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계곡 함양 산자락에 봄이 오시면
그 언덕 위에 서면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보인다..!!
브런치를 열면 맨 먼저 두릅나무 순이 삐죽삐죽 삐져나오고.. 느티나무 고목이 틔운 새싹이 따사로운 봄볕을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나타난다. 이곳은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그야말로 삼박자를 두루 갖춘 대한민국 최고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지리산 자락 함양의 어느 골짜기이다.
우리 속담에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하니와 화우들은 날 좋은 봄날 주말이면 바쁘다. 화구를 챙겨 들고 어디로든지 찾아 떠나는 것이다. 떠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화우들 중에 언니 동생 하며 지내는 분들과 함께 떠난 곳이 포스트에 등장한 정자가 있는 곳이다.
지리산 주변은 하니와 여러 번 다녀왔던 곳으로, 당시만 해도 서울을 떠나 지리산 자락으로 둥지를 옮길까 싶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서울은 이미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서서히 떠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결국 일을 저질러 이탈리아로 둥지를 옮긴 것이다. 세상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그런 것 같다. 그 어떤 꿈이든 마음속에 그리는 순간부터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꿈을 꾸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것이다. 따분한 일상.. 하니와 함께 수채화 여행을 떠났던 두 분은 하루라도 집에 머물면 발바닥에 가시가 돋치는 사람이랄까..
(위에서부터 스크롤을 내리는 순서대로) 나는 이곳에 도착한 즉시 화구 준비를 도와준 직후부터 곧 화폭에 담아질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으로 다가갔다. 그때 담은 풍경들이 오늘 포스트의 주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들은 천 차 별 만차 별이다. 당신이 잘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어딨냐?'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런 곳은 세상에 없으니 대충 살아가면 편하거야"라고 말하는 것일까..
까발레또(Cavalletto, 이젤)를 준비하는 분홍색 차림이 나의 브런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하니..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이때는 코로나 19가 등장하기 전.. 쨍쨍한 봄볕을 가릴 뿐이었는데..
대한민국이 좁아터진 것 같아도 갈 곳은 넘쳐난다. 특히 봄가을이 오시면 전국 방방곡곡의 산과 강 그리고 바닷가는 금수강산의 유명세를 그대로 닮았다. 비록 일제의 수탈이나 전쟁의 흔적이 남았다고 하지만 갈 데는 천지 빼까리인 것이다.
서기 2021년 4월 19일 오후(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꾸무리 하던 아침의 날씨가 거짓말처럼 화창 화창.. 쨍쨍하게 개였다. 눈이 부셔서 도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여서 지그시 눈을 감고 바라봐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탈리아에서 느끼는 향수 중에는 이런 풍경이 지배적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인류문화유산을 가진 이탈리아에 이런 풍경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렌체서 살 때는 피에솔레(Fiesole)의 작은 골짜기를 흐르는 냇가에서 한국의 봄에 느꼈던 향수를 달래곤 했다.
그리움을 살살 달랠 뿐이었지.. 울음을 뚝 그치듯 마음에서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한 주일이 새로 시작되는 월요일 오후에 코로나 시대를 달래줄 수 있는 수채화 여행 필름을 찾아 나선 것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희한한 일이다. 코로나 시대에 인터넷이나 브런치가 없었다면 어쩔 뻔 했는가 하는 말이다. 하루 24시간을 503호의 여자 사람이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처럼 멍하니 벽만 바라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봤던 책 또 보고 또 읽어가면서 도를 닦아본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얼마나 지겹겠는가 하는 말이다.
세상 살아보니 인생들이 남기는 결과물은 하나같이 별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날 코로나 19라는 미생물 앞에서 두 손을 들고 마는 것이다. 또 어떤 녀석들은 스스로 적폐 세력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들통난 정체성을 가려보려 애쓰는 것이다. 마치 냥이 집사가 풀잎 뒤에 숨어서 자기 몸을 가리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에 어떤 일을 해야 옳다는 말인가. 당신을 좀 더 고상하게 지식이나 철학이나 종교나 유명세나 돈벌이 등으로 포장하면 나아질까.. 아니더라. 오죽하면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것은 없다고 자위하며 살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뒤늦게 배운 언니들의 수채화 그리기처럼 나의 하루 24시간은 브런치에 글 쓰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녀석들 중 권력이나 명예욕 재물욕에 심취한 사람들은 "글 쓰는 것은 낫냐?"라고 반문할 것이다.
낫고 말고.. 나는 "당근이쥐"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웃을 조금이라도 더 이롭게 하지.. 코로나를 잊기도 하지.. 행복하기도 하지.. 성취감도 느끼지.. 소통도 하지.. 존재감도 느끼지.. 가끔씩 자랑질도 할 수 있지..ㅋ
포스트를 준비하는 동안 하니로부터 메신저가 울렸다. 카톡이 까똑까똑 하고 울려야 했지만 피렌체서 그 소중했던 나의 아이폰을 잃어버린 것이다. 처음으로 가슴 아픈 고백을 한다.ㅜ 하니는 내게 "지금 머해"하고 물었다. 그래서 "응, 우리가 다녀왔던 함양의 수채화 여행 풍경을 보고 있어욤"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 내 그림 거기(사진첩)에 있는지 좀 봐조욤"하고 말했다. 그때가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남긴 작품은 기록해 두지 않았다. 당신의 추억이 삼박자를 고루 갖추간 했지만, 지금 그녀와 내게 하니씩 빈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이탈리아에 그녀는 한국에.. 그래서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없다고 했던가.. 어이쿠야!! ㅜ
Quando arriva la primavera nella valle del monte JIRISAN
il 19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