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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03. 2021

어느 귀족이 남긴 흔적

-미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의 속살 상편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를 찾는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숨겨진 명소도 있다!!



   보슬비가 보슬 부슬 내리는 가운데 사람들이 우비를 챙겨 입고 바라보는 곳은 피렌체의 두오모(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앞이다. 바로 곁에는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피렌체를 찾는 세계인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자 이곳에 오면 기념사진 찍기에 바쁘다. 평생을 통틀어 한 번 가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역사적인 장소이므로 누구든지 이곳에 발을 디디면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이런 풍경이 매일 아침부터 연출되곤 했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짜인 일정과 동선 등에 따라 피렌체의 명소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수의 관광객들은 피렌체의 겉모습에 열중할 뿐 미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에 숨겨진 명소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이들의  사정상 일정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참 아쉬운 부분이었다. 



우리가 죽기 전에 꼭 한 번 살아오고 싶었던 도시 피렌체에 둥지를 튼 이후부터 사람들이 빼곡한 두오모 앞을 피해 다니곤 했다. 처음에는 사람 구경도 괜찮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용한 곳을 찾는 횟수가 늘어났다. 



우리가 살고 있었던 곳은 두오모 바로 곁이자 메디치 예배당(Cappelle Medicee) 바로 앞이었다. 따라서 시내 중심으로 이동할 때는 메디치 예배당과 두오모로 이어지는 좁은 길(Via ferdinando Zannetti))을 따라가야 했다. 5분도 채 안 걸리는 지근거리에 피렌체의 명소가 즐비한 것이다. 


박물관 입장 직후 하니와 나의 이름을 방명록에 서명을 했다.


그곳, 두오모로 가는 좁은 길 왼편에는 무세오 다 까사 마를뗄리(Museo di Casa Martelli) 박물관이 있었다. 

피렌체 공국의 문양이 그려진 갑옷은 금속실로 만들어진 매우 특별한 모습이다.


겉으로 보면 박물관인지 가정집인지 쉽게 분간이 가지 않고, 개방하는 시간도 일정치 않아서( APERTURA: Giovedì(목요일) dalle 13 alle 19, Sabato(토요일) dalle 9 alle 14, La 1a, 3a e 5a domenica(일요일) del mese dalle 9 alle 14)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지층(우리나라의 1층) 로비의 박물관에 전시해둔 유물들


우리는 거의 매일 이 길을 이용했으므로 이곳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열린 문틈으로 담당자를 만나 개방시간을 알아놓고 찾아가 본 것이다. 그곳에는 진귀한 작품들이 빼곡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겉보기와 달리 궁전(. 이탈리아에서는 건물을 빨라쬬(궁전, Palazzo)라 부른다.) 내부는 계단과 천정 등이 우아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이 궁전은 수세기 동안 귀족 마르뗄리 가문의 소유였다. 하니와 나는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학예사는 한 무리의 관람객을 대동하고 바쁘게 이곳저곳을 설명하고 있었다.


작품들에 나타난 의상 등은 바로크 시대 당시의 생활상이 엿보인다.


그때 남긴 기록들이 지금 보고 있는 작품들이다. 박물관의 구조는 넘쳐나는 작품들 때문에 좁아 보였고 기록을 남기기에 매우 나쁜 구조였다. 대체로 피사체들은 시선 위에 있었으므로 똑바른 형태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조명 또한 방해가 되었다. 따라서 약간 멀리서 촬영한 다음 편집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된 작품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 혹은 바로크 시대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궁전의 이름은 무세오 다 까사 마를뗄리라 했다. 본래의 주인 이름은 마르코 마르뗄리(Marco Martelli)였다. 그의 생몰연대는 1592~1678년으로 피렌체서 태어났다. 그가 사업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피렌체의 여러 가문과 동맹을 맺고 합작회사를 설립하면서부터 였다. 



1637년, 메디치 가문의 페르디난도 2세(Ferdinando II de' Medici)로부터 형식적이지만 매우 명예로운 직책이었던 상원의원에 지명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페르디난도 2세로부터 소금 공급자(Provveditore de' Monti del Sale)로 지명되었다. 소금이 귀했던 시절 그의 사업수완은 절정에 이르렀을까..



나는 작품들을 돌아보면서 마르코 마르뗄리의 초상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피렌체 공국에 영향력을 끼친 이분이 마르코 마르뗄리란 사람이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당신의 관상에 대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들을 돌아보는 동안 그의 얼굴 표정 때문에 귀족이 되기까지 노력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요즘 가끔씩 인용 되는 불가촉천민의 모습을 그로부터 느끼게 된 것이다. 한 집안의 궁전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박물관에는 무슨 작품들을 그렇게 많이 쌓아두었는지.. 그게 물욕인지 사업수완인지 아무튼 궁전은 시쳇말로 '삐까번쩍' 하고 우아했다. <계속>


Le tracce della nobiltà fiorentina_MUSEO DI CASA MARTELLI
il 03 Giugn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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