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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ug 05. 2021

D-7, 생각이 달라졌어요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의 해돋이

우리의 존재감은 어디서부터 비롯될까..?!!



   서기 2021년 8월 4일 05시 정각쯤,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종려나무 가로수가 끝나는 지점에 다가와 있다. 이른 아침 오전 04시 30분 집에서 출발하면 대략 30분 전후에 빛과 그림자가 교차되는 지점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동안은 가로등 불빛에 의존했지만 이때부터는 휴대폰의 프레시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새까만 밤하늘.. 발 밑 도로 조차 형체가 불분명하다. 이때 나를 인도해 주는 불빛은 겨우 눈에 띄는 샛별과 달님이다. 그렇다고 해도 달님과 샛별이 나의 앞 길을 밝혀줄 리가 없다. 달님은 머리 위 하늘 높이 올라가느라 반쪽 이하 뱃살이 홀쭉했다. 



서쪽 바를레타 평원 위에서 모습을 보인 이후 점점 더 작아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샛별님은 언제나 똑같은 표정이다. 존재감이 없지만 겨우 가느다란 빛을 비추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다. 새벽 05시가 가까워지면 그나마 해님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세상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난다. 



해님이 화장을 고치는 사이 까만 밤에 잘디 잔 빛의 알갱이들이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드는 것이다. 나는 그 속을 헤집고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이때 들리는 소리도 있다. 저만치서 딸깍딸깍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잘생긴 외모의 부지런한 삽비나가 산책로 곁에 있는 휴지와 오물들을 챙겨 커다란 비닐 봉지에 담는 소리이다. 



그는 매일 아침 오전 04시가 되면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 2.5km부터 시작해서, 나의 아침운동 반환점인  2.5km까지 널브러진 휴지나 오물을 수거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날 아침 그는 딸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게 들려주었지만, 최근 일주일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는 금년 81세의 고령의 나이로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자, 매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라파엘레.. 매일 안부를 묻고 반환점 주변에서 만나던 그가 어느 날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가 보이지 않은 이유는 짙은 어둠 때문이라고 생각하다가..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게 어느덧 일주일이 흘러간 것이다. 매일 만나던 사람이 일주일간의 공백을 보인다면 당연히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반드시 좋은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석연치 않은 일이 당신에게 다다른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와 만나던 장소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가 내 앞에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게 어느덧 일주일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희한한 일이다. 처음에는 당신이 안 보일 때 궁금했지만 시간이 얼마만큼 지난 후에는 체념을 하는 것이다. 나의 바람과 달리 당신은 딴짓(?)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나는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나의 해돋이 놀이터에 도착했다.



영상,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il 04 Agosto 2021 생각이 달라졌어요




썰물이 지나간 자리 위로 해돋이가 시작됐다. 내가 다시 망부석이 되는 시간이자 행복한 기다림이 이어지는 시간이다. 아드리아해 수평선 너머에서 해님이 얼굴을 내미는 순간부터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은 무념무상.. 사람들이 행복할 때는 세상 모든 일을 하얗게 지울 때가 아닐까.. 머리와 가슴속에서 맴돌던 사유가 말갛게 포맷(format)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잊을 건 잊고 지울 건 지워야 하는 세상사..



D-7, 생각이 달라졌어요




해돋이가 시작되면서 내 가슴속에 환희의 물결도 동시에 사부작 거렸다.



이역만리.. 머나먼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날아든 희소식 때문에 멀게 느껴졌던 시공이 코 앞에 닥쳤다.



그녀가 뱅기표를 예매하는 순간부터 그렇게 멀게 보였던 공간이 코 앞에 닥친 느낌이 드는 것이다.



D-7...



여왕님이 납실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겨우 일주일 남짓한 것이다. 믿기지 않은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오늘 오후, 생필품을 구입하고 가까운 마트로 가는 길에 저만치 앞에서 낯익은 사람이 눈에 띄는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만났던 라파엘레였다. 너무 반가워서 손을 흔들며 좋아했더니 그도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가 사는 곳은 집에서 꽤 먼 곳인데 시내 중심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대략 10m쯤이나 될까.. 



그의 얼굴 전체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겼지만 나는 그의 표정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낮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해님 보다 더 발그레했다. 가까이서  주먹 쥔 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세히 들여다본 그의 얼굴에는.. 매일 아침에 만나던 건강한 표정이 사라지고 곧 그간의 공백 상태를 말했다. 



그간 사정을 들어보니 그가 보이지 않을 때쯤 어떤 문제로 쓰러졌다. 그의 오른쪽 팔에는 링거를 맞은 주사 흔적이 남아있었다. 주사 자국 위에 거즈를 붙여놓았던 것이다. 그는 바를레타에서 가까운 안드리아의 한 병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평소 산책로에서 만난 그는 81세가 무색해 보일 정도로 건강했다. 그런 그가 과신을 했던지 전혀 다른 모습을 내 앞에 보인 것이다. 그를 보면서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됐다. 



천지신명.. 나의 빈자리를 채워준 1인이 달님처럼 모습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하니가 꽤어차고 e-티켓을 보내온 것이다. 



오작교.. 평소 만날 때마다 기쁜 표정을 지었던 그는 오작교를 만지작 거렸던 천사였을까.. 해님을 만날 때마다 뷰파인더 앞을 오락가락했던 바닷새 또한 견우와 직녀를 잇는 까마귀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녀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데 정작 내 곁에 있던 사람과 달님은 점점 멀어지며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 그렇거나 말거니 해님은 당신의 길을 가고 있다.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Un'idea diversa
il 04 Agost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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