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슴에서 지울 수 없는 여행지
아름다운 것들은 할큄을 많이 당해야 하는가 봐..!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아침, 작지만 가파른 언덕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름다운 풍경들이었다. 피츠로이 산군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한결같이 대자연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사람들이 발을 땅에 딛지도 못할 정도여서, 자칫 바람에 날아갈 수도 있을 정도라면 쉽게 믿기지 않을 것. 우리나라에서 태풍이 불어올 때 이와 비슷한 현상이 발견되곤 했지만, 이곳에서 우기가 시작되면 바람은 일상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두고 '바람의 땅'이라고 불렀다. 바람 앞에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나 할까.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쳐도 살아남아야 했기에, 이들은 바람에 맞서 대항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고 또 낮추었다. 그것도 모자라면 자기의 껍질까지 내주면서까지 생명을 지켰다. 모진 바람 모진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이들 앞에 나타난 것은 뼛속까지 드러난 생채기들. 바람이 얼마나 세게 할퀴었으면 바람 잘 날 없던 시간 속에서 당신의 팔이 뼈만 남기고 모두 바람이 앗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고, 이를 악물고 또 견딘 끝에, 세상을 사는 방법을 터득한 그들에게 하늘은 크나큰 선물을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상을 드러내 놓은 것. 나는 이들을 보는 순간 단박에 "너희들이 삶의 표본이야..!!"라고 속으로 외쳤다.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네 삶과 너무도 흡사한 자연의 현상을 보는 순간 아름다움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데 있지 않고 속으로 감추어져 있구나 싶은 생각들.. 아내는 저만치 앞서 가는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지닌 풍경 앞에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깔라파떼 근처 비에드마 호수로부터 날이 밝아오자 엘 찰텐은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눈을 머리에 인 안데스 자락은 아직도 붉은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라구나 또레로 가는 길이 평지처럼 이어졌다. 사람들이 얼마나 이 길을 오갔는지 산길은 움푹 패였다. 15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저토록 깊이 패이지 않았건만 그 사이 사람들은 엘 찰텐의 매력에 빠져 수도 헤아릴 수 없는 발도장을 찍었나 보다. 나는 죽기 전에 이곳에서 촬영한 여행 사진을 아내의 수채화 그림과 함께 전시해 여러분들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결국 내 몫이 아니었다. 거세고 차디찬 바람 앞에서 당신을 전부 내준 자연처럼 대가없는 나눔이나 공유가 더 바람직 했던 것. 일찌기 내가 좋아했던 가브리엘라 미스뜨랄(Gabriela Mistral)의 가르침 "예술가의 십계명"처럼 작품의 전시를 통해 동정성을 잃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비록 발품을 팔았지만 그저 얻은 작품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며 감상하기로 한다. 나는 그저 카메라를 손에 들었을 뿐 자연이 내게 배푼 최고의 작품들이다.
너무 아름답구나 할 말이 없네..!
È così bello, non ho niente da dire..!
<계속 이어집니다>
Senda a Laguna Torre ARGENTINA
Parque Nacional Los Glaciar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