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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19. 2021

해님과 숨바꼭질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의 해돋이

숨바꼭질해 보셨나요..?!!



   서기 2021년 7월 18일 일요일 오전 04시 30분.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서서히 해돋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래된 도시를 가로지르는 시간은 10분이면 족하다. 그런 잠시 후 나는 아드리아해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바닷가에서 걸음걸이 속도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 "오늘은 몇 장면만 카메라에 담자"라고 생각하고 셔터를 아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은 달라진다. 산책로 곁에서 흘깃 바라본 아드리아해 위에는 그 어떤 예술가도 흉내 내지 못할 조물주의 걸작이 나타나는 것이다. 매일 다른 모습들.. 나는 이때부터 길들여진 습관에 따라 자꾸만 해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장엄하다. 경이롭다. 신비롭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형용사는 매우 제한적이다.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낱말은 그저 아름답다는 말 외에 어떤 수식어가 필요할까..



이날은 시원한 날씨 이상으로 쌀쌀했다. 간밤에 비가 오시더니 바닷가 날씨 조차 썰렁했다. 집을 나서기 전 혹시나 하고 우산을 챙기고 외투까지 챙겼다. 나는 내심 비기 오시면 그 장면을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 늘 만나는 평범한 풍경 가운데 비라도 오시면 보다 동적이며 감성이 풍부한 해돋이를 건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운동을 시작하면 나의 시선은 늘 해돋이를 향하고 있다. 내 사랑 해돋이.. 해돋이에 길들여진 나는 해님이 초인종을 누르고 얼굴을 빼꼼히 내미는 모습을 늘 생각하고 있다.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 어느 날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콩닥콩닥..



그게 그리움을부터 발현된 현상이라는 것을 알 때쯤이면 세상을 오래도록 살았던 흔적이 묻어난다. 무슨 일이든 당신의 경험칙에 따라 해석되고 반응되는 시간들이 유치함을 멀리하고 있는 것이다. 유치함..



나는 해돋이가 시작될 무렵부터 유치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뻔한 일에 감동을 하고 웃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하는 것이다. 한 때.. 숨바꼭질이 그러했지.. 



그게 얼마나 유치한 놀이인지 어른들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산다. 내가 아드리아해 수평선 너머에 드리워진 새까만 먹구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해님이 원치 않았던 술래잡이.. 이날은 해님이 숨바꼭질을 하며 나를 애태우고 있었다. 이미 해돋이 시간은 지났지만 해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잠시 후 해님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영상, BARLETTA,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해님과 숨바꼭질




숨바꼭질.. 발칙한 작당이 숨바꼭질에 잦아들었다. 유년기.. 그때 한 형아가 제안을 해 왔다. 밤중에 하는 숨바꼭질에서 한 친구를 난처하게 만드는 괘심 하고 나쁜 숨바꼭질이 시도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술래는 동네서 따돌림을 받는 이른바 '왕따' 친구였다. 형아는 이렇게 제안 헸다.



"얘들아, 쟤가 열을 세는 동안 가까운 곳에 숨지 말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알찌?!"



그 친구는 잠시 열을 세고 난 후부터 술래가 되어 친구들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명의 친구도 찾지 못한 채 동네를 서성거릴 것. 친구를 골려먹는 재미에 빠진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 지들끼리 키득거리다 단잠에 빠져든다. 해님도 그러했을까..



나는 해님이 얼굴을 내미는 시간을 미리 알아두었지만, 이날 해님은 영상의 길이만큼 나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그런 잠시 후 해님은 화장을 고친 어여쁜 얼굴을 내게 보여주신다. 회려하고 우아하고 생기발랄한.. 그 어떤 수식이 필요 없는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내 앞에서 자꾸만 치근덕 거린다. 그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고기잡이에 나선 낚시꾼이 입질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해님을 그는 물고기를.. 



매일 만나는 당신.. 매일 만나면 지겨울까.. 희한한 일이다. 매일 만나면 만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



하니에게 인증숏을 보낸 후 전화를 했다. 매일 전하는 안부에 똑같은 말 대신 색깔을 조금 바꾸어 보았다.


"당신이 너무 보고 시포요..!!"



전화기 너머에서 해님처럼 좋아하는 표정이 전해져 온다. 먼 나라에 숨어있던(?) 그녀의 표정이다.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Giocare a nascondino
il 18 Lugl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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