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의 봄맞이
가끔씩 목적지가 바뀌기도 하지..?!!
브런치를 열자마자 고혹적인 풍경이 등장한다. 핏빛 꽃잎과 연둣빛 이파리들이 고목에 피어난 이끼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곳. 봄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이곳의 명칭은 빌라 일 벤딸리오(Villa Il Ventaglio)라는 곳이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렌체(FIRENZE) 근교의 뷔아 알디니(Via Giovanni Aldini)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기록을 살펴보니 15세기 초 지오반니 브란까치오 가문(Brancaccio (famiglia))의 소유였으며, 초기에는 순례자를 위한 휴식처로 사용된 곳이었다. 그 후 19세기에 들어 밀라노 사람 쥬세뻬 아르낀또(Giuseppe Archinto) 백작이 이곳의 빌라를 매입했다.
그 후, 그는 정원사이자 식물학자인 쥬세빼 뽀찌(Giuseppe Poggi)에게 일대를 재설계하라고 지시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현재는 이탈리아 정부가 인수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방문객들은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곳에는 5헥타르에 달하는 관목과 숲이 있으며 연못과 잔디로 덮인 정원이 방문객을 편안하게 하는 곳이다. 특히 이맘때 유다 나무의 고목에서 내뿜은 붉디붉은 핏빛 꽃들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어서 황홀경에 빠뜨리는 것이다. 어느 봄날, 하니와 나는 피에솔레로 목적지를 정하고 피렌체 시내 중심에서 천천히 걷다가 우연한 기회에 빌라 일 벤딸리오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걷던 뷔알레 알레싼드로 볼따(Viale Alessandro Volta)에서 한쪽으로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걷자 커다란 철제 대문 너머로 핏빛 꽃들이 우리를 맞이한 것이다. 우연히 마주친 행운이자 이때부터 우리의 목적지를 단박에 바뀌게 되었다. 사노라면 이렇듯 목적지가 바뀌게 되고 수정된 목적지가 의외의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랄까..
서기 2021년 4월 14일(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노트북을 켜고 사진첩을 열어 피렌체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발행하고 있는 나의 브란치 키워드에는 '코로나'가 빠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계획한 목적지가 바뀌게 된 것이다.
자주 인용되는 글에는 '우리가 계획하고 하늘이 실행한다'는 말이 있다. 코로나 시대에 사는 우리의 운명이 뜻밖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피렌체의 숨겨진 명소를 찾을 때처럼 어느 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커뮤니티에서도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지쳐가고 있고,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 또한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이 통화 속 음성에서 묻어나는 것이다. 그녀는 볼일 때문에 시내에 나갔다가 전철 안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서울의 모처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할머니는 초면임에도 주절주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는데 취미가 여행이었으며,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싸돌아다닌다고 했다. 하니는 귀가 솔깃해졌다. 그래서 캠핑카에 대해 물어보며 잠자리와 취사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했다. 그런 한편 "주로 어디로 다니시느냐"라고 물었더니 주로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며 캠핑을 즐긴다는 것.
운전은 주로 신랑(할아버지)이 하지만 피곤하면 교대로 운전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낚시는 두 사람의 취미라고 했다. 그 할머니의 나이는 70세였다. 하니는 "어머머 어머머"를 연발하며 당신의 일처럼 좋아했단다.
코로나 시대뿐 아니라 평소에도 집콕을 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니는 그런 사람들을 일종의 삐딱선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인생 까이꺼 얼마나 살 거라고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나.."라며 역마살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 앞에 일도 하면서 짬짬이 여가를 즐기는 할머니 부부가 대단해 보이는 것이다.
이런저런 통화는 길게 이어지면서 종국에는 재미없는 나의 발언이 시작되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자주 인용하는 생떽쥐페리가 소환되는 것이다. 이랬지..
그리고 통화가 끝날 무렵에는 생텍쥐페리가 화가가 되는 꿈을 포기시킨 어른들의 재미없는 습관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역사와 지리 혹은 문법과 수학과 같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러면 갑자기 조용해진 하니가 이렇게 말한다.
"응, 나 졸려.. 잘 거야..!"
그녀가 깔깔대며 길게 늘어놓은 할머니 이야기를 통해 속마음을 읽게 된다. 당신이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 앞에서 "어머머 어머머"를 연발한 것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머니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있는 것이다. 집콕의 일상이 길어지면서 얼마나 속이 탓을까..
그녀의 좌우명은 '천년을 살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이다. 어떤 때는 잠자는 시간까지 아까워하는 보기 드문 여자 사람 1인.. 그런 그녀가 요즘 발바닥에 가시가 돋치기 시작한 것이다.
전철 속에서 만난 할머니는 천사였을까.. 잠시 찌든 마음을 활짝 펴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이탈리아로 날아오고 싶은데.. 글쎄 그게 마음대로 되나. 오늘 자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신규 확진자 수(16,168명)와 사망자 수(469명)가 여전하다.
할머니와 대화를 통해 그녀는 여전히 캠핑카를 통해 잠시 잊고 살던 돌로미티(Dolomiti)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파타고니아(Patagonia)에 뼈를 묻고 싶다던 그녀의 바람이 바뀐 건 최근의 일이다. 죽기 전에 꼭 한 번만 살아보고 싶다던 피렌체서 바를레타로 둥지를 옮긴 것도 목적지가 바뀐 것일까..
죽기 전에 남기고 싶었던 작품(그림)에 대한 꿈도 점점 더 멀어졌는지.. 어느 날 피렌체서 우연히 알게 된 '감추어진 정원'에서 그녀는 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땐 가슴속에 환한 등불을 켠 것처럼 유다 나무의 핏빛 붉은 꽃이 우리를 포근히 감싸 안았었지.. 그때가 4월 7일이었네.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말도 안 돼..!!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때를 그리워하는 건 또 무슨 조화인지.. 우리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정원을 걷고 또 걷다 보니 자정이 임박했다. 한국은 아침이 밝았고 이곳 바를레타는 노트북의 자판 소리만 나지막이 들릴 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공상태의 도시로 변했다.
우리는 유다 나무 아래서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이곳 빌라 일 벤딸리오 언덕 위까지 거리는 1킬로미터 남짓하다. 피렌체에 봄이 오시면 그곳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유다 나무가 붙들어 세우는 것이다. 정문을 통과하여 두 굽이만 언덕을 돌아 올라가면.. 그곳에 미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황홀경은 계속됐다.
La primavera fiorentina del Rinascimento_FIRENZE
il 15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