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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ug 04. 2021

나의 놀이터에서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의 해돋이

어린이 놀이터가 아니라 어른이 놀이터..?!!


   아침마다 해님을 만나면서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다. 집을 나서는 시간은 일정한데 해돋이 시간은 점점 더 늦추어지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내가 찜해둔 해돋이 포인트에 도착하면 그때까지 해님이 뭉기적 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해님이 수평선 너머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미는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목도 가다듬을 겸 해님이 숨어있는 곳을 향해 야~호 하고 목청껏 외쳐봤다. 


요거.. 생각보다 괜찮았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바닷새들이 소리에 놀라 날갯짓이 빨라지거나 파도가 움찔거릴 리는 없다. 한두 번 소리를 질러 보니 처음에는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캑켁.. 혼자 씩 웃다가 다시 소리를 질러본다. 그렇게 해님을 기다리는 동안 맨손체조도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다. 최초 3분 정도에서 5분.. 7분으로 시간이 늦추어지면서 이번에는 새로운 놀잇감을 찾았다. 그 현장으로 가 본다.



나의 놀이터에서




   서기 2021년 8월 3일 새벽 4시 반,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새벽 공기는 오븐에 살짝 데운 듯하다. 다행인지 바람이 적당히 불었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자동차들이 숨죽이고 줄을 서 있고 길냥이의 걸음걸이는 느긋하다. 저만치 아드리아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서면 가로등 불빛 뒤가 새까맣다. 산책로에 들어선 다음 부지런히 걸으면 종려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게 된다. 



도로에는 인적이 끊긴 가운데 청소부들이 오락가락하는 게 눈에 띈다. 30분 후 나는 종려나무 가로수 길 끄트머리에 도착하게 된다. 시간은 새벽 05시 전후.. 사방은 새까만 가운데 휴대폰이 손전등을 켜고 걷기 시작한다. 이때 먼 데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 보일 말락 한 샛별.. 미세한 흔들림에 피사체들이 아름다운 기하학을 연출한다. 달님은 머리 꼬대기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서쪽에서 솟아올라 동쪽 하늘 꼭대기로 이동하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반쪽이 됐다가 배가 쏙 들어갔다.



수평선 너머에서 발그레한 알갱이들이 아드리아해 위로 마구 쏟아져 내린다.



나는 어느새 반화점(5km)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데이트에 나선 청춘들이 반환점에 서 있다가 슬며시 자리를 뜬다. 나는 매일 아침 자동차 전조등이 비친 바로 앞까지 간 다음 인증숏을 사진과 영상에 주로 담곤 했다.



아드리아해는 착하디 착하다. 호수보다 더 착한 바다.. 그곳에서 착한 남자 사람 1인의 놀이터가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어른이 놀이터.. 그곳은 나 혼자만의 놀이터이자 해돋이 뷰포인트이다.



이곳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매일 이곳을 다녀가지만 해돋이 시간만큼은 나의 차지가 된다. 등기도 필요 없는 곳.. 이 장소가 하니와 나를 이어주고 있었던 기다림의 장소이자 그리움의 공간이었다. 



나는 마침내 맨손체조를 끝마치고 해님과 독대할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수평선 너머에서 꽃단장을 하고 있는 해님의 모습이 뷰파인더에 비친다. 발그래..



발그래한 해님.. 바닷가에서 해님을 기다리는 남자 사람 1인.. 



언제부터인가 나는 바닷가의 돌무더기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숨죽이고 뷰파인더와 그 너머를 번갈아 보게 된다. 그 시간은 무념무상이라고 했다. 오직 나의 놀이터에서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하며 대략 10여 분간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영상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il 03 Agosto 2021 나의 놀이터에서




이날의 해돋이 느낌은 많이 달랐다. 매일 바라보는 해님이지만 마음 상태에 따라 느낌도 달라지는 것이랄까..



해님이 얼굴을 내미셨다.



희한한 일이다. 해돋이가 시작되면 바닷새가 나의 놀이터 앞을 얼씬 거리는 것이다. 갈매기도 있었지만 정체불명의 바닷새들이 오락가락하는 곳. 그들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간밤에 띵~ 띵~ 하는 소리가 휴대폰에서 울렸다. 잠결이었다. 메시지가 도착하면 울리는 휴대폰.. 잠결에 그냥 지나쳤다. 설령 어떤 메시지가 도착했다 해도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시간.. 생전 처음으로 (내가 알고 지내는) 스님이 꿈에 나타나기도 했다. 당신의 사찰에서 엎드려 절을 하는 꿈.. 하늘에는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나의 뷰파인더를 놀라게 했다.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다. 아무튼 길몽이었다. 



해돋이가 시작되고 난 다음 집으로 돌아갈 시간.. 조금 전까지 해변으로 오락가락하던 파도가 저만치 물러났다. 밀물과 썰물의 변곡점.. 나는 바닷가 돌무더기를 오락가락하는 작은 물체를 발견했다. 평소 그냥 지나쳤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다. 



엄지 손가락 반쯤 되는 게들이 나의 눈치를 살피며 돌 틈으로 숨어드는 것이다. 녀석들.. 너희들 잘 못 판단했지 싶은 생각을 하며 씩 웃었다. 바닷가의 생태를 오랫동안 관찰했던 유년기의 나는 녀석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단박에 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 돌을 뒤집자 놀란 녀석들이 혼비백산.. 



녀석들은 목숨이 오락가락할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어른이 놀이터의 남자 사람 1인은 재밌다.



돌덩이 하나를 뒤집을 때마다 한 두 녀석이 숨어있다가 혼비백산..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간밤에 온 메시지가 생각나 돌덩이 뒤집듯이 휴대폰을 열었다.



그곳에 희소식이 담겨 있었다.



메시지는 총 3장의 사진이었다.



이틀 전 하니가 "이탈리아행 뱅기표를 예매하러 간다"라고 한 결과물이 e-티켓으로 도착해 있는 것이다. 나의 놀이터에서 만난 희소식.. 날짜를 보니 정확히 8일 후면, 잠시 해님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해님 대신 그녀.. 갑자기 바빠졌다. 여왕님의 의전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참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날아온 희소식이다.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il mio parco giochi
il 03 Agost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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