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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ug 16. 2021

해님의 입, 귀에 걸린 까닭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의 해돋이

너무 좋으면 발그레 상기되는 법이지..?!!



   서기 2021년 8월 15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바닷가에는 어둠을 깨우는 청춘들의 모습이 눈에 도드라졌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청춘들이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운 장면이 아드리아해 주변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쬐고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폭염 소식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의 새벽은 선선한 바람이 더위를 식히다 못해 체온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날 하니와 나는 이틀 전 시험 삼아 아침산책을 나섰다. 내가 걷던 왕복 10km보다 적은 왕복 6km를 걸었다. 그녀는 사흘 전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을 통해 입국한 다음 함께 아침운동 겸 시차 적응에 돌입한 것이다. 그녀는 감격해했다. 10개월 만에 한국에서 다시 돌아온 감회가 아드리아해의 해돋이에 묻어난 것이다. 나 역시 꿈만 같았다. 


우리가 너무도 뻔하게 여기는 현대문명은 아주 오래전에 살던 사람들의 꿈이자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역만리 한국에서 유럽의 중심 이탈리아까지 매일 통화가 가능하고 필요하다면 화상통화까지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 먼 거리를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실로 꿈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견우와 직녀는 상상 속의 오작교를 건너 재회를 하지만 현대의 오작교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한국에서 전화통화가 끝난 지 만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녀가 이탈리아에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 중심의 집까지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오손도손 알콩달콩 대화를 나누며 10개월 전에 당신이 걸었던 바닷가를 걸으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기 좀 봐 봐.. 아드리아해의 해돋이가 막 시작되고 있어욤.."

"그러게.. 너무 아름다워욤.."



"이곳에서부터 대략 30분 후에 해님이 얼굴을 내밀거욤.."

"그걸 어떻게 알아욤? "



"응, 매일 해돋이 시간이 달라지는데 오늘 아침의 해돋이 시간은 06시 04분이얌"

"참 신기하기도 하지욤 ^^"

"여기까지 도착하면 기록을 남겨요. 윈드서핑 교실이 열리는 곳이야욤"

"응, 나도 SNS에서 봤어욤. 글고 욤자 좀 빼욤 ^^"



그녀가 저만치 앞서 걸었다. 실제로는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산책로 곁으로 자동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어있다. 이틀 전 주말.. 청춘들이 바닷가에서 야영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 것이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 백대는 넘겠네..!"


그녀가 말했다. 그녀가 앞서 걷는 가운데 해돋이가 시작된 바닷가의 풍경을 남겼다. 밤새 퍼마신 풍경이 그대로 박제된 현장..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청춘들이 좋긴 좋군..!"

"그러게 말이야..!!"



나는 이날 아침 우리의 동선이 해돋이 명소(내가 만든)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설명했다. 매일 해돋이 시간이 1분씩 늦추어지는데 집에서 나서는 시간이 동일하면 해돋이 명소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는 것이라 설명했다. 해돋이 10분 전.. 평소 같았으면 반환점을 돌아 이곳 갯바위가 널린 해돋이 명소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지만 30분 늦게(05시) 출발한 연유로 인해 미리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했다.



"와..넘 좋다~~ ^^"



그녀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고 나의 짧은 설명이 곁들여졌다.


"이 장소에서 간단한 맨손 체조를 하고 해님을 기다려욤..!"

"와..넘 좋다~~ ^^"



그녀는 내가 쉬던 바닷가의 갯바위 위에 챙겨 온 커피와 수박 등 간식을 펼쳐놓았다. 연신 싱글벙글.. 해돋이 시간이 시작되자 시간을 알려주었다. 사진과 영상을 찍어 아이들에게 자랑하려고 한단다. 곧 해돋이가 시작되었다. 



영상, BARLETTA,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해님의 입 귀에 걸린 까닭





해님의 입 귀에 걸린 까닭


이날 아침의 해돋이 사진과 영상은 평소와 전혀 달랐다. 불과 닷새 전만 해도 이곳에는 나 혼자 해님을 만난 장소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해님에게 그녀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아울러 이웃 여러분들이 함께 염려해 주시고 기도를 해 주었다. 그런 시간들이 어느덧 10개월..



해님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해님이 아드리아해 너머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 때 모습은 다른 날과 달랐다.



너무 좋으면 발그레 상기되는 법인지.. 해님의 얼굴은 분홍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해님이 오작교가 되어 마침내 두 사람을 한 곳에 모이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내 곁에서 앞에서 연신 아이폰을 들여다보며 신기해했다.



우리는 지난해 별리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이 장소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당시만 해도 해님의 출현은 너무 평범한 우주의 운행일 뿐 해님의 속마음을 알지 못했다.



해님이 저만치 수평선 위로 둥실 떠올라 입이 귀에 걸렸다. 그녀의 입도 귀에 걸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녀도 어느덧 해님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기왕에 여기까지 온 김에 말게리따 디 사보이아 해변이 보이는 반환점까지 돌아오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기꺼이 "그렇게 해.."라고 말했다. 그런 한편 "아침에 나설 때 찌뿌듯했던 몸이 해돋이가 시작된 이후 날아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녀는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매일 아침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귀국 후 여독이 풀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거뜬하게 10km를 걷게 된 것이다. 고마웠다. 또 해님에게 감사했다.



반환점에서 돌아오는 시간..



나는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뻔한 이야기.. 그러나 우리의 삶이 해돋이에 묻어난 과정 등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 모든 만물은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길들여지는 법이지.. "



"해님도 그렇고 달님도 별님도.. 세상 모든 사람들도.."



"나는 그동안 해님을 만나는 시간이 젤 행복했어요.."



"그때마다 당신을 생각하게 되고.. 최소한 해돋이 10분 전부터는 머리가 하얘지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변해요"



"맞아요. 오늘 아침 내가 그랬어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세계..!!"



그녀는 즉각 맞장구치며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내일 아침부터 다시 돌로미티로 떠날 때까지 이번에는 해님과 그녀 그리고 나까지.. 세 사람(?)의 입이 귀에 걸릴 것이다. 기다림이 잉태한 그리움이 아드리아해 곁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세상 참 희한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꿈만 꾸면 어디던지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세상.. 



그녀가 이탈리아로 귀국 직후 열어보인 케리어 속에는 아드리아해 곁에서 이루어질 꿈들이 소복했다. 내가 매일 아침 해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 그동안 그녀는 그리움의 실체를 케리어에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평소 통화 중에 산책로 곁에서 만났던 삽비아를 소개하자, 그녀는 "너무 잘 생겼다"라고 말하며 좋아했다. 이날 삽비아의 입도 귀에 걸렸다. 사노라면 입이 귀에 걸릴 때가 제일 행복한 때가 아닌가..?!!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il sole splendente dell'Adriatico
il 15 Agost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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