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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13. 2021

그곳, 어떻게 하면 잊을 수 있을까

-하니와 함께 다시 찾은 돌로미티 여행

저만치 앞서 걷는 그녀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들이 교차한다. 

곧 세월의 그림자가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다. 



지난 여정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세월의 그림자..



세상의 빛과 그림자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가 없을 것이며 어둠 스스로 그림자를 만들지 못한다. 세월의 그림자도 그런 것일까..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이순의 터널에 진입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세상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감각도 달라진다. 인간이 지닌 오감이 흐려지는 듯 보다 농축되어 우리 몸에 우리 마음에 녹아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늙어간다'는 표현 대신 '익어간다'는 표현을 쓰게 되는 것이다.



가을이 오시면.. 과일만 익어가는 게 아니라.. 이순의 터널을 지나게 되면 육체의 늙음 가운데 마음이 익어가는 것이다. 농익은 과일의 향기와 더불어 보다 성숙된 마음이 익어가는 시절..



서기 2021년 8월 22일 지난해에 이어 다시 찾은 돌로미티는 친숙함 정도가 아니라 고향땅을 다시 밟은 것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웠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두 번 다시 방문한 여행지는 심드렁했다. 호기심이 사라진 여행지는 불어 터진 국수를 먹는 듯 맛도 없고 식감 조차 사라졌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금 발을 들여놓은 돌로미티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향기가 진동을 했다.



지난해보다 빨리 찾아온 가을의 향기가 풀꽃과 풀숲과 돌로미티의 장엄한 바위에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돌로미티의 기온 분포는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동안 한 해의 표정이 오롯이 묻어나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6월 7월 8월 9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돌로미티에 발을 디뎠을 떼는 다시 8월.. 하이킹을 마치고 돌아올 때 볕이 쨍쨍했다. 하지만 볕의 알갱이 속에는 마름 풀냄새가 뒤섞이며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산길 곁의 풀꽃들은 일찌감치 먼 길을 나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몇몇 풀꽃들만 우리 곁을 따라다니며 길을 배웅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4시간짜리 짧은 하이킹 루트를 끝마치고 빠쏘 가르데나 9부 능선의 주차장 가까이 도착했을 때.. 돌로미티 여행의 발이 되어주었던 자동차가 캠핑카 옆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저만치 앞서 걷는 그녀..



그녀는 주차장 가까이에서 만개한 풀꽃으로 갑자기 걸음을 옮겼다. 늦가을..



그녀와 나를 닮은 세월의 그림자가 고개를 들어 무르익고 있는 천상의 화원..



그들은 우리와 함께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것이다. 세월의 그림자가 등을 떠미는 가운데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불고불 용틀임이 이어지는 빠쏘 가르데나의 야영장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꿈을 꾸게 된다.



이 산중에 머물게 되거나 다시 먼 길을 떠나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여행길..



우리는 차마 그 길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보지 않으면 그리워하지 않을까..?!"



세월을 지내놓고 보니 사랑하지 않은 대상이 그리워지는 법은 없었다.



돌로미티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돌로미티를 그리워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관계를 맺고 서로 길들여진 사랑하는 사이..



주차장으로 돌아온 직후 해가 뉘엿거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텐트를 펴 놓은 고갯길 옆의 작은 주차장에는 돌로미티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무시로 넘나드는 곳이다. 날이 밝으면 우리는 다시 돌로미티가 예비해 둔 곳으로 떠나게 될 것이다.



아직 한 밤을 더 자야 하는데 벌써부터 설렘이 시작된다. 이것 또한 익어가는 과정일까.. 우리는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5 Torri)를 가슴에 품고 빠쏘 퐐싸레고의 작은 계곡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계속>



Le Dolomiti che ho riscoperto con mia moglie_Colfosco ALTABADIA 
il 13 Agost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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