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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12. 2021

꽃양귀비에 깃든 얄미운 흔적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찾아온 봄소식

나는 지금도 꽃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핀 그 기차역을 잊지 못한다.




 추억의 꼴로르노 역 비나리오



   브런치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한 여성은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선로(Binario ferroviario)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 누구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이곳은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주(Emilia-Romagna) 빠르마(Provincia di Parma)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꼴로르노 역(Stazione di colorno)이다. 그녀 옆에는 일행인 남자 친구가 멀뚱멀뚱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빠르마(Parma)로 가는 기차가 저만치서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다.



내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모처럼 주말을 이용해 빠르마 시내로 외출을 나가는 것이다. 외출의 과정은 숙소에서부터 요리학교가 위치해 있는 렛지아 디 꼴로르노(Reggia di Colorno)까지 걸어서 먼저 이동하고, 꼴로르노 역에서부터 빠르마 시내로 가는 여정이다. 기차 시간에 맞추어 역에 도착해서 서너 칸의 경량 열차를 타면 빠르마 역까지(17,3 km) 가는 시간은 20분 남짓 가까운 거리이다. 



한 여성과 그녀의 친구와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역내 비나리오(이탈리아에서는 '플랫폼'을 이렇게 부른다)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서성거리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선로 근처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양귀비 삼매경에 빠져 기차는 잠시 잊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탈리아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요리 때문이었지만, 이때부터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풍경이 있다면, 해마다 4~5월에 집중적으로 새빨간 꽃잎을 내놓은 꽃양귀비(Papavero_Papaver nudicaule)였다. 



이맘때 이탈리아 전역 어디를 가도 꽃양귀비를 볼 수 있을 정도인데.. 철로변에 핀 꽃들은 풍경을 보다 애잔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떠나는 사람.. 오는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는 녀석들은 텅 빈 역전을 가득 메운 환영인파나 이별식을 연출하고 있는 듯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기차가 도착하면 이 길을 따라 빠르마로 이동할 것이다. 



잠시 후 기차가 비나리오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한 여성은 가방을 챙기고 멀뚱멀뚱 역 앞에서 서성이던 남자 친구를 부른다. 지내 놓고 보니 이때 남긴 꽃양귀비 사진이 얼마나 아련하고 애잔한지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싶은 것이다. 오늘 오후(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의 한 공터 화단에 꽃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핀 풍경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포토,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만난 꽃양귀비




   서기 2021년 4월 11일 저녁답(현지시각)에 노트북을 켜고 사진첩을 열면서 맨 먼저 한 일이 서두에 언급해 둔 풍경이었다. 이맘때 피고 지는 꽃양귀비를 보면 절로 떠오르는 아련한 풍경인 것이다. 이날 오후 가까운 바닷가로 운동 겸 산책 삼아 나갔다가 몰라보게 크게 자란 녀석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 걸 고혹적이라고 하나.. 정신을 하리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꽃양귀비 앞에서 사진과 영상을 남기게 된 것이다. 먼저 사진을 천천히 감상하시기 바란다. 







꽃양귀비와 마약성분이 포함된 양귀비 구별 어떻게 하나



잠깐..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지금 보고 계신 꽃양귀비는 종종 마약 성분이 함유된 양귀비와 착각을 하게 된다. 마약성분이 있는 양귀비의 꽃대는 솜털이 없이 아주 매끈한 반면, 꽃양귀비는 온몸이 뽀송뽀송한 솜털로 덮여있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천천히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또 잎이나 꽃대 혹은 꽃이 진 열매에 상처를 내었을 때 하얀 진액이 나오면 마약성분이 있는 양귀비이며, 하얀 진액이 나오지 않으면 꽃양귀비이다. 그런가 하면 잎이 넓고 톱니 모양이며 열매가 크고 둥글면 마약성분 양귀비이고, 잎이 가늘고 깃털모양이며 열매가 작고 도토리 모양이면 꽃양귀비이다. 그리고 마약성분 양귀비는 1.2~2m 정도 키가 크다. 그러나 꽃양귀비는 60㎝ 정도로 키가 작다.




여기까지 천천히 꽃양귀비를 감상하시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쵸? ^^) 그렇다면 이번에는 영상으로 만나 보시기 바란다. 바람에 흔들리는 녀석들의 고혹적인 자태가 오롯이 담겨 있다. 유튜브의 옵션이므로 광고는 클릭하지 않으셔도 좋다. ANDIAMO!!



영상,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만난 꽃양귀비




꽃양귀비에 깃든 얄미운 흔적


   서기 2021년 4월 11일 오후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국시간으로 한밤중에 전화를 건 것이다. 우리는 전화기를 붙들면 대략 1시간은 기본이다. 특별히 할 말도 없지만 거의 매일 안부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녀는 운동 삼아 산으로 다녀올 때 만난 봄꽃은 물론 신변잡기를 꼬치꼬치 다 늘어놓곤 한다. 그때마다 다 들어준다. 그래야 한다. 중간에 끼어들면 자칫 좁쌀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할 말이 다 끝날 때쯤이면 반격(?)이 시작된다.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반찬은 무엇을 먹는지 물과 단백질 등은 잘 챙겨 먹는지 등등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캐묻는다. 거기에 오늘은 이탈리아의 역사를 장황하게 개관했다. 그게 재밌기도 하단다. 브런치에 기록도 하지 않은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에 이르기까지.. 또 바티칸의 위상이나 1.2차 세계대전이 이탈리아에 미친 영향이며 셰익스피어의 희극에 등장한 베니스 상인에 얽힌 이야기며 모조리 가져다 붙여가며 신나게 떠들어 대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졸려..!" 하며 전화를 끊자고 한다.ㅜ




영상,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만난 구급차



*참고로 영상에 등장하는 이곳 바를레타 도심은 휴일(11일) 임에도 인적이 뜸하고 차량 통행 조차 뚝 끊겼다. 구급차 뒤로 보이는 공원은 폐쇄된 상태이며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다. 최근 1년동안 이렇게 을씨년 스러운 풍경은 처음 본다.


그리고 오늘은 그녀로부터 보다 피곤한 기색을 감지했다. 코로나 때문에 점점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은 가운데 "이제 이탈리아가 가물가물 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몸이 멀어지지 마음도 멀어진 건가"하며 지친 기색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현지의 코로나 현황 보고도 잊지 않았다. 오늘 자(11일) 이탈리아의 신규 확진자 수(15,746명)와 사망자 수(331명)는 조금씩 나아지는 듯 여전해 보이는 것이다. 괜히 내가 미안했다. 



그땐 운동을 끝내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점점 더 희망이 보이지 않는 보고였던 것이다. 그런 잠시 후 낮에 잠깐 꽃양귀비에 취해 있다가 김이 새버린 것도 우연찮은 일이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면서 구급차와 다시 대면했다. 하루 종일 삐요삐요.. 잊힐만하면 들리는 경적소리다. 그리고 교회의 출입문만 빼꼼히 열어놓고 드리는 추모미사를 만난 것이다. 요즘 하루 일과가 주로 이런 풍경이다. 참 얄미운 녀석..!!


La primavera è venuta a Barletta in puglia_Papavero
il 11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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