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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ug 14. 2021

D-Day, 오작교와 여왕님

-이탈리아, 바를레타-로마 공항으로가는 중부 고속도로 풍경

해님에게 소원을 빌어봐 봐..?!!



   매일 아침 해님을 만나는 동안 나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꿈같은 일이 현실로 바뀐 것이다. 지난해 10월 23일 코로나-19를 피해 잠시 한국으로 도피했던 하니의 귀국 날짜가 점점 더 늦추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이탈리아의 코로나 상태는 절정에 이르기도 했다. 한국으로 도피 여행을 떠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그녀의 이탈리아행 귀국이 점점 더 늦어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직항 편은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거기에 해외여행 시 반드시 백신 접종을 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은 여타 선진국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또 백신 접종은 한 차례에 끝나지 않고 두 차례에 나누어 접종해야 했으며, 확신서 등의 절차를 받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이 같은 조치 등으로 한국에서 해외로 여행을 떠날 때는 상당한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구글 지도로 본 여정은 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서 로마 공항까지 거리는 대략 376km로 이동시간은 4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장 빠른 길이자 고속도로로 이동하는 시간이 4시간이었다. 그러나 7시간이 소요되었다. 폭염 때문이었다. 이날 시칠리아의 수은주는 섭씨 48.8 씨를 가리키고 있었으며, 이탈리아 중부 고속도로는 운행에 차질을 줄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



DA BARLETTA A ROMA, 이탈리아 바르레타-로마 공항으로 가는 중부 고속도로 풍경




그동안 그녀는 건강검진을 통해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했다. 그녀가 바를레타로 다시 귀국하거나 내가 현지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그녀의 소원 때문이었다. 죽기 전에 그림 수업을 끝내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건강검진을 통해 그녀는 두 눈을 보다 밝게 볼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 시력이 나빠졌던 이유가 백내장 초기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유명 안과에서 두 번에 걸쳐 백내장 수술을 받는 등의 절차를 마쳤다. 눈이 이전보다 확실히 밝아졌다.



그동안 이탈리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매일 아침 해님을 만나면서 점점 더 늦어지고 있는 그녀의 귀국에 대한 조바심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 기간이 무려 10개월이나 걸렸다. 별리 10개월.. 나와 그녀는 어느덧 견우와 직녀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견우와 직녀.. 그들은 1년에 한 번 까마귀가 만든 오작교(烏鵲橋)를 통해 해후하곤 했다. 



브런치에 글이 발행되는 시간은 양력으로 8월 14일이며, 음력으로 칠월칠석에 해당하는 날이다. 일부러 이 날을 맞춘 것도 아닌데 그동안의 별리가 칠월칠석에 맞춘 것처럼 됐다. 하늘의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성과 직녀성 그리고 북두칠성으로 인해 이런 오작교 설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하늘의 별자리 이동을 통해 설화를 만들고 당신들의 바람을 오작교에 빌었던 것일까.. 



매일 아침 아드리아해로 나가는 일은 마치 "몽유병 환자 같다"는 생각을 나의 브런치에 끼적거린 바 있다. 새벽 04시에 기상을 하면 04시 반에 집을 출발하여 10km를 걷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만들어 놓은 해돋이 지점에서 해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것이다. 백일기도나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에서 이탈리아행 비행기 편의 조율이 끝나고 출국 일자가 잡혔다. 그녀가 이탈리아에 도착하는 날짜는 8월 11일이었다. 



그동안 그녀는 한국에서 공수해 올 우리나라 특산물을 캐리어 두 개에 가득 담았다. 항공사에 웃돈을 주면서 가져온 특산물 중에는 우리가 제주도에서 지낼 때 사용했던 전문가용 텐트와 함께 육젓 갈치속젓 명란젓과  된장 막장 김치 등이 빼곡했다. 



비용을 따로 물면서 챙겨 온 추가된 캐리어 하나에는 내 눈에 크게 도드라지는 품목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죽염고추장과 외장하드였다. 이탈리아서 구입할 수 없는 최고의 명품과 우리의 삶을 기록해 둔 외장하드를 챙겨 온 것이다.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하던 기록들이 브런치에서 다시 빛을 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그와 동시에 내 조국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앞서 잠시 언급된 바를레타-로마 공항의 이동시간은 지도상에서 4시간이었지만 실제 운행 시간은 7시간이었다. 이날(11일) 아침, 나는 나대로 바빴다. 먼 나라에서 오작교를 통해 날아들 여왕님의 영접 준비를 한 것이다. 


해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에 우리를 위한 도시락을 준비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빵을 최종적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아이스박스에는 얼음과 과일을 채웠다. 그다음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때 시간이 07시였으며 평소 같았으면 아침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귀가할 시간이었다. 두 해 전에는 기차를 타고 그녀를 맞이했다면 이번에는 이곳에서 구입한 자동차를 타고 로마 공항까지 이동해야 하는 것이므로 고속도로는 초행길이었다.



바를레타에서 로마 공항(FIUMICINO)까지 이어지는 초행길의 고속도로.. 이탈리아서 장거리 여행을 다니면서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됐다. 지명은 물론 현지인들의 운행 습성 등에 대해서도 체득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랄까.. 



