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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ug 10. 2021

D-2, 내 영혼이 은총 입어

#80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우리네 삶에 감사함이 부족할 때 생기는 일..?!!



하니와 나는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의 쉼터 리푸지오 아우론조(RIFUGIO AURONZO)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돌로미티 곳곳에 만들어 둔 벙커로 향했다. 



고도를 조금씩 높이자 산중에 지어놓은 기도처 곁 그늘에서 여행자들이 간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우리는 조금 전 쉼터 곁에 있는 천혜의 호수를 감상한 바 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조물주의 작품..



가파른 오솔길 곁에는 풀꽃들이 아우성이다. 나는 돌로미티에서 만나는 풀꽃들이 이곳에서 죽어간 넋이 환생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 고산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오스트리아 군대는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의 거대한 암벽 정상을 대부분 점령했다. 돌로미티의 거대한 암벽은 뛰어난 요새이자 장벽 역할을 한 것이다. 그때 뜷어놓은 철옹성 같은 벙커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전령사 돌로미티 까마귀 한 마리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아래.. 보랏빛 풀꽃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돌로미티 국립공원이 이탈리아의 땅으로 변했지만 전투 중에 죽어간 사람들의 넋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돌로미티의 대표선수 격인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세 봉우리를 눈에서 떼지 못하고 있다.



벙커가 건설된 주변에는 풀꽃들이 대합창을 하고 있다. 고도를 높여도 풀꽃 요정들은 나를 따라다닌다.



이곳 벙커에서 근무했던 군인들은 매일 세 봉우리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리며 장차 머리를 뉠 곳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군인의 길은 조국을 지키는 일로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지만, 짬짬이 고향에 두고온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테지만 불귀의 객이 되어 하늘나라로 간 사람들..



그들의 수고와 목숨으로 바꾼 땅을 풀꽃들과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돌로미티뿐만 아니라 세상에 널린 모든 것을 사랑한다. 사랑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 일이 잦으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아름다움만 찾게 된다.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



무신론자는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이 유신론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은 <예술가의 십계명>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무신론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



예술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당신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려면 신을 섬기는 일이다. 신을 섬기는 일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돌로미티에 빼곡한 신의 그림자.. 만약, 당신의 마음속에 신의 그림자가 자리 잡을 수 없을만치 황폐하다면.. 그리하여 행복하지 않게 된다면 언제인가 가슴을 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우리네 삶에 감사함이 생략되거나 날마다 당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습관에 길들여지면 불행한 삶이 아닐까..





   서기 2021년 8월 10일 아침,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아침 기온이 28도씨로 시작했다. 오늘 아침은 매일 다니던 아침운동을 생략했다. 집을 나서는 시간에 하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D-day를 앞두고 최종 점검을 하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일에 대비를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일 아침이면 아이들이 총동원되어 엄마의 먼 나라 여행을 도울 것이다. 


그렇게 말렸건만.. 결국 그녀는 케리어 두 개를 준비했다. 그 가운데 김치도 포함됐다. 그녀는 인천공항에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이동한 후 환승을 하여 로마 공항으로 입국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내일 아침부터 여왕님을 모시러 로마로 떠나게 된다. 



통화를 마친 후 사진첩을 열어 돌로미티의 장엄하고 신묘막측한 풍경을 만나고 있다. 그곳에는 작년 이맘때 함께 걸었던 장면들이 사진과 영상에 남아있었다. 그녀가 이탈리아로 돌아오면 맨 먼저 가 보고 싶은 곳이 돌로미티이다. 그녀는 "바람처럼 살고 싶다"며 잊을만하면 말하곤 했다. 그런 그녀를 10개월 동안 무사히 지켜준 하늘에 감사한다. 



영상, DOLOMITI, RIFUGIO AURONZO E TRE CIME DI LAVAREDO 돌로미티 19박 20일




사진첩 속에는 신의 그림자가 빼곡하다. 내 영혼이 은총을 입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 매일 내 곁으로 동행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새 세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영혼들이 머문 자리 벙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한 쌍의 연인들이 세 봉우리를 향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 이어진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TRE CIME DI LAVAREDO
il 10 Agost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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