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사람. 길
나를 감동시킨 두 사람.. 그리고 내가 빚진 한 사람..?!!
하니와 나를 태운 버스는 뿌에르또 나탈레스를 출발하여 깔라파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오래전 남미 일주 여행 당시에 만났던 지인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그토록 바빴던지 깔라파테에서 잠시 머문 다음 곧바로 엘 찰텐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슈퍼마켓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 들고 으레 그러했듯 버스 앞 좌석을 차지하고 깔라파떼를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40번 국도를 벗어나며 비에드마 호수 곁 23번 국도를 달리며 목적지인 엘 찰텐으로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다. 해 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서기 2021년 2월 27일 토요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사진첩을 열어 당시를 회상해 보니 그저 꿈만 같다. 우리에게 이런 일도 있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 일정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파타고니아의 봄을 찾아 떠난 일정이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평원에는 건기가 끝날 무렵의 마른풀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국도 곁에는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비에드마 호수는 비췻빛으로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또 하늘은 황금가루를 쏟아붓고 있었다. 꿈같은 시간..
나는 이틀 전부터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사건을 기억해 내고 있었다. 이런 시간은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니었으며 아주 가끔씩 내게 찾아오는 것으로 그때마다 감동으로 넘쳐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이 '신의 은총'이라 생각했다. 맨 먼저 나를 감동시킨 사람은 신의 아들 혹은 예언자, 선지자로 불리는 예수(Gesù)였다. 그리고 나의 브런치에서 언급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isi )였다.
나를 감동시킨 두 사람은 어느 날 우연찮게도 한 후배로부터 내게 전해졌다. 주말에 소풍을 떠나던 날 그 녀석은 자동차 카세트에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을 틀어놓았다. 동행한 친구와 녀석은 해병대 선후배 사이로 평소 겉으로는 신심이 깊어 보이지 않았으나, 그날따라 무슨 연유인지 팝송 대신 찬송가를 틀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선데이 크리스천'에 불과했다. 일에 쫓기다 보니 일요일에 겨우 성경책을 끼고 모 교회에 출석을 하고 있었다. 교회는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마치 어린 왕자가 한 번 질문을 하면 대답을 듣기 전까지 질문을 끝내는 법이 없는 것 같은 조직이었다. 짬만 나면 구역 예배 지역 예배 무슨 예배 등으로 한시라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처음에는 교회의 법도가 그래야 되는가 싶어 열심히 기웃거렸다.
그런 어느 날부터는 슬슬 꾀가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열심히 조직생활을 한 터라 사생활은 점점 더 멀어지고 아이들과 노는 시간마저 없었다. 이런 시간이 지속되면서 하느님은 참으로 귀찮은 존재였다. 기도빨도 시원찮았다. 어떤 때 '기도빨'이 먹히는가 싶으면 '나의 하느님'이었으며, 기도에 응답이 없으면 나와 상관없는 하느님이자 왜 사람들이 쓸데없이 몰려다니나 싶을 정도로 회의감이 자주 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세 사람이 강화도로 소풍을 떠날 때 차속에서 듣게 된 찬송가가 나를 감동시킨 것이다. 이랬지..
내 영혼이 은총 입어(링크를 클맄하면 감동이 넘쳐난다)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이 가사와 멜로디는 가슴을 후벼 파게 될 정도로 눈물을 펌프질 할 것이다. 처음에 별 뜻도 없이 그저 따라 부르던 찬송가가 어느 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1박 2일 후 집으로 귀가할 때까지 짬만 나면 부르고 또 불렀다. 두 사람은 그런 내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지 좋아 죽었다. 잘 다듬어진 보컬에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음성까지 더해져..
훗날 예배를 인도할 때는 사람들이 크게 감동한 나머지 눈에서 손수건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그때마다 떠 올린 사람이 예수였으며 손수건이 없던 나를 위해 신심이 깊은 권사님이 수건을 건네주기도 했다. 내게 예수와 프란체스코는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을 사는 동안 당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분들 만큼 더 힘들었을까..
대한민국에 외래 귀신(?)이 수입된 지 꽤 오래됐으며 우리나라의 역사만큼이나 깊다. 유년기를 돌아보면 나는 할머니를 따라 가까운 산에 위치한 사찰에 등을 달기도 했다. 부모님이 바쁘신 중에 할머니와 내가 대표선수(?)가 되어 쫄랑쫄랑 산중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다. 그때가 주로 초파일이었다. 초파일에는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절에서 대접하는 공양을 받아 들고 한쪽에서 맛있게 먹는 것이다.
