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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17. 2021

피렌체가 그리워질 때

#7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의 봄맞이

가끔씩 그리움이 찾아드는 이유가 생기지..!!


연재 포스트(피렌체, 감추어진 정원을 걷다) 중에서



브런치를 열자마자 고혹적인 풍경이 등장한다. 핏빛 꽃잎과 연둣빛 이파리들이 고목에 피어난 이끼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곳. 봄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이곳의 명칭은 빌라 일 벤딸리오(Villa Il Ventaglio)라는 곳이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렌체(FIRENZE) 근교의 뷔아 알디니(Via Giovanni Aldini)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기록을 살펴보니 15세기 초 지오반니 브란까치오 가문(Brancaccio (famiglia))의 소유였으며, 초기에는 순례자를 위한 휴식처로 사용된 곳이었다. 그 후 19세기에 들어 밀라노 사람 쥬세뻬 아르낀또(Giuseppe Archinto) 백작이 이곳의 빌라를 매입했다. 



그 후, 그는 정원사이자 식물학자인 쥬세빼 뽀찌(Giuseppe Poggi)에게 일대를 재설계하라고 지시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현재는 이탈리아 정부가 인수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방문객들은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곳에는 5헥타르에 달하는 관목과 숲이 있으며 연못과 잔디로 덮인 정원이 방문객을 편안하게 하는 곳이다. 특히 이맘때 유다 나무의 고목에서 내뿜은 붉디붉은 핏빛 꽃들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어서 황홀경에 빠뜨리는 것이다. 어느 봄날, 하니와 나는 피에솔레로 목적지를 정하고 피렌체 시내 중심에서 천천히 걷다가 우연한 기회에 빌라 일 벤딸리오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피렌체가 그리워질 때



서기 2021년 4월 17일 아침(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날씨는 화창 화창..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시작되는 날씨 타령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날씨는 절기(節氣)에 영향을 미치므로 농경사회에서는 필요 불가분 했다. 날씨가 좋아야 농사가 잘 되는 건 당연한 이치. 비가 올 때는 비가 와야 하고 바람이 불 때나 선선할 때.. 그리고 춘하추동의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를 준비하고 갈무리 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24절기(二十四節氣)를 만들어 놓고 하늘만 바라봤을까.. 



이런 일은 현대사회에서도 농사를 짓는 나라나 촌락에서는 여전한 습관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개량된 농법으로 절기를 마음껏 조절하는 것이다. 비가 오시지 않아도 논과 밭에 물을 퍼 나를 수 있고, 잘 관리된 과수원과 밭에서는 엄청난 양의 과실과 채소 등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날씨는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다. 비가 오시면 우산을 준비하면 되고 바람이 불면 외투를 잘 입으면 된다. 날씨가 추워지면 겨울옷이 필요한 정도일 뿐이다. 어떨 때는 우비도 필요하지 않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주자장까지 쪼르르 내려가서 자동차를 타면 비는 존재감을 상실한다. 비는 도시의 어느 카페의 창에서 바깥으로 내다볼 때 분위기를 맞추는 역할이 전부라고나 할까.. 



날씨는 대중문화의 시대사조에도 영향을 미쳐 노랫말을 촌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가끔씩 열어보는 6070 혹은 7080 세대들이 좋아하고 따라 불렀던 '봄비' 관한 노래를 들어보면 향수를 불러일으킬 망정 감흥이 살아나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고 잘 불렀던 '송골매의 빗물(작사 이응수, 작곡 배철수)'이란 노랫말은 이랬지..



돌아선 그대 등에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이 가슴 저리도록 흐르는/ 눈물 눈물/ 초라한 그대 모습 꿈속이라도/ 따스한 풀가에서 쉬어 가소서/ 그대 몰래 소리 없이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끝없이 솟아나는 차가운 눈물/ 말없이 그대 등에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이 가슴 애타도록 흐르는/ 눈물 눈물/ 초라한 그대 모습 떠날지라도/ 따스한 사랑으로 감싸오리다/ 그대 몰래 소리 없이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끝없이 솟아나는 차가운 눈물



송골매(보컬 배철수)가 활동하던 시기는 1979년부터였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 바뀐애의 애비가 총살을 당할 때이며 유신정권의 18년이 종말을 고하던 때였다. 그리고 80년 광주민주화항쟁이 시작되던 때였다. 봄비에 관한 노래가 줄줄이 사탕처럼 발표되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배경에는 억압된 마음이 날씨에 묻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비와 관련된 노래는 그리움이나 슬픔이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농작물 때문에 하늘을 바라봤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하늘이 흩뿌리는 비가 노래가 되고 시가 되었으며 문학이 된 것이랄까..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땐 그렇게 처연하고 슬프게 들렸던 노래가 점차.. 점차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것이다. 노래가 유행을 뒤따르지 못했던지 감성이 메말랐던지 둘 중에 하나 아니면 안 청춘의 현주소일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의 날씨는 여러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태양계의 작고 아름다운 행성 지구에 찾아든 얄미운 녀석 때문에 사람들의 일상이 거의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누려왔던 문명사회의 단물이 하나둘씩 말라가고 있는 현상이 생겨서..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랫말처럼 뭔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배어나는 것이다. 마치 이별의 전주곡처럼 낮이든 밤이든 무시로 찾아드는 그리움이 코로나 시대의 한 현상인 것일까.. 



현대인들이 누린 문명의 혜택은 불과 몇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터넷 혁명이 그러하다. 바를레타의 날씨가 화창 화창.. 서울의 날씨가 봄비 봄비.. 하늘의 절기가 그 어떤 마술을 부려도 인터넷이 없다면 얼마나 황량했겠는가. 조물주는 그야말로 신묘막측해서 현대인들 위한 구세주를 미리 보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천21년 전에 예수(Gesù)를 보냈다면, 546년 전에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를 보냈으며, 66년 전에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를 보냈다. 그리고 37년 전에는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를 보냈으며, 불과 25년 전에는 구글(Google)을 보냈다. 그리고 6년 전에 브런치(Brunch)를 보냈다. 



희한한 일이다. 얼렁뚱땅 역사를 정리해 보니 인간계를 날씨 등으로부터 해방시킨 공로자들이 오롯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을 하늘이 내린 것이라면 당사자들은 삐칠까.. 



내 앞에 펼쳐진 풍경들은 르네상스 시대 전후반에 걸쳐 완성된 아름다운 정원이다. 하니와 나는 어느 봄날 가끔씩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가운데 유다 나무의 핏빛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걷고 있었다. 만약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면 덮어두었을 사진첩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참 묘한 일이다. 바깥 날씨는 화창화창한데 집콕하며 주말 아침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리움은 늘 이런 것이다. 나는 피렌체의 어느 봄날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피렌체서 바를레타로 둥지를 옮길 때는 두 번 다시 보지못할 것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다시금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참 지독한 그리움이다. 어쩌면 신께서는 우리에게 잠시 뒤돌아 볼 기회를 주시지 않았나 싶다. 그리움이 상실된 사회에 살면 갈증의 근원이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알쏭달쏭.. 얄미운 녀석을 보낸 하늘의 뜻이긴 한가..


La primavera fiorentina del Rinascimento_FIRENZE
il 17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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