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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23. 2019

철길 위 꽃의 요정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비나리오에서  

세상을 가리는 건 무지가 아니라 깨달음에 가까운 유식때문이겠지..!


얼마 전의 일이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눈에 띄는 작고 샛노란 꽃을 발견했다. 녀석이 위치한 곳은 철길 한가운데로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비나리오(Binario_플랫폼)에 서면 철길 옆으로 노란선이 그어져 있는데 하루 종일 안내방송을 통해 노란선을 넘지 못하게 한다. 또 철길 옆에는 철로를 횡단하는 일을 절대 금하는 경고문이 쓰여져 있다. 만약에 일어날 사고에 대비해 주의를 요하고 있는 것. 비나리오를 서성이며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꽃의 요정이 나를 철로 위로 "어서 오라"고 손짓한 것이다. 나의 그의 부름에 따라 좌우를 살피며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는지 살핀 즉시 철로 위로 향했다. 그리고 미소를 띠며 포즈를 취한 꽃의 요정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후다닥 다시 비나리오 위로 올랐다. 그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녀석들을 살펴보니 여간 대견스러운 게 아니었다. 녀석들이 살고 있는 곳은 하루 종일 기차가 다니는 곳이지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자기들 만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 




아마도 이들 요정들은 피렌체를 찾는 세계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차림도 가지각색 모양도 가지각색 언어도 가지각색..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그렇지만 사람들은 바쁘고 무심하다. 피렌체를 찾는 사람들 다수가 르네상스를 일군 예술가들에 한눈이 팔려 철길 위의 요정들에게 눈길 조차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략 600년 전쯤 지구별에 일어났던 한 사건에 열광하는 한편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던 길을 돌아 집으로 향했다. 



피렌체의 일상은 현재의 모습을 통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 사람들은 과학이 최고조에 이른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더 이상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피렌체에 살고 있는 동안 이 같은 현상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때 사람들은 인간의 미래 혹은 지구별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세상이 손바닥 위에 올려진 현대에 호기심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누군가 깨달음을 얻으면 대단한 인물로 여겼지만 요즘은 그런 인물들의 존재 조차 희미한 시대로 변했다. 인간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일이나 최고급 비밀로 여겨졌던 정보들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삶의 연식을 더하면 더할수록 세상사는 재미는 당신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랄까. 



사람들은 오래전 그리스 신화 속의 판도라 까마득히 잊고 사는 것 같다. 현대인들은 현자 이상으로 지나치게 똑똑하여 모든 일을 당신의 지식만으로 헤아리려 드는 것. 세상살이가 얼마나 정확한지 바늘 끄트머리 조차 들어갈 틈이 안 보일 정도이다. 그런 세상에서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가 무슨 대수겠는가. 


그런데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눈여겨본 현상이 있다. 이탈리아 어디를 가도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는 물론 나무 한 그루 조차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이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등한시 여겼던 각종 식물들이 이웃으로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 것. 예컨대 문 앞 혹은 담장 옆에 자라고 있는 풀꽃들은 절대로 함부로 제거하는 법이 없다. 만약 이 같은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발견됐다면 어땠을까. 


"어이 김대리, 저거 눈에 안 보이나. 당장 직원들 동원해 풀을 뽑도록.. 외국인들이 보면 뭐라 하겠나. ㅉㅉ"



Le fete della Ferrovia FIRENZE
La Stazione della Santa Maria Novell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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