나는 그 공양이 불자들의 신심에서 우러난 선업의 한 행위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전생에 지은 착한 업보를 누리는 사람들은 물론 반대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금생의 업보를 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공덕을 짓고 있는 것이다. 수행자라면 해탈을 목적으로 정진할 것이지만,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피를 입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복을 누리는 삶이었다.
여러 이유 등으로 초파일에 등을 달았던 할머니와 달리 어머니는 금남구역이었던 정지(부엌)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정화수를 떠 놓고 치성을 들였다. 어느 날 닫힌 부엌 문의 틈새로 목격한 어머니는 잘 알아듣지도 못할 작은 소리로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일 또한 우리 가족과 집안 등을 위한 천지신명을 향한 기도였음을 알게 됐다. 우리 토속종교 샤머니즘과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불교와 태평양을 건너온 기독교가 짬뽕된 채로 신앙을 요구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사정이 이러함으로 나의 신앙심의 근저에는 세 귀신(오해하기 없기)이 공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앙(信仰) 혹은 신심(神心)은 무턱대고 믿는 게 아니었다. 신앙 즉 신심은 당신이 믿는 '신을 드 높이는 행위'였으므로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다. 참 쉽지 않은 일이자 자칫 시험에 빠질 일이 상존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 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친히 고난을 자처하셨으며 프란체스코 성인도 세상의 부귀영화를 내려놓고 어느 날 세상을 등지게 된 것이다. 그는 아시시 교외에 있는 산 다미아노 성당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에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게 되었다.
"프란체스코야, 프란체스코야. 보다시피 다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수리하여라."
믿기시는가.. 프란체스코는 이를 자신이 지금 기도했으며 허물어져 가는 성당을 수리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 부친의 가게로 가서 값비싼 옷감들을 가져다가 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전한다. 그다음부터 그의 부친은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별짓을 다했지만 그의 신심은 꺽지 못했다. 그의 마음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틀 전 마음에 와 닿은 느낌 하나 때문에 나의 신앙고백 겸 내 속에 남아있던 기억의 편린들을 브런치에 내려놓았다. 어떤 분들은 글 속의 표현들 때문에 발칙하거나 신심을 훼손하는 무례함이나 여러 신들의 모습들 때문에 속상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믿는 신은 그렇게 옹졸하지 않고 위대함 그 자체이자 장차 내가 돌아갈 본향의 한 모습이다. 신앙인들의 표현처럼 '온 곳이 있으면 가는 곳'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 누린 복락을 미래의 생에 환생(還生 혹은 復活)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생(生)에도 당신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 당신은 다름 아닌 엘 찰텐으로 가는 버스에 함께 탄 사람이자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돌로미티까지 동행한 여자 사람 하니이다. 그녀는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한국에서 이제자 저제나 코로나 백신 접종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되돌아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
그런 그녀에게 내 마음대로 "우리가 다음 생에 태어나면 나와 다시 만날 거지..?"라고 말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ㅋ 상상만으로 즐거워진다.) 한 침대를 오랫동안 공유해 온 사람들일지라도 이런 질문에는 여러 답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응, 그래 다시 만나게 돼도.. 우리 사랑 변치 말자"라고 할 것이며, 반대의 경우는 숱하다. 어떤 여자 사람은 "흥, 개뿔! 지긋지긋해.." 이상으로.. 차마 더 끼적거릴 수 없는 이혼사유까지 들추게 될지도 모르겠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제발 겉으로 발설하면 안 됨 ㅜ)
하니든 그 누구든 인간으로 다시 환생을 할 경우의 수를 참고하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음 생(生)에도 당신을'을 말하고 있는 건 금생에 진 빚 때문이다. 다음 생에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되기 위해' 입(글)을 통해 얄팍한 선업을 짓고 있는 것이다.
성자들은 고난의 길을 통해 목숨까지 내어주며 나를 사랑했는데.. 그 까이꺼 당신께 진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게 무슨 죄(업보)가 될까 싶은 것. 다음 생에 다시 만나게 되면 여왕처럼 모실거야..! 생각만으로 행복해진다. (히히..!) 당신의 영혼에 신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Un viaggiatore è felice sulla strada_Il monte Fitz Roy
il 27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