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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19. 2021

산벚꽃에 매달린 그리움

#15 서울에 봄이 오시던 날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세상..!!




관련 포스트(그냥 지나치면 후회할 걸) 중에서 



하늘은 무심하지 않아서 이분들의 삶의 터전이 복될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이분들이 농사를 짓는 바로 곁으로 대모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나있고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기른 친환경 채소를 구입해 가는 것이다. 대모산 자락에는 텃밭을 일구는 사람은 꽤 되지만 이분들처럼 온 가족이 매달려 농사를 짓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지게를 지고 파랗고 기다란 호스를 끌고 가는 장면은 밭에 물을 주기 위함이다. 당신의 아내는 산길에 노점을 열어 놓고 쪼그리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으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조팝나무며 산벚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숲에는 봄의 요정들이 막 기지개를 켜고 눈부신 표정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나는 거의 매일 아침 하니와 함께 이 길을 따라 대모산 꼭대기를 다녀오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 오며 가며 만난 요정들을 카메라에 담아 두었더니 적지 않은 분량의 기록이 남았다. 평범한 이 기록들이 장차 빛을 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마침내 요정들의 표정과 함께 브런치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 수 있게 된 것이다. 




산벚꽃에 매달린 그리움


   서기 2021년 4월 19일 아침(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날씨는 우중충하다. 한 며칠 햇볕이 쨍쨍 내리쬐더니 봄비를 내놓고 다시 구름을 끼게 만드는 변덕쟁이가 하늘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날 가만히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를 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내 앞에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별로로 여기는 풍경이 내겐 그 어떤 보물단지 보다 귀한 것이다. 그곳에 암울한 코로나 시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힘을 굳이 표현하면 <그리움>이다. 만약 사람 사는 세상에 그리움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사람들이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다면 그리움은 메마르기 쉽고 깨지기 쉬운 마음의 생수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앞에 오롯이 드러난 브런치의 모습은 코로나 때문에 바닥나기 쉬운 갈증을 채워주는 것이랄까.. 매일 열어보는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는 관련 포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자(18일) 이탈리아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 12.694명)와 사망자 수(251명)는 모처럼 하향세를 기록하고 있다. (Coronavirus in Italia, il bollettino di oggi 18 aprile: 12.694 nuovi casi e 251 morti)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는 코로나의 결과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표현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떠올리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살아남은 자에게는 타인의 불행이 행복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참 이율배반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와 나는 딱 이맘때 우리가 즐겨 다니던 서울 강남의 대모산에 스케치 여행을 떠났다. 아예 수채화 도구를 챙겨 들고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명소를 찾아 나선 것이다. 



산벚꽃은 그냥 벚꽃(?) 보다 개화 시기가 늦은 반면에 싱그러운 잎과 상큼한 꽃잎이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꽃이다. 벚꽃이 아가야의 매무새를 닮았다면 산벚꽃은 청순하고 섹시함 등을 고루 갖춘 여인을 닮은 것이다. 



하니와 나는 그런 산벚도 좋아했지만 브런치를 열면 드러나 보이는 대모산의 풍경도 너무 좋아했다. 연둣빛 술과 산벚과 몽실몽실한 숲이 한데 뒤엉켜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자 황홀경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주로 아침에 봐야 제 멋이며 사진 찍기에 알맞은 시간이다. 



우리가 좋아했던 산벚꽃 명소에 이르러 사진에 담으려 하자, 한 등산객이 카메라 앞을 막으며 "오모나 오모나"하면서 실례를 무릅쓰고 휴대폰에 담는다. 산벚꽃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어느 여인네까지 홀딱 반하게 만드는 것. 하니는 산벚꽃 아래서 봄의 요정들이 내뿜는 신선하고 생명력 넘치는 기운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구룡산 정상까지 다녀온 한 여인이 산벚꽃을 바라보며 하산길을 멈춘 장면이 뷰파인더에 포착되었다. 누구든지 이맘때 전국의 산하에서 피어나는 산벚꽃은 매력 덩어리이다. 브런치를 열어 다시금 당시의 풍경을 봐도 그리움이 수채물감처럼 뚝뚝 마음밭에 떨어지는 것이다.



봄이 오시면.. 4월이 오시면.. 우리는 봄의 요정들을 만나러 들로 산으로 소풍을 떠나거나 여행을 떠난다. 우리도 그랬다. 그런데 참 다행한 것은 서울에 사는 동안 무시로 마음만 먹으면 봄의 요정들을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만난 풍경들이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대모산 자락의 모습이다. 코로나 시대를 잊게 만들거나 대항하는 그리움이 오롯이 묻어있는 곳. 날씨가 흐리멍덩한 바를레타의 아침을 기분 좋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풍경이 사진첩에서 숨을 죽이고 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봄이 오시면.. 4월이 오시면, 대모산 자락으로 향하는 나의 동선은 거의 고정된 상태였다. 서울에서 가까운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와 대모산 청계산 그리고 북한산 등지가 발품을 팔았던 곳. 그러나 대모산 자락처럼 아기자기한 곳은 아니었다.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대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 그곳을 먼 나라에서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대모산 자락이 아름답다고 한들 그리움의 진정한 주인공이 빠지면 다 무슨 소용이랴.. 



이 산자락에 매일 나 혼자 발품을 팔고 다녔다면 그리움은 반감되던지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좋은 것이 있으면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나누면 행복이 배가 되는 이치랄까.. 



아침햇살이 산자락 곳곳을 이 잡듯 비출 때쯤이면 세상은 천국으로 변하게 된다. 신의 그림자가 대모산을 온통 휘감으며 당신의 존재감을 일깨우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그의 저서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가 말한 신은 모호했다. 이데아의 세계를 둘로 나눈(이상계와 현상계) 것과 종교가 나눈 이분법(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을 당신의 방법으로 간파한 것이다니체는 종교가 추구하는 절대 선(善)이나 초월적 가치가 이미 붕괴되었고, 사회를 제도하고 규율하는 역할과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입버릇은 그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세상에 신은 없다"라고 판단하게 될 것. 그런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남미 최초의 노밸문학상 수장자인 브리엘라 미스뜨랄은 <예술가의 십계명>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첫째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봄이 오시면.. 4월이 오시면, 세상에는 신의 그림자가 가득하다. 그곳에 나의 그림움이 깃든 것이다.


Ecco come arriva la primavera_il Monte DEMO, Seoul COREA
il 19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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