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서울에 봄이 오시던 날
평범(平凡)이 비범(非凡)해질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
브런치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지게를 진 한 사람은 서울 강남의 대모산 자락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강남땅이 개발되기 전부터 이곳에서 대를 이어 살아오신 분인데 일가는 여전히 산기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선조들이 물려주신 땅을 이어받아 온 가족이 함께 밭을 일구어 채소를 심어 내다 파는 것이다.
하늘은 무심하지 않아서 이분들의 삶의 터전이 복될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이분들이 농사를 짓는 바로 곁으로 대모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나있고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기른 친환경 채소를 구입해 가는 것이다. 대모산 자락에는 텃밭을 일구는 사람은 꽤 되지만 이분들처럼 온 가족이 매달려 농사를 짓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지게를 지고 파랗고 기다란 호스를 끌고 가는 장면은 밭에 물을 주기 위함이다. 당신의 아내는 산길에 노점을 열어 놓고 쪼그리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으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조팝나무며 산벚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숲에는 봄의 요정들이 막 기지개를 켜고 눈부신 표정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나는 거의 매일 아침 하니와 함께 이 길을 따라 대모산 꼭대기를 다녀오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 오며 가며 만난 요정들을 카메라에 담아 두었더니 적지 않은 분량의 기록이 남았다. 평범한 이 기록들이 장차 빛을 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마침내 요정들의 표정과 함께 브런치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 수 있게 된 것이다.
겨울과 봄 사이를 지나고 있는 한 사람..!
서기 2021년 4월 18일 저녁(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4월 초부터 기록된 대모산의 봄 풍경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고 있는 것이다. 한 때 내가 너무 사랑했던 대모산의 봄의 요정들을 바라보며 인연법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때 마침 이곳에는 봄비가 가랑가랑 오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종종걸음으로 인도 위를 걸어 다니고 대리석으로 만든 도시는 빗물에 젖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요즘 나의 브런치에는 도시의 이런 풍경은 물론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 등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 자 이탈리아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 12.694명)와 사망자 수(251명)는 모처럼 하향세를 기록하고 있다. (Coronavirus in Italia, il bollettino di oggi 18 aprile: 12.694 nuovi casi e 251 morti)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매일의 데이터에 일희일비하는 것이랄까..
코로나 시대가 만든 신풍속도이다. 하니와 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게 이탈리아 방역당국과 시민들인 것이다. 정부와 방역당국과 시민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할 때 견우와 직녀의 삶을 머지않은 장래에 청산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지난해 이맘때쯤은 오늘의 1/4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으므로, 최소한 신규 확진자 수가 4천 명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던지 그 아래로 떨어져야 할 것이다. 하니와 나의 바람이 그러하고 지구촌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람이 그러할 것이다.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는 한국도 점점 더 신규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녀도 코로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코로나 성적표를 살펴보니 600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사망자도 생겼다며 방역당국이 조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구촌 대비 한국은 견딜만하다. 시선을 지구촌으로 돌려보면 끔찍한 수준 이상이다. 코로나 19 팬데믹 선언 이후 세계는 1년 여만에 사망자 수가 3백만 명에 달했다.
프랑스만 해도 누적 사망자 수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남미 브라질의 사정은 엉망진창이다. 매일 3천 명의 사망자 수를 기록하더니 일주일 전에는 하루 사망자가 4천 명을 넘기기도 했다. 의료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랄까. 외신들은 통제불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페루의 경우에는 인구 대비 사망자 수가 세계 최다로 공동묘지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불명예 1위를 안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미군의 수를 넘어섰다고 한다. 누적 사망자가 29만 5천여 명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신규 확진자도 하루 역대 최다인 23만여 명이 발생해 누적 환자는 1천590만 명을 넘었다.
월드모미터(Worldometer)에 따르면 현재까지 세계 코로나 19 누적 환자는 7천백만 명을 넘어섰으며, 사망자 수는 백 6십만 명을 넘었다고 밝히고 있다. 지구촌의 코로나 성적표가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의 백신 접종 상황을 보니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4월 17일 현재 한국의 백신접종자 수는 1,512,503명이었다. 1백5십만 명 이상이 백신 접종을 마친 것이다. 그중 접종 완료자 수는 60, 585명이었다. 그 가운데 한국에 가 있는 그녀는 여전히 접종 차례를 무한정 기다리고 있고,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는 더디게 더디게 하향곡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하늘이 모를 리가 없다. 바를레타에 봄비가 추적 추우~적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앙증맞은 봄의 요정들..
-(와글와글)ㅋ 아더찌 안넝하떼요. ^^(하고 요정들이 말했다)
-그래 반갑구나. 지금은 안녕하지 못하단다. 이따 봐! (하고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서두에 인연법을 말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란, 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라고 말한다. 모든 결과는 반드시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연이 다하면 인과 연은 흩어져 사라진다는 말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남긴 것이다.
당신께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으므로, 코로나로 희생된 사람들은 인연법에 따라 참으로 딱한 악연(惡緣)을 타고났을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인연을 만나게 되고 악업을 쌓게 된다. 이런 일은 굳이 종교를 빌리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바쁘게 사노라면 당신의 행위를 돌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선업을 짓고 있는지 악업을 쌓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이다.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다 그렇게 잊히게 되는 법이랄까..
우리 인간은 100년도 채 살지 못하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모른다. 평생을 통해 쌓아 올린 꿈들이 어느 날 미생물로부터 허물어진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하루를 잘 사는 일이 100년을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봄의 요정들이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날 봄의 요정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더찌. 있잖아요. 사람들은 이상해요. 하고 요정이 말했다.
-뭐가..? 하고 내가 말했다.
-있잖아요. 우리는 사람들이 80년 혹은 100년을 살 동안 1년도 채 살지 못하거덩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80년을 산다면.. 해마다 우리를 만나도 80번 밖에 만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고 요정이 내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구나. 내가 지금 75세라면 너희들을 만날 수 있는 횟수가 불과 5번뿐이네..ㅜ
하고 내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요정이 내게 말을 이어갔다. 이곳 대모산 자락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대부분 그냥 흘깃 바라보는 둥 마는 둥 지나친다고 했다.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을 그냥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코로나 19를 언급했다. 그 사람들이 죽음을 코 앞에 두고 누리지 못한 인연을 후회할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에 가 있는 하니가 요즘 산행을 하면서 이탈리아로 보낸 사진들이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요정이 다시 내게 물었다.
-ㅋ 아더찌, 숙모님은 달 게떼요(잘 계세요)? ^^
-응, 방금 말했잖아. 한국에 있는 네 친구들을 이뿌게 찍어서 이탈리아로 보내..! ^^
-와 신난다~~! 아더찌, 넘 고마워욤 ㅜ
-ㅎ 고맙긴.. 당근이쥐. 니들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
Ecco come arriva la primavera_il Monte DEMO, Seoul COREA
il 18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