다른 점이 있다면 이탈리아 반도 동쪽에서 서북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중부 고속도로의 풍경이었다. 바를레타에서 나폴리로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구릉지대에서 특별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추수가 끝난 듀럼 밀밭의 풍경이 매우 이국적이었으며 창밖에서 실내로 퇴비 냄새까지 풍기곤 했다. 



자동차는 점점 더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가까워졌다. 그동안 휴게소에서 세 차례 쉬었다. 그때마다 시원한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휴게소에 들른 사람들은 대다수 시원한 음료수를 챙겼다. 이날의 온도는 생전 처음 겪는 여름 날씨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왕님이 모습을 드러낼 로마 공항 제3 터미널 2번 출구 근처까지 도착했다. 그때가 오후 2시경이었다. 


로마 공항 제3 터미널 근처 공원 굴다리 아래 풍경.. 자리에 드러누워서 인증숏!


아직 그녀가 도착할 시간이 6시간이나 남았다. 그녀가 입국장에 모습을 나타낼 시간은 오후 8시 13분이었다. 그동안 잠시 공항 근처의 공원에 주차를 해 놓고 자리를 펴고 드러누웠다. 공항 터미널로 이어지는 전철이 다니는 굴다리 아래였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살만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할 때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그녀는 독일의 프랑크프루트 공항에서 다시 전화를 했다. 순조롭게 잘 오고 있으며 30분 빨리 도착했다고 했다. 그리고 비행기가 로마 공항에 도착하는 즉시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 이탈리아행 알리탈리아(ALITALIA) 항공편을 갈아탈 때 마지막 통화를 했다. 독일 프랑 프루트에서 로마 공항까지 거리는 대략 1300KM로 꽤 먼 거리이지만 비행기의 속도가 대략 900km/h란 점을 감안하면 1시간 30분 전후로 로마 공항에 발(?)을 디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로마 공항 지근거리에 있는 휴게소를 찾아 나섰다. 그곳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싶었으며 피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막상 휴게소에 들러 소나무 그늘 아래 주차를 해 놓고 보니 눈이 말똥말똥.. 한국에서 출발한 그녀의 모습을 연상하고 있었다. 희한한 세상이었다. 이곳 시간 새벽 4시에 그녀와 통화를 한 장소는 인천공항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녀는 독일에 도착했고 다시 로마 공항으로 이동 중인 것이다. 나는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다리를 길조인 까마귀가 다리를 놓았지만, 현대에는 그 자리를 비행기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 이동.. 



또 그 공간에는 이웃분들의 염려와 기도가 함께 하며 오작교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이탈리아로 이동하고 있는 동안 나는 바를레타에서 로마 공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견우와 직녀를 잇는 건 현대의 오작교뿐만 아니었다. 그리움 혹은 조바심을 덜어내는 희한한 정치가 휴대폰이었으며 그 속에는 생생한 음성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동차에 기름을 마저 채우고 공항 터미널 지하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여왕님의 출현을 해님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입국장으로 나설 시간까지 알면서도 미리 입국장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로마 공항 제3 터미널 2번 출구를 무시로 빠져나오고 있는 승객들과 가족들의 상봉 모습을 눈여겨봤다. 코로나고 나발이고 재회만큼은 어쩔 수 없었을까.. 



그들은 출구에서 빠져나오는 가족들이나 연인 등과 마주치면 얼싸안고 포옹을 하거나 뺨에 마스크를 비비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여왕님을 떠올리곤 했다. 그녀가 출국장을 나서면 달려가서 꼭 부둥켜안고 안아 주고 싶었다. 그런 한편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챙겨 온 선물들이 궁금했다. 출국 전 이미 전화를 통해 확인되었지만 단박에 실물이 연상돠지 않았다. 



기억하시는가.. 그녀가 이탈리아서 한국으로 돌아간 때는 지난해 10월 23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왕복 3000km에 해당하는 먼 거리를 생전 처음 운전해 봤다. 상상이 가시는지 모르겠다.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한 모험이 강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서부터 스위스를 거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그녀를 모셔다 놓고..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본 이후로 10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풍경.. 이곳에서 몇 분 후면 공항에 도착한다.


아기다리고기다리..그녀는 생각보다 늦게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예정 시각 보다 4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오후 9시경이었다. 손수레에 실은 커다란 케리어 뒤를 따라 입국장을 나서는 여왕님이 마침내 내 앞에 타나난 것이다. 꿈인가 생신가.. 로마 공항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해님은.. 그제사 가로수에 긴 꼬리를 만들며 서쪽 하늘로 얼굴을 감추었다. 우리는 재회의 기쁨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나누고 있었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던 그녀가 아이스박스에 차갑게 식혀둔 멜론이 너무 맛있단다. 달콤하단다. 달콤 달콤 알콩달콩.. 그때부터 깜깜한 고속도로를 따라 쉬지않고 밤새 달렸다. 바를레타의 우리 집 앞에 도착한 시각은 정확히 오전 4시였다. 다른 날이었으면 이 시각 나는 해님을 맞이하러 집을 나섰을 것이다. 그 시각.. 여왕님이 우리 집에 도착한 것이다. 그녀는 시차 때문인지 일찍 잠이 들었다. 어느덧 사흘의 시간이 지나고 있으며 오작교는 다시 보이지 않는다.


il miglior regalo portato dalla regina_la regina incontrata a Roma
il 13 Agost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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