데 발생한 코로나 펜데믹은 시사하는바 매우 크다. 조물주가 에덴동산에서 두 사람을 쫓아낸 가장 큰 이유는 달콤함에 길들여졌기 때문 아닌가. 드라이브 길이 환상적으로 다가온 것도 대자연이 값없이 베푼 은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긴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의 사진첩은 계속 이어진다.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con mia moglie_COYHAIQUE CILE
Scritto_il 31 Marz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